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마음뿐! 마음만을 그렸던 여류화가 아그네스 마틴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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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마음뿐! 마음만을 그렸던 여류화가 아그네스 마틴③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2.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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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성미 _ 컬럼비아 대학 아동미술 박사과정

<제주불교>는 <미주현대불교>(발행인 김형근)와의 기사제휴를 통해 미국에서의 불교활동을 소개한다. 이 글은 평생 개인 소유물을 지니지 않고 마음의 산란함을 방지하고자 50여년간 신문도 읽지 않으며 오직 선의 경지만을 추구하며 소박한 삶을 살다 간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세계를 섬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삶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아그네스 마틴
아그네스 마틴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해 큰소리로 한 번 외쳐보고 싶은 그런 마음, 어쩌면 이런 마음은 비단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수줍은 바램일지도 모른다. 아그네스 마틴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공개할 때마다 무척 수줍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그녀에게 더욱 소중했던 건 바깥세상을 향한 외침이 아닌 내면적 성찰이라는 끝없는 안으로의 탐구였고,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마치 알몸으로 혼자 거리에 서 있는 것과 같이 무척 힘들고 수줍은 일이었을 것이다.
 

아그네스 마틴의 마음 연작ⓐ
아그네스 마틴의 마음 연작ⓐ

 

  • 정신분열증과 예술

아그네스 마틴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분열증이 유전적 원인이었는지 후천적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 목소리는 그녀에게 ‘미술작업을 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마” 라든지, ‘정신분열증 약을 먹지마’ 라든지의 명령을 내렸고, 그녀는 그 목소리를 거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수 차례 병원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그녀의 정신적 불안정 상태와 그녀의 예술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금씩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 쪽에서 그녀의 작품을 단순히 정신분열증이라는 정신상태가 만들어 낸 하나의 독특한 예술적 산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또 다른 한 쪽에선 정신분열증과 그녀의 작품세계를 분리해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그네스 마틴의 마음 연작ⓑ
아그네스 마틴의 마음 연작ⓑ

 

미술가들과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던 페이스 갤러리의 아니 글림셔(Arne Glimcher)는, “마크 로스코 역시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작업을 했고, 아그네스 마틴 역시 정신이 가장 선명할 때 작업을 했다.”고 말하며 그녀의 작품세계와 정신적 불안정 상태를 분리해서 보는 것이 맞다는 견해를 밝혔다. 물론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세계를 어떤 정신분열증 환자의 독특한 행위쯤으로 치부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캔버스에는 그녀의 치열한 정신적 갈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녀의 캔버스는 대부분 정사각형이다. 작은 정사각형 작품들로부터, 많은 작품들은 72”x72”라는 똑같은 크기를 고수하기도 했다. 마치 악보의 오선지 같기도 하고, 때론 공책에 그어진 줄들을 연상시키는 촘촘한 평행선들이나 그물망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는 선들, 또 같은 패턴 안에서 반복적으로 찍혀 있는 수 많은 작은 점들. 균형과 조화를 중시한 작가의 미학적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분열감을 느끼는 한 개인이 자신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이고 필사적인 행위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림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반복적인 패턴이나 양쪽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는 그림을 선호하고, 그런 그림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만큼 그들의 내면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아그네스 마틴의 마음 연작ⓒ
아그네스 마틴의 마음 연작ⓒ

 

  • 거부할 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움

아그네스 마틴은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녀가 불교라는 동양사상에 심취했던 것도 어쩌면 치열하게 요동치고 있었던 그녀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한 단서였는지도 모른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듯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물처럼 겉으로 보여지는 그녀의 작품은 조용하고 평온하다. 그렇다면 그 평온함을 창조한 작가의 치열한 인생은 어디로  갔을까? 그녀가 그렸을 수없이 많은 선들, 때론 촘촘하게, 때론 여유있게, 때론 자로 잰 듯 진하고 정확하게, 때론 가늘고 여리게 마치 그녀의 가는 숨결이 손 끝을 타고 그대로 캔버스 위로 전해진 듯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선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연약해 보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선들, 캔버스 끝까지 뻗어 있는 선들, 일정간격으로 멈춰서 있는 선들, 공간을 열어주고 있는 선들, 공간을 가두고 있는 선들, 그녀의 수 많은 선들을 따라가고 있던 필자의 눈앞에 캔버스 마주하고 조용히 움직이며 작업을 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구겐하임 미술관을 가득 채운 수 많은 아그네스 마틴은 자신의 캔버스를 조용히 응시하며 그림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진실, 진짜, 참이 만들어 내는 살아있는 기운은 흉내를 낼 수도 없고, 또 억만금을 주고 사올 수도 없는 순수의 영역일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가슴을 통해 전달되는 그 생생한 경험들. 그건 진짜만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강력한 생명력 일 것이다.

아그네스 마틴의 마음 연작ⓓ
아그네스 마틴의 마음 연작ⓓ

 

어둠이 내린 미술관 밖에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고, 온통 아그네스 마틴으로 물들어 버린 필자의 몸은 마치 요술처럼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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