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불빛! 내 마음의 불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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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불빛! 내 마음의 불광을 찾아서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10.0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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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등선원, 2019 대만 국제공승법회 참가·성지순례기③ / 글·보현행 <오등선원 보리수회>

순례, 삼일째

드디어 순례길의 절정인 공승재일이다. 정식명칭은 2019국제공불재승대회(國際供佛齋僧大會)!
무더위 속에서 이어지는 순례일정으로 지칠 법도 하건만 이른 아침부터 일행들의 마음에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다. 말로만 듣던 공승재가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되는 마음을 품고 태풍이 와서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우리는 예정대로 호텔에서 그리 멀지않은 대만국립대학체육관으로 향했다.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여 일찍 서둘렀건만 체육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차가 밀리고 거리에는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행사 참가자들 중에 젊은 사람들과 가족들이 많다는 것. 대만 사람들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공덕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고 하는데 그 말이 실감났다.
버스가 밀리는 사이에 스님께서 공승재는 옛 전통방식으로 진행되는 불교행사로서 우란분절(盂蘭盆節), 즉 백중(百中)을 기하여 열리는데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소중하니,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시면서 화엄경 한 구절을 전해주신다. 

강은 강물을 버려야 바다에 닿을 수 있고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나는 나 자신을 잊어버려야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 

무슨 말이 더 소용있으랴!
지금 이 순간, 나는 불법을 만나서 행복하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부처님은 목건련에게 밥과 100가지의 맛과 다섯 가지의 과일 등으로 시방의 스님들께 공양하면 그 스님들의 위신력을 얻어 현재의 부모와 7대(代)의 조상과 6종(種)의 친족이 3도(途)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음을 설하셨다. 그리고 불자가 항상 효순한 마음으로 부모와 조상들의 은혜에 보답하라는 뜻에서 우란분절을 만드셨다. 음력 7월 15일 우란분절 이후에 매년 거행되고 있는 공승재는 현재 전 세계 약 일만 스님을 모시고 공양을 올리는 국제적인 행사로 그 규모와 진행방식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 장관이자 장엄, 그리고 감동 그 자체이다. 자원봉사자만 1만 8천이라니 체육관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의 열기는 바깥 한 여름 날씨보다 더 뜨겁다. 버스에서 내리는 스님들을 한 분씩 자원봉사자 한 사람이 큰 양산으로 받치고 행사장으로 모시는 것에서부터 극진한 태도와 정성이 느껴지고 스님들께 올리는 공양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진행된다. 곳곳에 있는 행사 진행요원들이며 관계자들 모두 환한 미소와 차분한 일처리로 그 누구도 어느 자리에서도 불편함과 막힘이 없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비록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중국어를 배우리라 다짐의 계기도...) 행사장의 구도열기와 공양의 마음이 일심으로 한 데 모아져서 참가자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공승재는 예불과 육법공양, 독송, 법문, 장로 법사님들의 축사로 이어지고 ‘제불환희(諸佛歡喜)’(모든 부처님이 환희심내는 불자로 살아가자)라는 메시지로 참가자들을 축원하는 순서와 스님들께 공양올리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스님과 재가불자들 수만 명이 함께 독송하는 음성공양이 지금도 귓가에 심장에 울리는 듯 하고 불법을 전하는 구도자이자 선지식이신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그 마음이 아직도 간절하게 전해진다. 
꾸밈이 없는 옷차림에서도 환한 마음이 전해지는 대만불자들은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대중들이 운집해 있어도 어느 누구하나 한 눈을 팔거나 떠드는 사람 없이 행사와 자신에 집중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행사장에서 나누어주는 도시락도 경전처럼 이마높이까지 올려서 공손하게 받아서 깨끗이 먹고, 혹여 남기는 사람은 자신이 준비해간 작은 비닐봉지에 말끔히 담고, 도시락과 젓가락 고무줄을 차곡차곡 분리 정리해서 한 장소에 쌓아놓은 모습을 보니 비록 우리음식이 아니라서 입에 안 맞을 수는 있었지만 수북이 남긴 도시락이 우리모습인 것 같이 부끄러웠다. 일행 중 한 분이 동전 한 봉지를 마련한 젊은 어머니가 어린 자녀로 하여금 한 닢씩 보시함에 직접 넣게끔 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마다 공감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새삼 불자로서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불자들은 아까 들어갈 때 본 그 얼굴이 아니다. 비록 나라와 언어, 외모는 달라도 참가자들 모두가 소중한 인연인 듯 반갑고 (운집한 순례자들 속에서 제주 불탑사에서 오신 스님과 불자님들을 극적으로 만나서 더욱 반가웠다) 그 인연들이 모두 함께 마음의 평화에 닿기를 마음 속으로 축원하면서 돌아왔다. 
자항사(慈航寺)는 자항스님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는 사찰이다. 자항사 등신불은 태국몽골사원의 밀랍등신불과 중국 구화산의 지장등신불과 함께 세계3대 등신불로 알려져 있다. 이다. 스님은 1958년 입적하실 때 자신의 육신을 화장하지 말고 항아리에 묻어서 5년이 지난 후에 열어보라는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항아리를 열었을 때 육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화장을 하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면 모시라는 말씀과 함께. 스님의 유언을 받들어 5년이 지난 후 각계의 인사들과 큰 스님들이 증명한 가운데서 항아리를 열었더니 스님의 육신은 가부좌를 한 자세로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입적하시기 3년 전부터 곡기를 끊고 야채와 소나무껍질로만 드시면서 업(業)을 정화시켜 ‘등신불(等身佛)’이 가능하게 하셨다고 한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그 모습을 차마 올려다 볼 수가 없어 순례자들은 그저 엎드려서 일어설 줄을 모르는데 마침 스님께서 그 자리에서 회향법회를 한다고 하신다. 
예불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을 합송하는데 마치 온 마음을 울리는 듯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여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숱하게 다짐한 사홍서원(四弘誓願)이건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간절하고도 큰 서원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저물어가는 시간을 붙들고 일행은 마지막 일정인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5,000년 중국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69만점의 유물들은 국공합작의 실패로 대륙에서 물러난 장개석 총통의 혜안에 의해 대만으로 공수되어 지하 수장고에서 전시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3~6개월에 한 차례씩 전시되는 데 그 유물들을 다 보려면 30년이 걸린다고...)역사적 공과(功過)를 떠나 그의 예술적 안목은 실로 높이 살만하다. 박물관을 다 둘러보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 스타(?) 유물인 옥채취백(玉菜翠白)과 육형석(肉型石), 삼대에 걸쳐 제작했다는 12개의 회전공을 보는 데 만족하고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유물들의 진가를 미루어 짐작하며 대륙의 역사적 분위기에 잠시 젖어보았다. 
한 권의 책은 지식을 주고 한 번의 여행이 지혜를 준다면, 한 걸음 한 걸음의 순례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이는 각자의 마음에 물을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떠나기 전과 후의 나는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고 또한 그리하여야 한다는 것!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밀린 업무도 산적하고 마음 또한 어느새 흐트러지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순례길에 나섰던 그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작은 실천이나마 시도해 보련다. 
아름다운 동행! 오등선원의 고운 도반님들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언제나 한결같이 조용한 가르침으로 일깨워주시는 스님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공양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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