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1세기 세계 불교의 종주국이 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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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1세기 세계 불교의 종주국이 될 수 있을까 ㊤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1.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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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스텔라 박

<제주불교>는 <미주현대불교>(발행인 김형근)와 기사제휴를 통하여 미국의 불교 현황과 불교 담론을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한다. <미주현대불교>는 매월 발행되는 불교전문잡지로 창간된 지 30년이 되었다. 
미국에서의 한국불교는 약 100여개의 한국사찰이 있지만, 티베트불교와 베트남불교, 남방불교에 비해서 영향력이 크지 않다. 그리고 미국은 불교신앙적 입장보다는 명상기법이라는 스킬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교를 오랫동안 문화적 유전자로 삼아온 오랜 불교 전통사회로서 현대적 가치관에 따른 미국인들의 불교적 관점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이 많다고 본다. 이에 미국에서 한국불교를 이끌어가는 현지의 목소리를 지면을 통해 소개해본다.        
이 글을 기고한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 편집자 주

 

미제는 뭐든 다 좋아

아마도 한국전 이후일 것이다. 미제장사라는 직업이 생겨났다. 미군부대에 납품된 물건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남대문 시장 미제장사 아줌마들의 가판대에까지 오르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훗날 1950-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고 대충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맛보게 된 것이 엠앤엠(M&M) 초콜릿이고 스키피 땅콩버터(Skippy Peanut Butter)였으며 스팸(Spam) 통조림이었다. 당시 우리 나라는 찢어지게 가난하던 때인지라 어른들은 “미제는 품질이 다 좋은 법이여.”라는 말씀들을 하시곤 했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징하디 징한 관계는 그때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21세기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아직도 연세 지긋하신 분들에게는 미국이 우리가 영원히 손잡고 함께 가야할 우방국인 것 같다. 먹을 것 없던 불쌍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밀가루를 원조해줘 수제비라도 만들어 먹게 해, 굶어죽지 않게 해주었던 고마운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 것임에도, 그분들에게 미국은 대한민국을 영원히 돌봐줄 일편단심 나라로 보이는가보다.
헤아려보니 미국 땅에서 살게 된 세월이 이제 내가 태어났던 한국에서의 나날들보다 더 길어졌다. 미국 여권을 가지고 여행을 하지만 나의 정체성은 아직 한국인이다. 나라고 규정할 것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래서 늘 지구촌 시민(Global Citizen)임을 외치지만, 나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릴 때면 아직까지도 가슴을 졸여가며 한국을 응원한다. 한국의 보이 밴드인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고 그래미상 시상식에 서면 마치 내가 난 자식새끼라도 보는 것처럼 뿌듯해진다. 미국인 친구들이 한국 음식 맛있다는 평가를 하면 신이 나서 기꺼이 밥을 사주기도 한다.

