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진의 ‘길 위에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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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의 ‘길 위에서’ (5)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0.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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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었네

일요일이다. 파란 하늘에는 티끌 한 점이 없고,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바람조차도 힘을 빼고 가볍게 날아다니는……. 드물게 날 좋은 시월의 어느 일요일, 도반과 나는 오름 탐방에 나섰다. 다른 오름들 보다는 길이 거칠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는 오름을 도반과 나는 둘이만 올랐다. 사악사악 억새가 옷자락을 베는 소리를 들으며 억새밭을 지나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메밀꽃과 여린 보라색 쑥부쟁이들이 어우러져 그림 한 폭을 그려낸다. 구름 위를 걷듯 가볍게 올랐어도 콧등에 기분 좋은 땀방울이 맺힌다. 
 촉촉한 땀을 식히고 돌아가려니 조금 아쉬운 듯해서 오름 하나를 더 오르기로 했다. 마침 맞은 편에 잘생긴 오름 하나가 우리를 유혹했다. 제법 경사가 가파른 오름을 힘들게 올라보니 정상에서 맞닥뜨린 풍경이 또 너무나 황홀해서 오름의 곡선미를 만끽하며 걷고 또 걸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끝이 있는 법, 도반은 지치는지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그때서야 돌아가야 하는 길을 살펴보니 가파른 길을 내려가서 다시 오름 하나를 넘고, 또 오솔길을 한참 걸어 내려가야 하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우리는 지름길을 찾았다. 이곳 지리를 훤히 꿰고 있다는 도반이 이리저리 살피더니 지름길로 이끌었다. 분명 솔숲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솔숲을 빠져나오니 표지판 하나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붉은 막대기를 가로질러 그려놓고 <탐방로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연히 돌아가야 했다. 내가 “돌아가야겠네!” 하자 도반은 그럴  필요 없단다. 자기가 이 동네 오름은 다 아는데 이쪽도 길이 있다는 것, 하긴 보아하니 사람의 발길이 길을 만들어놓은 흔적들이 있었다. 과연 표지판의 경고와는 달리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길이 나오고 그 길의 끝으로 황금빛 넓은 들판이 펼쳐져있고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햇살도 따사로운 평화로운 가을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소의 큰 눈에 왠지 걱정이 묻어나는 듯했지만 나는 그 찜찜한 기분을 털어내며 도반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웬걸, 갈수록 길은 거칠어졌고 가시덤불이 펼쳐졌다. 워낙 겁이 많은 나는 멀어도 다시 돌아가자고 제안을 했지만 도반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 가시밭만 넘으면 길이 나온다는 거였다. 차 소리도 가까이 들리는 것이 큰길은 분명 가까이 있었지만 우리가 택한 지름길은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시덤불을 세 너 번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서야 도반은 포기를 했다. 오름을 중심으로 소를 방목하는 거대한 목장이었던 그 오름은 우리가 아무리 험난한 가시밭길을 인내하며 돌고 돌아도 거대한 목장의 가시덤불 울타리일 뿐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찌어찌 그 오름을 빠져나와 본래 출발했던 자리로 간신히 돌아왔다. 분명 길이 없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지름길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을 증명하듯 길 아닌 그 길에는 발자국으로 길이 나 있었다. 
 부처님께서도 길을 분명하게 밝혀놓으셨다. 부처의 길, 불경은 부처님께서 이 세계 탐방을 다 끝내시고 길이 아닌 길과 제대로 된 길을 밝혀놓으셨고, 우리 눈으로 보이기에는 험난하고 멀어 보이지만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고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끝내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환상적인 길, 그 길들이 오늘도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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