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출리(出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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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출리(出離)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1.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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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여보게! 그대 자신부터 내려놓지 그래. 그래서 수월히 덕도 펴고 상도 타게나. 그러지 않고 계속 자신에게 집착하다가는 고생고생해서 좋은 일을 해도 끝내 상을 놓치고 말 것이네. … 버리고 떠난 이. 그리고 모두 내맡겨버린 이는 자신이 이미 버린 대상들에 대해 다시 눈길을 주지 않는다네. 그의 내면은 흔들림이 없이 확고부동하니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유로운 사람이라네.”
중세 독일의 신학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성 사상」(길희성 번역, 분도출판사)에 나온 말이다. 이 구절을 읽다가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소유하려는 오래된 삶의 방식을 크게 내려놓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돈이나 소유물, 권력이나 명예 따위를 움켜쥐려는 욕망은 마치 나무가 뿌리에 의지하여 흙의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하듯 존재의 뿌리이자 생명 보존의 조건이다. 
중생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변호사와 정무부지사라는 스펙을 내걸고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자 도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했던 씁쓸한 경험이 있다.
나는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망단望斷한 심정에 얽히고설킨 감정을 정리하고 권력 의지의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첫 삽질로 아란야 농원의 귀퉁이에 10여 평 남짓한 목재 토굴을 짓고 ‘출리산방’이라고 이름표를 달았다. 
출리出離라는 말은 ‘탐욕을 떠난다.’라든가 ‘내려놓음’이라는 불교적 용어이다. 사법연수생 시절에 불교 동아리 회장을 맡아 조계종 포교원장인 무진장 스님을 지도 법사로 모신 인연이 있어서 스님께서 쓴 ’오늘을 사는 지혜’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 속에 실린 ‘중도의 마음’이라는 글에 ‘출리’라는 단어가 있다. 문득 이 생각이 떠올라 꼬리표를 붙인 것이다.  
여기서 명상 공부하는 법우法友들이 모이고 초기 경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매주 화요일에 정기적으로 명상모임을 한다. 50대 가정주부들이 더 적극적이라서 놀랍다.
『맛지마 니까야』의 「우빨리 경」 (M56)에는 부처님께서 우빨리 장자에게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의 가르침, 감각적 욕망들의 재난과 타락과 오염원, 출리의 공덕’을 순차적으로 설하신 설법이 실려 있다.
진리로 가는 길과 욕망을 추구하는 길은 서로 다르다. 다섯 악기가 연주하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놓아 버리는 일은 우선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여덟 겹의 바른 길, 즉 팔정도 수행은 비길 데 없는 법락法樂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욕망에서 벗어남’은 팔정도의 두 번째인 바른 사유正思惟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다들 돈을 벌고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겉과 속이 다른 가식적인 우리네 모습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소카 대왕처럼 동서양의 어떤 왕들도 비견할 데 없는 대시주자가 있는가 하면 위대한 아나타삔디까(급고독장자)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자 애쓴 거룩한 분들도 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내 곳간을 비우니 몸도 건강하고, 삶이 행복하고, 업業이 청정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한평생 애써 모은 재산을 어느 순간 아낌없이 보시하는 것은 그 만큼 삶의 진실을 깊게 자각한 아름다운 통찰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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