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향은 상대적 공덕을 무한공덕으로 바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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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은 상대적 공덕을 무한공덕으로 바꾸게 한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6.1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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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 스님

 

선남자여, 또한 지은 공덕을 널리 회향한다는 것은, 처음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으로부터 중생을 수순하는 것까지의 모든 공덕을 진법계 허공계 일체 중생에게 남김없이 회향해,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안락하고 일체 병고는 영영 없기를 원하며, 악한 일을 하고자 하면 하나도 됨이 없고 착한 업을 닦고자 하면 다 속히 성취해 일체 악취의 문은 닫아 버리고, 인간에나 천상에나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을 열어 보이며, 모든 중생이 그 지어 쌓은 모든 악업으로 인해 얻게 되는 일체의 극중한 고통스러운 과보는 내가 다 대신 받아서 저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해탈 해 마침내 무상보리를 성취하게 하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그 닦은 공덕을 회향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해도 나의 이 회향은 다하지 아니하여 생각생각 상속하고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위에서 모든 부처님을 예경하는 것으로부터 많은 청정행원을 보았다. 예경하고 찬탄하고 공양하고 참회하며 내지 수순에 이르는 행들은 보살이 영원한 생명의 행임을 말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광대한 행원이 비록 순수 무잡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 행이 자기중심의 판단이기 쉽고 또한 행원의 목적을 장차 얻을 공덕에 관심을 두기 쉽다. 따라서 행원의 행 하나하나를 성실히 행하면서도 그것이 자기 수행을 위해서 한다거나 커다란 공덕을 바라고 한다거나 자기 견해에 떨어지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행원은 청정 본연의 자성을 운전하는 것이며 그것을 구체적 현실 위에 구현하는 것이므로 그 성격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의 행이 이와 같은 궁극 완전 무한의 실현으로 보장하는 데는 하나의 필수적인 장치가 있으니 바로 회향이 그것이다. 
회향은 미소를 극대로 통하게 한다. 유한을 무한으로 통하게 한다. 유위有爲를 실성實性으로 바꾸게 한다. 상대적 공덕을 무한공덕으로 바꾸게 한다. 말하자면 작은 것을 큰 것으로, 한정된 것을 무한의 것으로, 속성적인 것을 전성적인 것으로 만든다. 회향이 있음으로써 보살의 모든 행은 행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회향은 지극히 지혜로운 보살도 성취의 미묘한 장치이니 우리는 이 회향의 의미를 깊이 배워야 한다. 

경에는 보살이 지은 바 모든 공덕을 “진법계 허공계 일체 중생에게 남김없이 회향한다.”고 하였다. 피를 빼고 뼈를 부수며 고행하여 무한겁토록 닦아 이룩한 큰 공덕 모두를 자기라고 하는 한계 속에 묶어 두지 않는 것이다. 일체 중생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내가 지은 공덕을 불보살님의 영광에 돌릴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기를 위하는 부모나 형제나 스승이나 이웃에게 돌리며, 자기를 어기고 세간까지 어지럽힌 모든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다. 목숨 바쳐 이룩한 공덕의 그 모두를 돌려주되 자기를 해코지하고 자기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사람에게까지 평등하게 돌린다는 것, 이 어찌 그 숭고함을 말로 다하랴. 
이 회향은 무차별 무조건 평등의 회향이지만 다시 중생 성숙 국토성취의 지극한 원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은 공덕을 남김없이 회향하되 그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항상 안락하기를 원한다. 나아가 저 중생들의 무상보리를 향한 길은 활짝 열리고, 깨달음에 어긋난 길을 가고자 하면 그 길이 끊어지고, 깨달음에 순한 착한 일을 하고자 하면 그 모두를 성취하기를 원한다. 저들 중생이 나아가는 앞길에 악한 일은 영영 없어지고 오직 인간과 혹은 천상, 열반에 이르는 길이 활짝 열리기를 구원하는 것이다. 진정 내가 지은 이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지혜와 안락의 바른 길에 이르도록 원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만약 중생 가운데 그가 지은 악업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과보를 받게 될 때 그 과보를 대신 받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제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하고 깨달음의 바른 길을 만나 마침내 무상보리를 성취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회향이요, 보살의 길이다. 오직 중생만을 위해 그들을 육체적․정신적 고난과 어둠에서 건져줄 뿐만 아니라 완성된 국토 위에 그를 성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회향이다. 고된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고귀한 공덕에 애착심을 두지 않고 일체 중생의 이익만을 생각해 그 모두를 바치는 이것이 곧 회향이다. 

첫째는 이기주의의 추방이다. 개아가 독립한 개인이 아니라 일체 세계 일체 중생과 더불어 한 몸이며 일체 세계 일체 중생을 떠나서 개아는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행원과 같은 큰 수행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위주가 될 때 행원일 수 없고 참 수행일 수 없는 것일진대 그 밖에 이 끝을 노리는 사업들이야 말하면 무엇하랴. 콩 한 톨이라도 나누어 먹고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행복을 서로 돕는 이것이 참된 인간의 길임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둘째는 부의 사용과 그 가치다. 아무리 자기의 근검 절약과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재화라 하더라도 그것을 독점해 자기 위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하고 공익을 위하고 온 인류를 위하는 차원에서 이용하고 사용할 때 개인의 참된 영광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자기가 번 돈이라 하여 제멋대로 사용한다고 보자. 오늘날의 우리 사회 일각의 어둠은 이런 데서 싹트고 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부는 그것이 설사 자기의 창조적 활동의 결과라 하더라도 자기가 활동하는 사회와, 결과를 가져오는 과정과, 결과가 있는 오늘의 현실이 함께 그 결과를 붙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 보호에 대한 배반이며 사회적 협동의 성과에 대한 폭력이다. 더욱이 부라는 성과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직접 이웃과 사회에 피해를 줌이랴. 
셋째는 중생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참되고 자기를 아는 길이라는 점이다. 이기적 자기 충족을 먼저하고 그 여력으로 사회적 공적 부담을 한다는 것은 자기 개인 중심의 욕구충족으로 만족을 삼는 것보다는 열 걸음 자기 충실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아주 입장을 바꿀 것을 우리는 행원으로 배우는 것이다. 
거듭 말해서 국가와 민족과 인류와 사회에 봉사하고 자기 활동의 모든 성과를 국가와 사회에 환원시키는 정신자세일 때 참된 개아의 부와 행복과 존경과 찬탄과 생의 보람이 있다는점이다. 자기를 먼저 앞세울 것이 아니라 자기가 큰 생명이며 자기의 힘도 사업의 성공도 그 모두가 자기를 넘어선 큰 자아에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착안해야 한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현상이 그런 것이다. 모두와 함께하는 생명은 모두에게서 힘을 얻고 모두 속에서 성취하고 그 성과는 모두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모든 성과를 모두에 봉사할 때 참된 개아의 행복도 영광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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