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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사항일운동 지역 넘어 전국화해야”

제주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및 시민토론회
지난 10월4일 서귀포시청 문화강좌실에서 열려
한금순 박사‘항일운동의 역사적 고찰’로 주제발표

 

 

양윤경 서귀포시장이 제주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울일 것을 이야기했다.

1918년 김연일 스님, 강창규 스님, 방동화 스님 등 서귀포 법정사에서 주석하신 스님들과 마을 주민 7백여명이 일제에 항거한 제주법정사 항일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0월 4일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학술세미나가 열려 우리 선조들의 저항 정신을 더욱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송형록 서귀포신문 대표는 환영사에서 “1918년 10월 7일 법정사 신도들이 중문면 일대를 거사를 일으킨 날로 그동안 법정사 항일운동이 왜곡되어 온 것을 바로잡고, 역사적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학술서 1권 동화책 1권을 발간하게 됐다”며 “이번 세미나는 그동안 노력해주신 한금순 박사의 체계적 연구가 있어서 인식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법정사항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동화책 “법정사 동이”(노수미 글/ 변명선 그림)원화전시회가 서귀포시청 문화강좌실 전시실에서 열렸다.


양윤경 서귀포시장은 “제주법정사 항일운동이 3‧1운동과 임시정부 활동에 기운을 불어넣었고 8‧15광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며 “앞으로 더 많은 관심 가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위성곤 국회의원도 영상 메시지를 통해 “평화와 자주, 정의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제주에서 일어난 도내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인 제주법정사 항일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해 애국과 희생정신을 계승하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한금순 박사는 “제주법정사 항일운동의 역사적 고찰”로 주제발표를 하면서 100년전 무오년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운동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이 이제는 “제주법정사 항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그 정신과 의미가 더욱 승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금순 박사는 “당시 재판기록에 의하면 법정사 항일운동은 원래 조선인으로 돌아가겠다, 국권회복을 하겠다는 의미를 지닌 거사로 진행되었다”며 “7백명의 재판기록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주소를 정리해 보면 서귀포의 거의 모든 마을에서 참여했다”고 서귀포 사람들의 남다른 항일의식을 강조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한금순 박사.


한 박사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을 일제는 축소 보도하면서 7백명을 4백명으로 줄여 보도 하는 등 사건을 축소시키려는 의도를 가졌지만, 사건에 대한 심각성이 큰 만큼 모두 목포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김연일 스님은 징역 10년이 내려지는 중형을 선고받았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또 “일제는 1918년에 일어난 제주법정사 항일운동을 보천교의 난으로 폄하하려고 했지만 사실 보천교라는 종교는 1920년이 지나서 나온 신흥종교로 항일운동이 일어날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라며 “1918년 당시 스님들은 평상시에는 가사를 입지 않고 예불 볼 때만 가사를 입고 예불을 봤으며 유발승이 대부분이었으며 스님들의 승적부가 발견됨으로써 정확히 밝혀졌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서귀포 법정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제주법정사 항일운동에 참여한 스님들은 법정사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하기 위해 일부러 제주로 내려왔으며 법정사에서 4~5년 동안 활동하면서 신도들에게 항일의식을 주입하였다”며 “1918년에 스님들은 몽둥이와 붉은 깃발 등 준비하고 사냥꾼들이 쓰는 화승총과  화약을 준비했으며 이런 준비과정이 비밀로 지켜지면서 10월7일 거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결국 법정사 항일운동은 사전계획에 의해 조직적으로 참여자를 관리하고, 사전에 계획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항일 운동으로써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행동대장 강창규 스님을 중심으로 도순리로 내려가 영남리 서호리 호근리 월평리를 거쳐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갈 예정이었으나 중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당시 중문경찰서 초가집에 불을 붙이고 집기를 부수었고 하원에서는 일본 옷 입은 사람을 만나 길가에서 폭행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66명 검거되고 계속 조사하면서 네 차례에 걸쳐 잡히게 된다”고 당시의 정황을 이야기했다. 
한 박사는 또 “일제는 이 항일운동을 진압할 목적이 더 뚜렷했기에 법정사 항일운동 전부를 목포로 나가 사건 처리하게 되며 조사과정에서 고문으로 돌아가시거나 갇혀있다 옥사하는 경우 많았다”고 일제의 가혹 행위를 설명했다. 
한 박사는 “주지 김연일 스님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강창규 스님이 8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일본이 그만큼 사건을 심각하게 본 것으로 결국 강창규 스님은 6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윤봉택 탐라문화유산보존회 이사장.


두 번째로는 김광식 동국대 교수가 “법정사 항일운동의 근대 불교민족사에서의 위상”이라는 주제로 발표가 이어졌다. 김광식 교수는 여기서 100년을 맞은 제주법정사항일운동의 위상을 재조명함으로써 다시 한 번 검토할 때라면서 당시 시대상황과 맞물려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었음을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무오법정사항일운동발상지 성역화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윤봉택 (사)탐라문화유산보존회 이사장이 발표가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김형목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원이 “법정사 항일운동의 계승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했다.  
여기서 윤봉택 이사장은 법정사지를 문화재로 지정받고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들을 토로하면서 앞으로 두 번째 성역화 과정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형목 책임연구원은 법정사항일운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여는 등의 여러 문화사업들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희 기자  gim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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