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오닐(Kate O’Neill)-“침묵의 소리”(Sounds of Silence)
상태바
케이트 오닐(Kate O’Neill)-“침묵의 소리”(Sounds of Silence)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04 1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 현 _ 스토니부룩 대학 불교학 교수

케이트 오닐(Kate O’Neill)은 아일랜드계 미국인이고, 동성애 여성 불자로서 하버드 대학에서 인간 발달과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부터 위파사나(vipassana)와 선(Zen) 전통들을 배우며, 여러 경전 공부도 함께 했다. 1992년에는 틱낫한(Thich Nhat Hanh) 베트남 스님으로부터 “Order of Interbeing” (接現)의 14계도 받았고, 그 후 여러 해 동안 메사추세츠 또는 뉴멕시코에 있는 불교 사찰을 다니며 수행 경험을 쌓아왔다. 오닐(O’Neill)은 이 글 첫머리에 수잔 그리핀(Susan Griffin)이 쓴 침묵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그리핀이 말하는 “침묵”은 잠자는 동물의 침묵이나 텅 빈 마음에서 나오는 침묵과 같은 조용한, 평화로운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시끄럽고, 무서운 침묵이고, 아픈 침묵이다; 학살당한 한 무리의 사람들 침묵이며, 진실을 인정하기 두려운 마음의 침묵이다.
이 글에서 오닐은 첫 번째로, 그동안 그녀가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정치와 실천의 통합’에 관한 주제로 몇 가지 예를 들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별(gender), 성적 성향(sexual orientation), 그리고 정치가 어떤 방법으로 불교 수행과 함께 엮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영어로, “politics”라는 말은 라틴어, “polis”에서 온 것으로 “people”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불교의 정치(politics of Buddhism)는 모든 사람 간의 상호 연관(interconnection of all beings)에 있다는 것이다.
오닐은, 1990년대 초에 매사추세츠, 보스턴에 있는 한 베트남 불교 사찰에서 있었던 일을 예를 들어 소개한다. 전에 농구 운동장이었던 장소가 개발되어 베트남 불교 사찰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한 젊은이가 사찰에서 컴퓨터를 도둑질한 일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이 사찰의 주지 스님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도둑에 대한 보복이나 벌칙보다는, 그 젊은이를 위하여 농구장 문제를 해결하도록 주선하였다. 스님은 컴퓨터를 돌려받았고, 그 젊은이는 범죄의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스님의 이러한 자비로운 태도는 어떻게 불교 수행과 정치가 조화롭게 연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영향력 있는 가르침의 예다. 
이와 연관 지어, 오닐은 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사회적으로 연계된(socially engaged)” 불교를 떠올린다. 틱낫한 스님은 “만일 불교와 평화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평화를 택해야 한다. 불교에 대한 이해는 모든 불교 형상이나 의식(ritual)보다는 먼저 각자의 마음과 삶에 그 뿌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불교의 이러한 해석이 “비워진 마음(emptied mind)” 또는 “관념들을 벗어난 마음(a mind beyond concepts)”의 침묵을 의미한다.
오닐의 두 번째 내용은 불교와 페미니즘(feminism)이다. 두 분야 모두 일어나는 현상과 경험의 본성에 대하여 열린 마음과 깊은 관찰을 통한 자비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특히 불교 수행은 우리 자신의 경험들을 스스로 입증하면서 자신들과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984년 초하룻날, 오닐이 눈을 감고 처음으로 참선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과거에 당했던 성폭행 트라우마 (trauma)에 대한 몸의 기억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저 불안하고 유약한 느낌이었고, 지워 보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결국 오닐은 태극권(t’ai chi) 수업에서 육체적 자기방어를 수련하면서 정신적 불안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동시에 편안하게 참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닐은 이러한 수행과 인식의 과정을 통해서 우선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고, 그 경험을 일상 생활 안에서 육체적, 감정적으로 완전하게 회복시킬 수 있음을 체험했다고 증언한다.
1980년대 후반에, 오닐은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위파사나 명상 센터(Insight Meditation Center)에서 티베트 스승, 타라 툴쿠 린포체(Tara Tulku Rinpoche)로부터 의외의 법문을 듣게 되었다; “여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억압받아왔기 때문에, 여러분들 자신이 어떻게 인지하는가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모든 생각, 느낌들에 집착하지 말고 내려놓으라고 하는 일반 불교 법문과는 다르게, 특히 그것들을 집중해서 살펴보라고 하는 린포체의 법문에 오닐은 놀라웠고, 의아한 침묵의 명상 속에서 그 법문에 대해 무언가 좀 더 분명함을 원하고 있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불교 수행을 할 때 남성들과 여성들에게서 일어나는 심리적, 영적 현상의 차이를 인식하며, 그것은 생물학적인 차이라기보다는 유전적으로 부과된 문화적인 차이임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어려서부터 여자아이들은 관계(connection)를 바탕으로 심리적 감각이 발달하는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개별성(separateness)에 바탕을 두고 감각이 발달한다는, 사회학자, 낸시 쵸도로(Nancy Chodorow)의 이론을 인용하면서, 오닐은 불교 수행에서도 여성들은 관계성의 중심이 더 빨리 경험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여성들에 있어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와 깊은 친밀감은 수행의 핵심이고, 궁극적으로는, “상호 간의 공감(mutual empathy)” 또는 불교 용어로는 “자비(compassion)”로 표현되는 모든 존재와의 진정한 관계와 친밀감으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 수행과 연결하여, 오닐은 자신을 포함한 여성 동성애자들의 경험과 고통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필요성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의 문제점들을 서술한다. 1994년에 선조들의 고향인 아일랜드(Ireland)에 방문은 오닐에게 자신과 본 적도 없는 조부모들과 살아있는 관계성, 다시 말해서 연기적 공존(inter-being)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였고, 그녀의 명상 수행 속에서 오닐은 자신처럼 수많은 여성뿐 아니라 모든 중생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그러나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알려고 하지도 않은 영원한 침묵의 소리를 듣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