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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 성진 스님의 “행복한 공양간”글.木筆

조계종 조계사 행정국장을 지내시고, 조계종 포교원 포교국장을 역임한 스님이시다. 이제 갓 출가한 스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법랍이 특출하게 높은 스님도 아니다. 성진 스님은 산사에서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느껴지는 것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있다. 
“내 말을 들었고, 그 말을 듣고 질문을 한 네가 누구냐?”라는 말을 듣고, 질문의 답을 찾고자 일주문을 찾아들어 출가했다고 한다. 당시 스물두 살의 천둥벌거숭이였다고. 
은사스님을 처음 뵙고 참배를 올리던 날 “그냥, 모두 잘못 살았다!”는 후회뿐이었다고 한다. 
무엇이 바른 길인지를 본 순간에 지나온 길이 틀렸음을 안 것이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후회할 수 있음을 감사하는 눈물’이라고 했다. 
‘냄비 속 개구리’이야기를 통해 개구리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의 온도를 느끼지 못했듯이 우리의 알아차림이 없을 때 탐욕은 옳고 그름의 사고를 좋고 싫음의 감정으로 변화시켜 탐욕의 끓는 온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달에서 방아찧는 토끼’이야기를 통해서 포살을 보름날 하게 된 인연을 말해준다. 굶어서 죽어가는 수행자에게 자기의 몸을 바쳐 고기를 내어 주려했다. 그 희생에 감동한 하늘이 토끼를 달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자신을 희생하여 달의 주인공이 된 토끼는 모닥불에 뛰어들기 전에 자신의 몸을 세차게 털어 혹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작은 벌레들이 희생될까를 염려했다고 한다. 
토끼의 희생뿐만 아니라 자신에 의지해 살고 있는 작은 생명까지도 배려하는 토끼의 자비심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다. 보름날 포살을 하게 된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전생인 토끼의 보살행을 비추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크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스트레스가 가장 클 때는 행동과 마음의 간격이 클 때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행동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틈새가 크게 벌어진다면 일치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행동은 지금이다.’
마음이 행동과 함께하지 못하면 마음이 지금에 잊지 못하고, 미래나 과거 속에서 두려움과 막연함, 후회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지금 여기에 머물지 못하면 행동은 과거의 습관에 의해 움직인다. 이것을 새로운 습관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곧 수행인 것이다. 
행동과 마음을 일치시키는 방법 중에 최고의 방법은 참선이다. 명상이라는 이름의 참선은 현재 시점에서만 가능한 호흡을 통해 ‘지금’이라는 시제에 마음을 집중하게 해 주는 것이다. 
마음에는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돌게 하려는 욕망의 구심력이 있다. 그 구심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벗어나려는 욕망인 원심력도 또한 커진다. 자지 중심으로 당기는 힘을 키우기 위해 더 빨리 돌리면 반대로 거리는 더욱 멀어지려 한다. 천천히 돌리면 자기중심으로 당기는 힘은 약해지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누군가와 함께 오래 가까이 하고 싶으면 자기중심으로 당기는 힘을 빼야 한다. 
보이지 않아서 없애기 어렵고 흔적조차 사라지는 것이 마음이다. 천년동안 어둠에 갇혀있던 동굴도 마치 촛불 하나로 일순간 밝혀지는 것처럼 말이다. 
성진 스님은 그밖에도 많은 화두를 던져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 ‘걸림돌과 디딤돌의 차이’, ‘내리막과 오르막의 차이’, ‘지는 해와 뜨는 해의 차이’……불교는 이것을 공(空)이라 한다. 그 자체에는 어떤 차이도 없는데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 다르게 이름지어진다. 그래서 이러한 성질을 ‘공성(空性)’이라 한다.
비우는 것은 다시 채워 나가는 과정이지 결론이 아니다. 비우기와 채우기는 다른 말이 아니다. 행복하고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 비우기의 최고의 방법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만큼 나쁜 일은 진정으로 뉘우치는 것을 용서해주지 않는 것이다. 용서받지 못한 경험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칠 줄 모르는 삶을 살게 한다. 엎지른 물을 담을 수는 없지만, 참된 뉘우침을 통해 다시 채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관세음보살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응답하여 내미는 손 천개를 가졌다고 한다. 관세음보살님에게 천수(千手)를 가지게 한 것은 당신에게서 위안과 자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하나하나씩 만들어 드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고통을 당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스님의 글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는 것이 동국대 미술학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참나’님의 아련한 그림들과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한 ‘하율’님의 애절한 사진들이다. 현대의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가닥 위로를 안겨주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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