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지코 티즈데일 -“색과 공, 공과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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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지코 티즈데일 -“색과 공, 공과 색”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2.2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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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서구의 여성불자
글 _ 주 현 _ 스토니부룩대학 불교학 교수

주현 교수는 메리안 드레서 (Marianne Dresser)가 삼십 명의 서구 여성 불교 수행자들이 쓴 글을 모아 엮은 책“가장자리에 서 있는 서구 여성 불자들의 현대적 시각들”에 소개된 서구의 여성불자의 이야기를 통해 본래의 여성성 안에서 불교가 어떻게 이해되고 수행되었으며, 또한, 그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불교의 가르침, 철학, 윤리, 심리, 종교성 등을 거론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전통적 관점을 넘어 불교의 세계적 현상으로서의 폭넓은 이해를 위해 미주현대불교(발행인 김형근)와의 기사제휴로 이 글을 소개한다. 

 

샐리 지코 티즈데일
샐리 지코 티즈데일

오레곤에 있는 법운 젠 센터(Dharma Rain Zen Center)의 선사였고, 고인이 된 교겐 칼슨(the late Kyogen Carlson)의 재가 제자인 샐리 지코 티스데일은 현재 법운 젠 센터의 지도법사이며, 동시에 트라이사이클(Tricycle) 불교 잡지의 자문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불자이다. 샐리는 편집인으로서 많은 불자의 생각과 의견들을 담은 편지들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대화형식으로 글을 많이 썼는데, 다음은 그녀의 비망록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색과 공, 공과 색”은 이분법적인 용어로 나열되어 있다. 샐리는 이글에서 이분법의 논리를 사용해서 남성과 여성의 성별(gender) 문제를 집중 조명하며 불교의 본질적 원리에 접근하고 있다. 몇 년 전 불교 승가의 한 모임에서 여러 남녀 신도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의 글이 시작된다. 들려오는 소리 속에는 어느 여성의 외침, “외롭다,” 곧바로, 다른 남자의 반응,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 또 다른 편에서는 “성별이 문제다, 성별이 차이를 만든다” 등의 여성과 남성들의 산만하고, 불안정한 소리였다. 마침내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성별은 환상(illusion)일 뿐이다.” 불교 잡지들에 실린 여성들의 이야기들과 그것들에 대한 남성들의 혹독한 비판과 반응들을 통해서 샐리는 성 구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남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오직 환상이니까 편안하게 받아들이자고도 생각해본다.
“색(form)은 모두 공하다(empty), 그리고 공(空)은 색(色)이다. 완전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하나 (One) 안에서, 성차별은 대단히 해롭고, 반드시 거론되어야 한다는 많은 여성의 우려는 괴물다운 망상일까?”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고통, 한숨과 눈물 섞인 울부짖음의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서로 알아주고, 공유된 경험의 특이한 결합으로 느끼는 즐거움도 가진다. 
샐리는 외친다; 고유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있고, 그 둘은 원래부터 같지 않다는 것은 더욱더 착각이다. “여성적인 것(femaleness)”과 “남성적인 것(maleness)”은 단순히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개념들이며, 그 개념들은 무지와 변화의 연속적인 순환 속에서, 세상을 만들고, 만들어지는 모든 다른 것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생겨났다. 우리의 미로와 같은 복잡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문화와 경험 때문에 “남자들”과 “여자들”이 만들어졌고, 그 개념들을 실행하고, 받아들이며, 그리고 즐거워하는 것은 그러한 분별의 사이에서, 또는 그 너머에서 추는 춤이다. 따라서, 성별은 환상(illusion)이 아니고, 행위(karma)이다. 
불교 잡지 편집인으로서 샐리가 받은 편지에, 자신을 “선사(Roshi)”라고 자칭하는 한 수행승은 “성별에 대한 내용은 여성 법사들이 만들어 낸 유치한 횡설수설이고, 수행으로만 극복될 수 있는, 억지로 짜 맞춘 개념”이라고 화를 내며, “마음을 하늘만큼 넓게 하여, 남자도 만들지 말고, 여자도 만들지 말아라!”라고 혹평했다. 이에 대하여 샐리는 “이 말들은 어느 쪽 상황도 있는 그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양쪽 안에서 편리하게 사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그 자신은 모르고 있다.”라고 답한다.
현재 안에서 나타난 과거, 그리고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적 신념들에 대한 인식은 역사적 상황에 의해 왜곡되어 있고, 그러한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아주 미묘한 부분으로, 수행의 중심점이다. 우리는 그냥 서로 보려고만 하지 말고, 함께 완전하게 살려고 해야 한다; 그것은 받아들이며 동시에 행동하는 것이다. 샐리는, 끝으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분별의 현상들을 통해서 연기적인 중도의 자리를 찾아가는 수행의 길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이 글을 맺는다.
공(空)과 색(色)의 사이(between),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선(beyond) 자리가 있다; 즉 공즉시색(空卽是色)이고 색즉시공(色卽是空)인 자리, 그곳은 열반(涅槃) 즉 생사(生死)이고, 생사 즉 열반의 자리이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남자들이고 여자들이다; 남자들도 아니고 여자들도 아니다; 그리고 여자들이며 동시에 남자들이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서로 둘이 아니면서 또한 둘이다. 특히 사람들의 공동체인 승가에서 어떤 다른 방법으로 함께 우리의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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