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 득도(得道)와 매화(梅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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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 득도(得道)와 매화(梅花)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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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홀로 피는 매화는 치열한 수행자에게 득도의 기연을 선사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서귀 끝자락부터 화사하게 피워온 매화가 바다건너 육지에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그렇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 같지 않은 봄이라 찬연한 매화향이 쓸쓸하기만 하다. 
삭막하고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공습으로 겨울을 지나 맞이하는 봄날이 반갑고 고마워야 하겠지만, 이번 봄은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산사에 가면 어김없이 매화나무 한 두그루 쯤은 볼 수 있다. 스님들은 왜 절 마당에 매화나무를 심을까?. 그저 단순히 봄소식을 빨리 전해주는데다 꽃도 아름답고 향기가 특별히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넘어 매화가 스님들이나 수행자들이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목적인 깨달음을 얻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던 선례를 본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것이든 깨달음의 인연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매화는 단순히 봄소식을 일찍 전해주는 향기로운 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득도의 기연(奇緣)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이러한 득도의 연을 표현한 대표적인 시로 무명의 비구니가 지었다는 오도송 ‘심춘(尋春)’이라는 시가 있다. 중국 송나라 때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려 있다고 한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녔지만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 발로 온 산을 헤매며 
구름만 밟고 다녔네
돌아와 웃으며 매화나무 
한가지 집어 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끝에 이미 한창이더라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遍頭雲. 
歸來笑拈梅花臭, 
春在枝頭已十分.

이 시에서 봄이란 ‘마음의 봄’, 즉 깨달음을 얻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경지를 비유한다고 할 것이다.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痴)가 사라지는 경지를 체득하면 아마도 이 영원한 봄을 누리지 않을까. 
이 시에서 보듯이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상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즉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힘을 키워가야 집 안에 핀 매화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일게다. 
매화를 찾아 험한 산을 헤매는 헛수고를 줄이려면 과욕을 버리고 안분지족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삶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가 여전히 먼 산을 헤매는 한, 봄은 이곳에 머물지 않는다.        / 고민정(재가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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