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불상의 시발지 “탁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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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 불상의 시발지 “탁실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11.1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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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여행작가)

아쇼카 대왕이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다르마라지카’를 비롯해
수많은 불교유적과 간다라미술을 품은 불교예술의 영원한 고향

 

다르마 라지카 사원 탁실라에서 가장 큰 사원인 다르마라지카에서도 기원전 3세기 이래 불교도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아쇼카가 세운 것으로 추측되는 다르마라지카의 대탑 둘레에는 원형 기둥들이 세워졌으나, 곧 기둥 대신 작은 탑들이 대탑을 둘러싸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샤카-파르티아 시대까지 세워진 탁실라의 많은 건물은 기원후 30년경에 일어난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개선된 석축법에 다라 불교사원의 건축 활동은 위축되지 않고 활발하게 이어졌다. 신라의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에도 이 도시를 경유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불상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약 400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불상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400여년간 부처님의 일생을 그림을 그릴 때에도 부처님은 형상보다도 상징하는 보리수나 빈 대좌, 혹은 부처님의 발자국을 대신 그려 넣었다. 이러한 무불상 시대가 어덯게 불상시대로 바뀌었을까? 
불상으로 보이는 현존하는 최고의 것은 인도 마투라의 상이다. 이 불상은 약 1~2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확한 형태의 불상이라고 보기에는 약간의 의문이 있어 정상적인 최초의 불상은 간다라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즉 완전한 형태의 불상은 간다라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쌍두취탑(쌍독수리탑) 탁실라 시르캅의 한 스투파에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가 앉아 있다. 이 모티프는 일찍이 서아시아의 바빌로니아나 히타이트에서 볼 수 있고, 그리스 시대에도 쓰이던 것이다.


간다라에서 시작된 불상은 커다란 천에 몸을 감싸고 장신구는 거의 걸치지 않은 형태였다. 이것은 당시 인도승려의 복장을 표현한 것인데, 머리만은 승려들처럼 삭발하지 않고 상투를 틀었다. 이렇게 간다라의 불상 조형에 삼십이상과 팔십종호가 반영된 것은 인도의 귀족, 즉 대인상을 본딴 것으로 출가수행승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얼굴은 그리스인들의 조각상을 닮은 모습이다. 
이렇게 불상이 탄생하면서 간다라의 불교미술은 본격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각지의 불교사원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불상이 봉안되고 불탑은 화려하게 장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3~400년에 걸쳐 불교미술은 인도와 북인도,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로 진출하게 된다. 
특히 카니슈카에서 시작된 쿠샨 왕조의 전성기는 간다라 미술의 황금기였다. 카니슈카는 인도역사상 아쇼카 이후 불교중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시르캅 유적지 BC 2세기~AD 2세기에 번영했던 그리스 왕조와 쿠샨 왕조의 도시 유적이다. 성문으로 들어서면 너비 약 6m의 넓은 거리가 500m 가량이나 이어지고, 양쪽으로는 당시에 일반주택과 상점들이 그 위에 축조되었을 석축토대가 늘어서 있다. 거리에는 돔 모양의 스투파의 유적도 있고 왕궁 유적도 남아 있다.


탁실라는 샤카족이 계승한 헬레니즘의 그리스문화를 그대로 이어서 불교미술을 꽃피웠다. 탁실라는 고대 간다라의 중심지로 불교유적은 주로 시르캅에 분포해 있는데, 유네스코는 탁실라를 대단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하였다. 고원지대에 자리한 탁실라를 비롯해 파키스탄 내에는 비르마운드, 자울리안, 모라모라드, 시루스크, 잔디알, 사르아이코라, 다르마지카, 기리 같은 많은 유적들이 있다. 탁실라의 역사를 후세에 증명한 유적은 시르캅(Sirkap)이다. 기원 전 2세기에 건설되어 기원후까지 존속한 이 도시유적은 탁실라 제2의 도시였다. 


이 도시를 처음 세웠던 사람들은 그리스인이다. 오늘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서쪽의 박트리아왕국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그리스인들이 BC 2세기 전기(前期)에 건설했다. 도시는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었다. 지금도 계속 고고학적인 발굴이 진행되어 시르캅의 도시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드러난 도시규모는 대략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1.7km이나 발굴구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도시유적 한복판 간선도로 양쪽엔 네모 반듯반듯하게 돌을 쌓아올려 지었던 집터가 즐비했다. 
규모가 좀 작은 일반시민들의 주거용 집자리 사이로 터를 보다 넓게 잡은 차이티야당(Caitya堂)자리가 보였다. 초기불교에서 수투파(불탑)는 예배의 대상이다. 그래서 예배장소에 수투파를 세웠다. 
시르캅에서 유명한 유적은 머리 두개의 독수리가 있는 쌍두취불탑(雙頭鷲佛塔)이다. 이 불탑의 기단은 중앙계단을 사이에 두고 좌우 정면에 코린트식 둥근기둥이나 네모기둥을 세워 벽 공간을 각각 세등분 한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좌우 양쪽 세공간은 그리스와 서아시아, 서남아시아풍 건물출입구 모양의 감(龕)을 만들어 장식해 놓았다. 

시르캅지역에서는 아직도 간다라 시대의 미술품이 출토되고 있다.


두 머리를 가진 쌍두독수리는 서아시아풍의 출입구문위에 조각이 되어 있다. 이 탑은 그래서 그리스와 서아시아와 서남아시아라는 서로 다른 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형태이다. 쌍두독수리는 스키타이의 일족인 샤카족의 심벌로, 쌍두취불탑을 세운 시기는 샤카족시대 후기부터 파르티아족(페르시 아족)시대 전기로 추정되고 있다. 
불교미술이 처음으로 출현한 시기는 바로 1세기였던 것이다.이전에는 수투파가 예배대상 이었기 때문에 불상은 아직 조성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경전에 근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 “이 몸이 명을 다한 뒤에는 나를 볼 수 없다”는 말이 불상조성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탁실라에서 불상이 만들어지고, 이른바 간다라미술이 출현하면서 우리가 보는 오늘날과 같은 불상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간다라미술은 파키스탄 북부 일대와 아프가니스탄 일부를 포함한 지역이 중심축을 이루었다. 나아가 이들 지역은 실크로드에서 인도 내륙으로 통하는 길목이라서 늘 이민족의 침입을 받는 관계로 각지로 퍼져나가게 된다.

간다라 출토 불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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