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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회 칼럼 - 호국불교,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다
김장영<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의원>

6월은 호국보훈의 달, 거리마다 현수막이 내걸리고, 또한 여러 매체를 통해 알리고 있으며, 현충일 추념식과 더불어 관련 행사들로 나라를 위해 가신 영령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호국’하면 ‘호국보훈의 달’에 이어서 ‘호국불교’가 떠오른다. ‘호국불교’하면 부처에 의지하여 외적인 침입이나 자연재해 등 각종 재난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불교신앙을 일컫는다. 왕실 주도로 불교를 수용한 신라에서부터 조선 시대의 활발한 승병활동 등으로 호국불교가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특수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특정한 시기에 불교가 왕 등 지배계층을 옹호하고 결탁했다는 역사적인 사례들과 그 외 특정 행동이 비불교적이라며 호국불교 자체에 대해 비판이 있었고, 이에 대한 반론까지 제기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며 호국불교의 개념 정립에 대한 논의들도 있었다. 또한 ‘호국’을 ‘호법’ 등 다른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다.
불교적 입장에서의 ‘호국’이 일반적인 통념인 ‘나라를 수호한다’는 개념만이라면, 그것도 유사시에. 종교적인 측면에서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고, 때로 혼란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 그 개념을 분명히 해야만 호국불교에 대한 철학이 서게 되고, 그에 따른 실천방안이 따라 나올 수 있다.
원래 불교에서의 ‘호국’은 정법이 실현되는 공간인 불국토(佛國土)를 수호하는 것으로, 현실 사회에서는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호국불교의 근본이 되는 <인왕반야경>에서도 ‘호국’의 방법으로 ‘반야바라밀’을 수지해 실천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반야바라밀’이란 생사를 벗어나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일컫는다. 이는 중생들이 참다운 삶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다함께 불국토를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토록 하는 실천방안이 호국불교의 근본원리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결국 ‘호국’의 ‘국’은 왕이나 권력자, 또는 그들의 나라가 아닌, 중생과 중생이 살고 있는 터전이라는 것에 초점을 둘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호국불교의 의미가 좀더 분명해지고 해야 할 일들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곧 중생의 참된 행복과 영원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호국불교가 해야 할 일로 귀결될 수 있다. 
중생이 살고 있는 터전이 위기에 처하면 이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고, 중생이 반목과 갈등 대립의 현장에서는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호국불교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호국불교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 평화와 자비와 구제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또한 ‘삶의 방식’으로의 생활불교로의 변화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개인마다 일상생활 속에서 참행복을 성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프로그램들로 신도들과 함께 하며, 신심을 고양시키고 삶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도내 사찰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중생 세계는 예측불허의 총체적 변화를 실감하며 적응해 가고 있지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에 대한 불암감도 있다. 이러한 때 불교는 그 역할을 지속적으로 찾아내서 중생과 함께 호흡하며 반야바라밀에 이르게 할 의무가 있다. 그게 호국불교, 아니 불교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호국’을 ‘불교’ 앞에 지속적으로 붙여야 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호국불교가 해야 할 일이 불교 본연의 의무와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마하반야바라밀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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