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자년, 행운과 깨우침을 가져오는 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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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자년, 행운과 깨우침을 가져오는 쥐 이야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1.0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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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간지(쥐) / 그림: 김대규 화백
12간지(쥐) / 그림: 김대규 화백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가 밝았다. 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지만, 사람에게는 저장한 곡식을 훔쳐 먹고, 중세 유럽에서는 페스트 같은 전염병을 옮기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지만 민간의 설화에서는 비교적 친근하고 꾀많은 동물로 비유가 되기도 하고 근면과 영리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 오래 전부터 쥐는 풍요와 희망을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왔다. 또 쥐는 번식력이 왕성해 다산(多産)을 상징하기도 한다. 쥐가 희망과 기회를 상징하는 이유는 미래를 예시하는 영물(靈物)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꿈에 쥐가 나오면 재물과 행운이 들어온다는 해몽도 있다. 

경전에서도 쥐는 부처님의 전생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에는 부처님이 쥐로, 데바닷타가 족제비로 그려진 전생담이 알려져 있다.
한때 부처님이 쥐로 태어났을 때, 큰비가 멈추지 않고 7일 동안 내렸다. 동물들은 동굴로 피하게 되었고, 그곳을 지나던 쥐와 뱀, 족제비도 비를 피해 한 동굴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족제비가 쥐를 잡아먹으려 하니, 뱀이 족제비를 말리면서 싸움을 하기 보다는 쥐에게 먹을 것을 구해올 것을 청한다.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씨’의 쥐는 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동안 동굴 속의 족제비는 쥐가 먹을 것을 구해오지 못하면 대신 쥐를 잡아먹자고 뱀을 설득한다. 뱀은 족제비가 쥐를 잡아먹을 생각인 것을 간파하고 쥐에게 몰래 이 이야기를 전한다. 쥐는 그 말을 듣고도 더욱 열심히 뱀과 족제비를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먹을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쥐는 결국 뱀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리를 떠난다. 경전에서는 이 쥐가 부처님의 전생이며, 족제비가 데바닷타의 전생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12간지 중 만월보살 쥐신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달을 만드는 보살로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여 세상을 보름달이 되게 하려 한다. / 그림: 김대규 화백
12간지 중 만월보살 쥐신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달을 만드는 보살로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여 세상을 보름달이 되게 하려 한다. / 그림: 김대규 화백

 

<불설비유경>에는 부처님이 승광왕을 위해 설법한 ‘안수정등’ 법문이 나온다. 한 나그네가 광야에서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 웅덩이로 숨었는데 다행히 나무뿌리를 붙들어 웅덩이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흰쥐와 검은쥐 두 마리가 나타나 그가 잡고 있는 나무뿌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웅덩이 네 귀퉁이에는 독사가 있었고, 바닥에는 독룡이 도사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들판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점차 다가와서 그 나무마저 태우고 있었다. 그때 나무에서 벌꿀이 그 사람의 입에 떨어졌다. 그 사람은 위험한 자신의 처지를 잊고 꿀맛에만 탐욕을 냈다. 여기서 광야란 무명(無明)을 의미하고, 두 마리의 쥐는 낮과 밤 속에서의 끊임없는 번뇌의 삶을 말한다. 이처럼 쥐는 근면, 혹은 탐욕 등이 함께 공존하는 의미를 지닌다.

