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역사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남쪽으로 이주하던 티베트인들이 9세기 초부터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17세기에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 ‘솁톤 라 파’가 부탄의 왕이 되었고 ‘다르마 라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후 라 파의 뒤를 이은 ‘돕게인 솁톤’이 펜로프(영주)·중펜(성주)들을 임명하는 등 부탄의 행정 체계를 다지게 된다. 그의 후계자는 정치와 종교 양 측면에서 권력을 행사했던 돕게인 솁톤과는 달리 종교적 역할만을 담당하는 한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대리인을 세워 ‘데브 라자’의 칭호를 주고 그에게 모든 정치 실무를 담당하게 했다. 이와 같은 2원적 형태는 20세기초 마지막 다르마 라자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영적 지도자인 다르마 라자라는 직위는 환생이 입증되었다고 여겨질 때 승계되었는데, 마지막 다르마 라자가 죽었을 때에는 이러한 영혼의 윤회를 찾아볼 수 없었고, 따라서 이 직위와 이에 대한 예배의식은 중단되었다.
19세기부터 부탄은 여러 지방영주(penlop)들의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07년부터 펜로프가 둑곌포(왕)가 되어 영국에 의해 부탄의 유일한 통치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세습왕조를 수립했다.
파로(Paro) 현은 부탄을 구성하는 20개 현 가운데 하나로, 오랜 역사를 가진 산골짜기이며 티베트와의 무역 교류나 침략이 잦았기 때문에 파로 현의 문화는 티베트 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파로는 해발 2,200m에 위치해 있다.
붐탕 자카르종
자카르종은 행운의 흰새가 점지한 승리의 사원으로 불린다. 쵸스코르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그림같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 자카르종은 둘레의 길이만도 1500m가 넘어 트롱사종과 함께 부탄에서도 가장 큰 종으로 알려져 있다.
자카르종은 1549년 샤브드롱의 증조할아버지인 가기 왕축이 세웠다. 당시 승단 회의에서 이곳에 새로운 사원을 짓기로 하고 적당한 땅을 선정했는데 당초 선택된 위치는 현재의 자카르종이 세워져 있는 언덕의 맞은편이었다. 그러나 땅을 고른 직후 어디선가 커다란 하얀 새가 나타나 허공을 세 바퀴 돌고 내려앉은 후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흰 새가 내려 앉은 곳이 바로 지금의 자카르종이 세워진 자리다.
‘자카르’라는 이름의 ‘자’는 새를, ‘카르’는 흰색을 뜻하니 말 그대로 ‘흰 새의 사원’이다. 이 사원은 처음에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샤브드롱이 통치하던 1600년대 초반 자카르종은 샤브드롱의 지시로 대형으로 증축되고, 1667년 티베트의 폰촉 남걀왕이 쳐들어온 것을 물리친 후 승리를 기념해서 더욱 확장되었다. 이 종의 공식 명칭은 율레이푼촉남걀종인데 푼촉 남걀왕을 물리친 이후 이름이 붙여져서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탁상곰파
탁상곰파(Taktshang Gompa)는 부탄불교의 개조인 파드마삼바바와 관련이 있다. 8세기경 붐탕의 쿠르제라캉에 도달한 파드마삼바바는 티베트의 국왕 치송데첸의 초청을 받아 티베트를 방문, 수많은 이적을 남기며 닝마파불교의 시조가 된다. 그 뒤 파드마삼바바는 부탄을 방문하여 여러 곳에 자신의 족적을 남겼는데 탁상곰파도 바로 이때 파드마삼바바가 머물렀던 곳이다.
파드마삼바바는 암호랑이를 타고 날아서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이때 악마와 도깨비들을 모두 조복시킨 후 현재의 탁상곰파가 있는 이 바위산의 동굴에서 석 달 간 명상에 들었다고 한다.
‘호랑이 둥지’라는 이름은 당연히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이곳에 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탁상곰파의 중심법당은 1692년 파로의 성주였던 걀세 텐진랍게가 파드마삼바바가 명상했다는 자리 위에 세웠다. 이후 파드마삼바바가 악마를 무찌르는데 사용한 금강저가 봉안돼 있다는 ‘우겐 체모 라캉’과 파드마삼바바의 궁전을 의미하는 ‘장포펠리’ 등이 세워졌고 지금의 규모로 확장됐다. 11, 12세기 밀라레빠도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탁상곰파는 1951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고 1998년에 큰 화마로 잿더미가 되었다. 그러자 지난 2000년부터 부탄국민들의 모금운동으로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