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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 수행의 이해

단계와 체계를 세밀하게 관리하여 개인적 해탈에 머물지 않고 
모든 중생을 위한 자비와 보리심으로 가는 길 명쾌하게 제시

 

티베트인들은 체계적인 교학으로 대다수의 국민이 불교수행을 생활화하고 있다.

불교가 티베트에 전래된 것은 송첸캄포(581~649)왕이 당나라 문성공주와 네팔의 티춘(Khri btsun)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면서부터 시작된다. 티베트의 수도 라사(Lhāsa)에 문성공주는 라모체(Ra mo che)사원을 건립하였고 티춘공주는 툴낭사원을 창건했다. 그 후 티송데첸(742~797) 왕대에는 인도의 나란다(Nālanda) 대학 장로인 샨따락시따(Śāntaraksita)와 밀교승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초청하여 삼예(Bsam yas)에 대승원을 건립하였다(779). 그러다 티손데첸 왕대 말기에 산따락시따의 제자 까마라실라(Kamalaśīla)가 초청되어 중국의 선승 마하연(摩訶衍)과 삼예 승원에서 대 논쟁(792~794)을 통해 인도계 불교를 선택하게 된다.  
이 삼예의 대논쟁은 티손데첸 왕의 면전에서 이루어졌는데, 마하연이 “흰 구름도 검은 구름도 하늘에 있으면 장애가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선을 행하여 천상에 가는 것도 악을 행하여 지옥에 가는 것도 다같이 윤회 속에서 벌어진 것으로 불성을 얻는데 똑같이 장애가 된다. 윤회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것도 궁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돈오(頓悟)야말로 십지와 동등한 것이다”라고 주장하자, 까마라실라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궁구하지 않고서 해탈할 수 있다면, 실신한다든지 졸도했을 때에도 해탈한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방편과 반야의 지에 통달하고 진리를 잘 관찰하여 일체법이 무자성임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티베트의 역사서에 따르면 이 논쟁 이후 마하연은 까말라실라에게 화환을 바치며 패배를 인정하였고, 결국 티베트에서 추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200여 년이 흐르면서 잘못된 밀교행법으로 인해 티베트의 불교계가 문란해지게 되자, 11세기 西티베트의 고루레 왕은 인도의 고승 아띠샤(Atiśa: 982~1054)를 초청하게 된다. 아띠샤는 까담(Kadam)파를 창설하여 계율의 중요성과 밀교의 엄숙성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보리도등론>(Bodhipatha pradīpa) 등의 저술을 통해 소승, 대승, 밀승을 구분하고 밀승 중에서 무상유가(無上瑜伽)탄트라가 최상이라고 정리했다. 
현재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인 겔룩, 닝마, 까규, 사꺄파는 모두 아티샤의 영향으로 성립되었다. 아티샤가 까담파를 창시한 이후, 까담파의 엄숙주의에 반발하는 그 제자들에 의해 까규파와 사캬파가 각각 분파된다. 그리고 아띠샤 이전의 티베트 밀교는 닝마파 독립교단이 되었다. 그리고 아티샤에 의해 창시되었던 카담파는 총카파(1357~1419)의 개혁 이후 현재의 겔룩파로 이어진다. 
티베트 불교는 그 교학의 본질에 있어 ‘공’ 또는 ‘중관’을 중심으로 한다. 이러한 티베트불교 교학은 8세기 후반, 인도에서 티베트로 들어가 티베트 불교철학의 기초를 닦은 샨타락시타와 카말라쉴라로부터 나가르주나(용수, 2~3세기)의 <근본중송(根本中頌>이라는 논서에 의거하는 중관파(中觀派)의 ‘공사상’ 즉 “일체의 법(法, dharma)은 공으로 실재하지 않는다.”라고 설하는 중관사상을 불교의 모든 사상 가운데 최고의 것으로 간주했다.
대승불교 가운데서 이 중관파와 대립하는 것이 유가행파 또는 유식파로, 그들은 중관파가 주장하는 ‘일체법의 공’을 ‘악취공(惡取空; 잘못 이해된 공성)’으로서 배척하고 “인식(식)만이 실재한다”라는 ‘유의(有意)사상’을 강조했다.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닝마파는 내용적으로는 중국의 선과 인도밀교가 융합된 형태를 보이며, 참 마음의 자각을 강조하고 족첸(dzog chen)을 수행법으로 삼는다. 11세기 후반 라닥지방의 라마인 마르파(Marpa)에 의해 창시된 카규파는 마하무드라(mahāmudrā)를 중심으로 한 은둔수행을 특징으로 하고, 사캬파는 윤회와 열반의 불이(不二)의 체득을 수행의 목표로 삼으며, 겔룩파에서는 계행을 중시하며 원초적 정명(淨明) 체득을 목표로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4대 종파는 밀교수행뿐만 아니라 대소승을 포괄한 모든 수행을 닦을 것을 강조하고, 인도 내에서 발생한 다양한 불교사상 중 중관사상을 가장 중시한다는 점에 일치를 보인다. 
이렇게 ‘포괄적 수행’을 강조하고 ‘중관사상’을 중시하는 것은 겔룩파의 창시자인 총카파의 교학에 근거한다. 티베트인들에 의해 문수보살의 화현으로 간주되는 총카파는 그 때까지 전승되어 오던 모든 교학과 수행법을 종합하여 체계화하였다. 총카파가 탄생한 15세기 중반은 티베트대장경의 경부(깐쥬르)와 논부(텐규르)가 모두 완성된 시기였다. 이런 시대배경 하에서 태어난 총카파는 아티샤에 의해 창설된 카담파의 전통을 계승하며, 대소승의 모든 수행을 포괄하여 단계화 한 <보리도차제광론>을 저술했다(1402년). 아티샤는 깨달음을 지향하는 중생을 하사(下士)와 중사(中士)와 상사(上士)로 구분하는데, 이에 따른 수행체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티베트의 수도 라싸의 포탈라궁전