한국인에 비친 
미국 불교 상가의 모습

하지만 한국을 떠나 산지 오래되어서인지 이제 나의 가치관과 매너, 표현양식은 한국인의 그것과 상당히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비춰봐야 아는 법이다. 
최근 한국에서 온 불교방송 다큐 제작팀과 미국 서부 지역 곳곳을 다니며 ‘미국 불교와 미국인의 명상수행 현황’에 대해 취재를 다녔었다. 팀원 중 한 명이 이렇게 물어왔다. “선생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초면임에도 헤어질 때가 되면 뜨겁게 포옹을 하시고, 지나치게 친절히 대하는 모습이 제게는 참 낯설어 보입니다. 그게 미국 불교신자들의 특성인가요? 아니면 선생님의 특성인가요?”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났다가 헤어질 때면 꼭 끌어안고 서로의 존재를 감사해하는 모습이 생경한 것을 넘어 우리 표현으로 좀 ‘오바’한다고 느껴졌었나 보다. 글쎄… 잠깐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다시 한 번 무상, 고, 무아를 사띠하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미국 불교 공동체 전체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속해 있는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의 상가(Sangha)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어요. 저희들은 클래스, 프랙티컴(Practicum – 집중 트레이닝) 아니면 안거(Retreat)를 마친 후,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지라도 만나고 헤어질 때 포옹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특히 일주일 이상의 안거를 하고난 후에는 더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안거 기간 동안은 말을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시선도 바닥만 보고 다니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런 교류도 없어요. 하지만 같은 공간에 앉아 침묵으로 현존하다 보면 대화로 서로를 알게 되는 것 이상의 연결됨을 느끼게 되죠. 그래서 마냥 서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겨, 헤어질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뜨거운 포옹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의 경우를 보면 기독교회에서 주로 그러는 것 같아요.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한 듯한 과잉친절로 대하죠. 절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무덤덤하게 대한다고 할까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편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어쩜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마음에 “이건 뭐지?” 하는 경고등이 켜진 상태라고나 할까. 분명 뇌 가운데 변연계가 활성화 되었을 것이다. 변연계가 활성화되면 자율신경이 활성화되어 심장에 산소가 잘 공급되지 않고 가슴이 조이는 것 같으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입안이 타들어간다. 이는 우리들이 뚜껑 열리도록 화가 났을 때와 거의 같은 반응이다. 또한 수치심, 죄책감, 불안, 공포를 느낄 때도 우리들 몸의 반응은 대충 엇비슷하다.
그의 질문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나의 경향성을 돌아보게 했다. 이번 취재 길에서 만난 미국 불교의 대표자들 가운데 처음 만나 인터뷰를 잠깐 하면서 마음이 동해 헤어지며 포옹을 하게 된 인물이 둘 있다.
그 한 명은 샌프란시스코 젠센터의 자매 기관인 더 그린 걸치 팜(The Green Gulch Farm)의 주지스님인 푸(Fu)이다.
그녀의 사로잡힘 없는, 경계 없는 현존은 나를 매혹시켰다. 인터뷰를 마치고 “안아도 되요?” 하며 수줍게 질문하는 나에게 그녀는 “이리와요. 나는 예전에 히피였어요. 우리 히피들은 포옹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하면서 꼭 안아주었다.
다른 한 명은 나로파 대학(Naropa University)의 교수인 주디스 시머브라운(Judith Simmer-Brown)이었다. 나로파 대학의 설립 당시부터 함께 해온 그녀는 영성 수행과 학문을 결합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미국 불교의 산증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나에게 그녀는 선뜻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포옹해도 되요?”“물론이요. 교수님. 영광입니다.”우리는 한 1분 정도를 아무 말 하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그녀는 나의 어머니였을 수도, 언니였을 수도 있다. 

미국은 잘사는 만큼 문제도 많다.

이 세상에서 옷깃만 스쳐도 영겁의 인연이 있다는 말을 다시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지구별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길고 긴 인연으로 엮여 있다. 나라 할 것 없이 지금 이 몸을 타고 태어나 경험을 하며 살고 있는 ‘나’는 바로 그녀이며, 내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질문을 한 그이기도 하다.
나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모든 면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미국이 전 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오지랖 넓게 나서 평화의 전사(Warrior)인 양 하며 일으킨 전쟁에는 학을 뗄 정도이다. 
21세기 가장 호전적인 나라는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미국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 무기를 팔 수 있고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탄소 생산을 많이 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의 쓰레기 분리수거는 미개국 수준이다. 땅덩이가 넓다 보니 매립지가 많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플래스틱, 음식물 찌꺼기를 섞어서 버리는 현실을 보면 지구 어머니의 아픔이 느껴져 가슴이 아파온다. 
생각이 좀 있는 사람들은 미국인의 소비행태에 대해 혀를 차며 걱정한다. 만약 중국인, 인도인들이 미국인들처럼 소비한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혼자서라도 쓰레기 처리를 잘 해보려고 무진장 애를 써봤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지속가능 운동(Sustainability Movement)은 한계가 있다. 제도적인 측면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개별적으로 모두 다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긍심을 가지고 하늘 아래 한결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약삭빠르고, 자기 것 내놓을 줄 모르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존재들도 많다. 분명한 것은 나의 의식 상태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면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배울 바를 다했더니 더 이상 내게 가르침을 줄 필요가 없는 이들은 내 삶에서 사라져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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