부처님 재세시 인도에서는 쥐가 해로운 동물이자 불길한 동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오히려 그릇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비유로 쥐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본생경>에는 ‘쥐가 갉아먹은 옷’ 이야기가 나온다. 왕사성에 어떤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새 옷을 쥐가 갉아먹은 것을 발견하고 불길한 징조라 여겨 내다 버리려 하였다. 마침 묘지를 지나던 부처님이 그를 제도하시고자 그 옷을 건네받았다.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옷의 불길한 징조를 고하며 만류하자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우리는 출가한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묘지나 거리, 또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옷들이 알맞다. 그대는 이번 생뿐만이 아니라 전생에도 이 같은 그릇된 견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자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전생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간청하였다.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다음과 같이 들려주셨다.
옛날, 마가다국 라자가하에 신분이 높은 바라문 계급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미신을 깊이 믿었는데, 옷으로 길흉을 점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 옷이 입으려고 보니 쥐가 갉아먹어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옷이 상해 있었다. 이 바라문은 그 옷이 집에 재난을 가져온다고 믿고 인가가 없는 공동묘지에 자기 아들을 시켜 버리게 했다. 
그런데 그 공동묘지에 있던 한 수행자가 버린 옷을 주워들고 묘지를 떠났다. 이 말을 전해들은 바라문은 그 수행자를 수소문 끝에 찾아내 자신의 점괘를 들려주며 재앙이 닥칠 것이라면서 옷을 버릴 것을 거듭 재촉했다. 이에 수행자가 바라문에게 말했다.
“사람의 인상과 손금, 그리고 꿈으로 점치는 온갖 미신이 만연해 있다고 해도 미신을 뛰어넘어 고통의 근원이 되는 미혹의 번뇌를 끊으려 노력하는 일이 근본사이거늘. 바라문이여, 눈을 뜨라. 올바른 가르침에 귀의하라.”
이상과 같이 전생 이야기를 들려준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길흉의 징조나 꿈, 관상의 생각들에서 벗어난 이는 이미 미신의 허물을 벗어나 더불어 일어나는 모든 번뇌를 항복받고 다시는 나고 죽는 윤회의 몸을 받지 않는다.”
이 본생담에서 쥐는 미신을 타파하는 깨우침을 위해 등장시키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불교 수행을 말할 때 근면, 정진의 표상으로 쥐를 활용했다. <삼국유사> 권4에서는 ‘미륵신앙을 크게 일으킨 진표율사는 수행할 때면 쥐를 기르고 미륵전에서 수도했다’고 기록했다. 
경주의 원원사지 3층석탑 탑신에는 쥐가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다. 이는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12가지 명호가 각각의 동물로 배치되는데 만월보살(月天佛) 화신이 쥐이기 때문이다. 만월보살은 달이 신선하고 아름답게 빛나 중생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기 위해 맑은 물을 끊임없이 채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만월보살이 달에 광명의 물을 길어다가 아무리 채워도 마구니가 물을 마시기에 물이 자꾸 떨어져서 인간세계가 암흑세상이 되자 만월보살은 악마를 잡기 위해 쥐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항상 고달프지만 부지런함으로 12지 동물의 첫 번째인 이유다.
불교에서는 12지신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찰에서는 예로부터 큰 행사를 할 때 삿됨을 물리치는 벽사(闢邪)를 위해 12지신을 열 두 방위에 걸었다. 여기서도 쥐는 첫 번째로 북방을 막는 벽사를 담당했다.

경주 원원사지 탑 북면에 남아 있는 신라시대 십이지신 중 쥐신상(가운데). 두 손을 앞가슴에 모은 공예(恭禮)의 자세를 취하고 있어 불법 수호신으로서의 십이지신상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경주 원원사지 탑 북면에 남아 있는 신라시대 십이지신 중 쥐신상(가운데). 두 손을 앞가슴에 모은 공예(恭禮)의 자세를 취하고 있어 불법 수호신으로서의 십이지신상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쥐가 12지신의 제일 처음에 등장하게 된 이유로는 다음의 이야기가 전한다. 극락의 열두 개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을 뽑을 때, 하루는 부처님이 대세지보살을 불러 수문장을 지상의 동물 중에서 선정해 1년씩 돌아가며 당직을 세우도록 했다. 이에 대세지보살은 열두 동물을 선정하고 그들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 불러 모았다. 열두 동물 중 모든 동물의 무술 스승이었던 고양이를 제일 앞자리에 앉힌 후 차례대로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돼지, 개를 앉혔다.
이후 대세지보살이 부처님에게 설법을 청하러 갔고, 오랜 시간 기다리던 고양이는 갑자기 배가 아팠다. 참을 수 없었던 고양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공교롭게도 부처님이 도착했다. 빈 자리에 구경 왔던 쥐가 달려나와 “고양이가 수문장의 일이 힘들 것 같다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고 이에 부처님은 쥐에게 고양이를 대신해 수문장을 맡으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쥐와 고양이는 원수가 됐다고 한다.

탑이나 불전 외벽 등에서 볼 수 있는 십이지신상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천문 역법과 관련된 도상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우주와 천계의 운행을 나타내면서 원을 중심에서 12등분하여 그것을 열 두 방위로 삼았다. 그리고 각 방위마다 동물과 인물 등 열두 가지 형상을 보병 . 쌍어 . 백양 . 금우(金牛) . 쌍녀 . 게 . 사자 . 처녀 . 천칭 . 천갈 . 인마(人馬) . 마갈(摩) 등으로 배치했다. 이 천문 역법 도상이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시기에 중국으로 들어오고, 중앙아시아의 역법 도상이 중국식으로 편집되면서 다시 12개의 동물로 재창조되어 12지신으로 정착이 되었다. 중국의 십이지신은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쥐띠 해를 맞아 특유의 근면과 부지런함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벗어나 행운의 외호를 맡아 도와주는 쥐의 기운으로 한 해의 축복이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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