티베트 수행체계의 특징은, 첫째, 수행이 단계화되어 있고, 둘째, 앞 단계의 수행이 완성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수행을 허락하지 않고, 셋째, 각 단계마다 필요한 마음자세를 갖추는 수행이 제시되고 있고, 넷째, 대부분의 수행이 철저한 분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고, 다섯째, 모든 수행은 내세 지향적이며, 여섯째, 수행과 신행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티베트 수행의 특징은 ‘분별에 의해 대상을 관찰하는 사택수(思擇修)’가 중심이다. 사택수는 ‘사람으로 태어난 고마움’, ‘죽음에 대한 명상’, ‘윤회의 과정에 대한 공부’, ‘보리심의 발생’ 등으로, 사택수 없이 삼매만 닦으려는 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멸시키는 죄업을 짓는 자’라고 경계하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난 고마움’에 대한 사택수가 끝난 사람은 ‘하사도’ 수행에 들어가는데, 하사도의 수행에서 제일 먼저 제시되는 사택수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다. 쫑카빠는 ‘죽음에 대한 명상’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평생 계속해야 하는 최고의 수행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우리가 죽은 후 태어나게 될지도 모르는 ‘지옥과 축생과 아귀’의 세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러한 사택수는 ‘삼악취의 고통에 대해 큰 공포심이 들 때 까지’ 꾸준히 닦아햐 한다고 한다. 
 ‘죽음’과 ‘삼악취’의 고통에 대해 처절하게 자각했을 때 세간의 잣대를 넘어선 진정한 삶을 추구하게 되는 데, 그 해답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삼귀의다. 이러한 삼귀의 이후 수행자에게 인과응보의 이치를 가르친다. 선업을 지을 경우 행복한 내세가 보장되고 악업을 지을 경우 고통스러운 내세가 초래된다. 여기서 선과 악을 가름하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이 십선계(十善戒)이다. ①살생, ②투도, ③사음, ④망어, ⑤악구, ⑥양설, ⑦기어, ⑧탐, ⑨진, ⑩사견의 열 가지 행위를 저지를 경우 우리는 불행한 내세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십선계(十善戒)를 지키며 도덕적으로 살더라도 우리는 전생에 지었던 악업으로 인해 초래되는 불행한 과보들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보리도차제론>에서는 ‘악업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참회, 독경, 공성에 대한 이해, 불상조성, 공양, 염불, 지계행, 삼귀의, 보리심 등을 닦도록 독려한다. 
중사도의 수행은 해탈하려는 마음인데, ‘다시는 윤회의 세계에 태어나지 않으려는 마음’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이를 위해서 사성제를 관하고, 계정혜 삼학 수행을 제시한다. 
상사도 수행은 모든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보리심(Bodhicitta)’을 갖추게 만드는 수행은 칠종인과법과 자타상환법이다. 칠종인과에 대한 관찰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①우리가 수억겁에 걸쳐 윤회하며 살아오는 동안 모든 중생이 전생에 한 번쯤 자신의 어머니였으며 미래에도 언젠가 자신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知母). ②그리고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한다(念恩). ③그 다음에는 ‘이렇게 은혜로운 어머니들을 버리고 돌보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눈 멀어 비틀거리며 삼악취의 벼랑으로 가는 어머니를 그 아들이 아니면 누구 구해주랴’라는 등의 생각을 가슴에 새긴다. ④그리고 念恩에서와 같이 ‘친족 → 일반인 → 원수 → 일체중생’의 순서로 ‘그들이 안락하기를 바라는’ 慈心을 되풀이하여 사유한다(修慈). ⑤수자의 경우와 동일한 순서로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悲心을 되풀이하여 사유한다(修悲). 이는 ‘사랑하는 아들의 고통에 대한 비심과 동등한 정도의’ 悲心이 모든 중생에 대해 들 때까지 되풀이한다. ⑥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더욱 강화하여(强化), ⑦‘일체중생을 구제한다는 짐을 내가 짊어지겠다’고 서원한다(菩提心).  
자타상환법은 ‘자신을 타인으로 삼고, 타인을 자신으로 삼는’ 수행이다. 이는 단순히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고 타인을 버리는 마음을,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수행이다. 
이렇게 보리심이 계발된 수행자라야 의궤를 받게 된다. 무수겁 동안 보살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의식인 것이다. 
이렇듯 티베트 불교는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며 살아가는 보살을 목표로 지성에 따듯한 감성을 덧입히고, 실천과 이론이 조화를 이루는 보살적 인격을 만들어 내는 수행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정리: 편집부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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