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부석사(浮石寺)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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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부석사(浮石寺) (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1.0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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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76)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시대 목조건물 무량수전(국보 제 18호)

 

부석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데는 아마도 건립된 이래 1,300년을 넘게 절을 세운 목적과 신념이 한 점 흐트러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고, 네 계절 어느 때 찾아가더라도 감동적인 아름다움이 절 곳곳에서 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의상대사가 절을 세운 이야기와 의상대사를 사모하여 용이 되어 신라로 따라온 중국 여성 선묘낭자의 애절한 사랑, 크고 작은 돌들로 만들어진 축대에서 느껴지는 조화로움, 무량수전 마당 앞에 펼쳐진 끊임없이 이어지는 능선들이 만들어낸 경치, 온갖 비바람을 이겨낸 연륜이 배어있는 배흘림기둥과 소박한 문창살, 빛바랜 단청 등에 담긴 절절한 아름다움은 시인이 아니고서는 감히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다. 만일 시인이 아니라면 그러한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보아왔던 완숙한 학자의 글로나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무량수전 앞에 동서로 길게 펼쳐진 소백산의 능선들


  미술사학자이자 탁월한 감식가였던 혜곡 최순우(兮谷 崔淳雨, 1916~1984) 선생이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극찬한 절이 바로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부석사이다. 그의 글로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다.   

부석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 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무량수전 내부 서쪽에 자리한 아미타불좌상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후 세운 절 중 하나로 676년 건립되었다. 화엄을 공부한 의상의 종지를 이어 통일신라시대에는 화엄종의 종찰로 선승으로 유명한 혜철(惠哲, 785~861), 무염(無染, 801~888), 도헌(道憲, 824~882) 등 고승대덕들이 화엄을 공부한 장소였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왜적의 병화나 화재로 건물 일부가 소실되기도 했지만 곧 재건할 수 있을 정도로 나름 사세를 유지했던 절이었다. 절집들은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범종루, 안양문으로 한계단 한계단을 오르면 주불전인 무량수전이 나오도록 절집들이 배치되었다. 
 안양문(安養門), 안양은 곧 극락정토에 대한 다른 이름이니 안양문은 바로 극락정토와 연결된 문이다. 고개를 숙이고 누각 아래에 난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무량수전을 밝히는 석등과 마주하게 된다.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부처님은 석등 뒤 무량수전 안에 앉아 계신다. 극락에 있다는 온갖 보배로 장식된 연못이나 화려한 누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안양루에서 잠깐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자신이 서있는 그곳이 바로 극락정토임을 알 수 있다. 일망무제(一望無際), 말 그대로 한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소백산의 능선이 넓고 아득하게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이것이 극락에 있는 보배로 가득 찬 연못과 누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히 해가 떠오를 새벽, 안개에 살짝 가려진 모습이나,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눈부심이 사라진 황금색 황혼이 능선 사이로 연약한 빛줄기를 뿌릴 때 갓 떠오른 달이 새 빛을 비출 때까지 나그네는 아무런 말로 하지 못하고 서있을 수밖엔 없다.
 이런 그림 같은 모습에 김삿갓으로 알려진 방랑시인 김병연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봉황산 아래 자리한 무량수전과 안양루 전경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 김삿갓이 쓴 시 <부석사>

 이런 아름다움이 깃든 절이건만 제주에 사는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가보지 못했다는 이들이 많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가족이나 연인들끼리 답사 여행으로 찾는 이들이 더 늘었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다녀왔다는 얘기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제주도라는 지리 여건이 답사나 순례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관광이 제주 지역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임에도 지역에만 관심이 많을 뿐 지역을 벗어난 곳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지역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지역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제주가 삶의 터전인 사람들이 여러 곳을 답사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연말이 돼서 그런지 나 역시 내년에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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