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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하스님의 법구경.53

53.
쌓아올린 꽃무더기에서
많은 꽃다발을 만들 수 있듯이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위사카 이야기 (visakha vatthu)-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녹자모 강당에 머물고 계실 때 녹자모 강당을 건립하여 승단에 보시한 유명한 위사와카 연관하여 이 게송을 들려 주셨습니다.
위사카는 받디야 지방의 부호 다난짜야의 딸로 어머니는 수만나 데위이고 빔비사라왕이 통치하는 지역의 5명의 유명한 거부 가운데 한 명인 멘다까의 손녀였습니다.
위사카는 7살 때 받디야에 오신 부처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받디야에 오시자 할아버지 멘다까는 위사카와 그녀의 친구 500명을 데리고 가 부처님께 예를 올릴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때 법문을 들은 위싸카와 500명의 친구들, 그리고 할아버지 멘따까는 예류과를 성취했습니다.
위사카가 자라 혼기에 이르자 사위성의 부호인 미가라의 아들 뿐나와다하나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시아버지 미가라가 아침공양을 하고 있을 때 한 비구스님이 탁발을 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미가라는 스님을 못 본척하고 계속 밥을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위사카는 스님께 “ 죄송합니다. 스님 아버님께서 남은 음식을 드시니 스님께 공양 올릴 음식이 없습니다.” 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미가라는 몹시 화가 나서 그녀에게 집을 나가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위사카는 자신을 집을 나갈 수가 없다고 하며 결혼할 때 아버지가 정해준 조언자인 7명의 원로들을 모셔올 것이며  자신이 잘못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분들이니 원로들의 뜻을 따르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7명의 원로들이 오자 미가라는 “내가 황금그릇에 우유밥을 먹고 있었는데 위사카가 탁발하는 수행자에게 내가 식어빠진 남은 음식을 먹고 있다고 망신을 주었기에 위사카를 쫓아내야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위사까는 “탁발 오신 스님을 본체만체 무시하는 아버님을 보고 ‘아버님은 금생에 그 어떤 복 짓는 일을 하지 않는구나, 단지 과거 생에 지어놓은 공덕의 열매만을 먹고 있구나.’ 그래서 제가 아버님은 남긴 음식을 드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르신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잘못했습니까?”
원로들은 위사카의 잘못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위사카는 자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절대적인 굳은 신심을 갖고 있기에 수행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이 집에서는 살수가 없다. 또한 만약 스님들께 공양 청을 하여 공양과  필수품을 보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으면 집을 나가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청해 공양을 올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다음날, 부처님과 제자들은 공양 청을 받고 위사카의 집에 오셨습니다.
공양을 올리기 전에 시아버지 미가라를 모셔와 함께 하고자했으나 그는 거절했습니다. 공양이 끝날 무렵 다시 미라가를 모셔 곧 있을 법문듣기를 청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인 고행자 니간타들은 그를 못 가게 잡았습니다. 미가라가 단호하게 부처님 법문을 듣고자 하니 니간타들은 그가 커튼 뒤에서 법문을 듣게 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미가라는 그 자리에서 예류과를 성취했습니다. 그는 부처님은 물론이고 위사카에게도 크게 고마워했습니다.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해준 감사의 마음으로 위사카를 ‘나의 어머니’라고 불렀고 그날부터 위사카는 미가라의 어머니‘녹자모’라고 불렸습니다.
위사카는 아들 10명과 딸 10명이 있었고 각각의 아들과 딸은 어머니와 똑같이 10명의 아들과 10명의 딸을 두고 아주 행복했습니다.
위사카는 결혼 선물로 친정아버지(다난짜야)에게서 받은 수없이 많은 보석으로 장식된 망토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원정사에 시종들과 함께 간 위사카는 두르고 간 망토가 너무 무거워 벗어서 시종에게 주고는 잘 챙기라고 했습니다. 
시종은 아무생각 없이 들고 다니다가 망토를 정사에 두고 왔습니다.
아나존자의 소임중 하나는 재가 불자들이 정사에 왔다 가면 그들이 혹시라도 흘리고 간 물건들이 있는지를 살피고 챙겨 두었다가 주인을 찾아 돌려주는 일이었습니다.
위사카는 시종에게 정사에가 망토를 찾아보고 혹시 아난존자가 챙겨 놓았으면 “위사카가 아난존자님께 공양 올립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종은 시키는 대로 했지만 아난존자는 망토를 받지 않았고 위사카는 공양 올리기로 한 망토를 팔아 정사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가치의 망토를 살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위사카는 자신이 그것을 비싼 값에 되샀고 그 돈으로 사위성 동쪽에 정사를 지었습니다. 그 정사는 Pubbarama(동원, 녹자모 강당)이라고 불렸습니다. 정사가 완공되고 입주의식이 끝난 후 위사카는 가족을 모이게 한 후 자신의 모든 바람은 다 이루어졌으며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사마당을 돌며 “환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흙벽돌과 회반죽으로 사원을 지어 
기증할 때 나는 서원을 성취했네.
침대와 의자와 침구등 모든 가구를 
기증할 때 나는 서원을 성취했네.
맛있고 향기로운 음식을 공양 올릴 때 
나는 서원을 성취했네.
약과 버터와 기름과 꿀을 보시할 때 
나는 서원을 성취했네.”

몇몇 스님들이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위사카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는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늘 위사카는 과거와 현재생의 모든 바람을 성취했기에 기뻐서, 노래를 부른 것이지 돌은 것이 아니다. 세세생생동안 위사카는 언제나 자애로운 보시자이고 과거 부처님들의 열정적인 후원자였다. 위사카는 선행을 가장 깊고 강하게 마음에 두고 있고 전생에도 아주 많은 선행을 했다. 마치 아름다운 꽃다발을 만드는 이가 꽃무더기에서 많은 꽃다발을 만들 듯이.” 라고 하시며 게송을 들려 주셨습니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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