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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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화풍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1.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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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유 현

낙엽수가 가을 찬바람을 만나면 모습을 바꾸고 단풍이 든다. 산자락이나 들녘에선 바람결에 하느작거리는 억새의 군무가 화려하다. 다 시절 인연으로 생기는 현상들이 아닌가.
가을의 맑고 아름다움을 읊조린 시인들도 있지만, 조락凋落의 가을은 나에겐 슬프게 다가온다. 
뜰에 나서기 전 움츠린 몸으로 거울 앞에 섰다. 눈가엔 잔주름이 더 생기고, 쪼글쪼글한 피부엔 옅은 갈색의 검버섯 몇 개가 더 늘었다. 늘 보는 얼굴임에도 가끔씩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머리와 수염이 희끗하기는 하지만 아직 백발이 성성하지 않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 몸도 그렇다.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변한다. 분자생물학에서 밝힌 세포의 교체 주기가 있단다. ‘췌장의 세포는 24시간마다 새롭게 바뀐다. 위장은 3일마다 위벽의 새로운 내피를 얻는다. 백혈구는 10일마다 교체되고, 지방조직은 3주마다 새로워진다. 뇌 단백질 98%가 한 달이면 바뀌고, 피부는 5주마다 새로 태어난다.’고.  몸뚱이는 물질로서의 형태를 가지지만 그 내면에는 근본 물질이 갖고 있는 네 가지 성품이 있다. 이를 땅의 요소地代, 물의 요소水大, 불의 요소火大, 바람의 요소風代라 하고 통틀어 사대四大라 한다.
두 손을 마주 대 보자. 이때 따뜻함이 느껴진다. 손은 있지만 양손의 접촉을 통해 아는 것은 따뜻함이다. 이것을 성품을 안다고 해서 사대명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실재를 아는 것이므로 관념이나 개념을 떠나 있다.
몸에 암 세포가 생겼다는 것은 부드럽다가 단단해졌다는 것으로 지대에 장애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에 부딪친다. 너무 뜨거우면 열이 나서 죽으며 뇌세포가 손상을 입는다. 몸이 약간 차가워지면 감기에 걸린다. 기氣 흐름이 막히면 신체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해서 병이 난다. 기가 막하면 갑갑하므로 손이나 다리, 발을 계속 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이나 상체를 앞뒤로 뒤트는 것도 기의 흐름이 막혀서 나타나는 신체적 현상이다. 
사대는 모두 함께 작용하며 끊임없이 서로 부딪히고 조화를 이룬다. 그것들은 각자 어떤 요소를 하나만 가지고 있지 않고 같은 요소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몸에 이 사대가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업을 조건으로 현재의 업보인 태어남이 있다. 입태入胎의 순간에 업력에 의해 다섯 감관의 물질, 심장토대, 성姓의 10원소가 만들어진다.  
사대 요소와 파생 물질을 갖고 있는 영양소를 흡수하여 몸을 성장·유지하게 하거나 또는 쇠퇴시키기도 한다. 종국에는 성장의 요소가 되었던 사대가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지수화풍이라는 사대의 작용이 바뀐 것을 말한다. 이는 부드럽다가 단단해지고, 피가 흐르다가 정지한 것이고, 따뜻하다가 차가워진 것이고, 움직이다가 움직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누가 나를 죽이는가요? 나를 죽이는 살인자는 바로 지수화풍이라는 사대의 변화이다. 사대는 나의 보호자이자 살인자인 셈이다. 사대는 이런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떤 조건이 성숙됐느냐에 따라서 그에 합당한 결과가 나타난다.
이런 사대가 나를 죽이는데 정작 자신은 이것을 모른다. 누군가는 이 깊어 가는 가을에 낙엽이 쌓인 숲길을 거닐며 그 길을 물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로히땃사 경」(A4:45)에서 이 작은 육신에서 해탈·열반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생·노·병·사의 비밀을 다른 곳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찾고 있다. 몸과 마음은 서로 조건 지어진 것이다. 둘은 서로서로 의지한다. 하나가 무너지면 둘 다 무너진다. 몸과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끔 아침과 저녁에 명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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