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평설 - 동아시아 화엄교학에서 신라불교의 위상을 재정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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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설 - 동아시아 화엄교학에서 신라불교의 위상을 재정립하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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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코세이 교수의“화엄사상의 연구”
화엄사상의 연구 | 이시이 코세이  지음 | 김천학  옮김 | 민족사 | 2020년 2월 25일 출간 | 정가: 58,000원
화엄사상의 연구 | 이시이 코세이 지음 | 김천학 옮김 | 민족사 | 2020년 2월 25일 출간 | 정가: 58,000원

화엄교학은 천태교학과 함께 중국불교의 이론을 대표하는 교학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화엄교학이 중국불교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며, 그 영향력은 한국·일본불교 더 나아가서는 현대 사상계까지 미치고 있다. 그러나 화엄교학에 관한 대다수의 연구는 사종법계설을 비롯한 전통적인 교학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사종법계설에 의한 구분이 정착되기 이전 화엄교학의 본래의 모습이나 화엄교학의 성립 사정 자체를 해명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시이 코세이(石井公成) 교수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화엄교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밝히는 연구를 계속해 왔다. 중국 화엄종 조사들은 어떠한 상황하에서, 어떠한 계통의 사상을 의식하면서 자신들의 교학을 구축해 왔던 것일까? 그리고 그 교학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가 그의 오랜 관심사였다. 
이시이 코세이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화엄교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한반도의 승려가 큰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불교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입당(入唐)하여 지엄(智儼)에게 사사하고, 동문의 후배인 법장과 친교를 거듭했던 의상(義湘)이나, 또 신라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긴 원효(元曉)가 법장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그러한 예이다. 이로써 화엄교학은 당시 동서 교류의 기운 가운데 자라났던 교리였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시이 코세이 교수의 신라불교에 대한 평가는 종래 학자들과는 매우 다르다. 이전은 신라불교를 하나의 조그만 흐름으로 생각했다면, <화엄사상의 연구>에서는 신라불교를 역동적인 흐름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이 책의 초본이 되었던 박사학위논문을 와세다대학에 제출하고 나서 예심위원회가 열렸을 때 비판적 의견이 있었다. 제출 당시 논문은 남북조시대부터 지엄(智儼)에 이르기까지의 중국 화엄교학, 신라의 화엄교학, 법장의 화엄교학, 신라 화엄사상의 전개, 일본의 초기 화엄교학이라는 순서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중국·신라·일본이라는 형태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저자는 당(唐)의 불교가 신라불교에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해서 형성된 신라불교가 다시 당의 불교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것이 나아가 신라에 들어옴으로써 상호 영향 관계에 있다는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의 순서대로 심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한 예를 보더라도 불교사를 국가별로 나누고 시대 순으로 고찰해 가는 연구방법이 얼마나 뿌리 깊었던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려나 문헌은 빈번히 이동하기 때문에 여러 국가 간 복잡한 상호 영향은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이다. 그러한 상호 영향은 동시대뿐만 아니라 시대가 상당히 떨어지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원효의 <대승기신론>을 둘러싼 상황은 최신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저자인 이시이 코세이(石井公成, 1950년 도쿄출생)교수는 1976년, 와세다(早稻田)대학 문학부 및 동(同)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고마자와 대학교(駒澤大學校) 불교학부 교수이며, 화엄종·지론종(地論宗)·선종·성덕태자 등을 주축으로 하여 인도·중국·한국·일본·베트남에서의 불교 교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시이 코세이(石井公成, 1950년 도쿄출생)교수는 1976년, 와세다(早稻田)대학 문학부 및 동(同)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고마자와 대학교(駒澤大學校) 불교학부 교수이며, 화엄종·지론종(地論宗)·선종·성덕태자 등을 주축으로 하여 인도·중국·한국·일본·베트남에서의 불교 교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에 대해서 중국의 많은 승려들이 주석서를 썼으며 그것들이 신라에 들어오자, <기신론>을 대승을 총괄하는 최고의 논서로 평가했던 인물이 원효이다. 원효는 그러한 <기신론> 주석서를 참조하여 <해동소>와 <기신론별기>를 저술했다. 그것이 당나라에 들어갔고, 그 영향을 받은 법장이 <대승기신론의기>를 쓰자 그것이 다시 신라에 들어왔다. 
원효의 저술이며 <기신론>의 영향이 농후한 <금강삼매경론>도 당나라에 전해지고, 선종 승려들에 의해 읽혀졌다. 원효의 저술은 일본에 대량으로 들어왔으며 나라시대의 여러 사원을 중심으로 널리 연구되었다. 한편 중국과 일본에서 원효가 존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근대 한국불교계는 한국에서 거의 없어진 원효의 저작을 일본에서 모았으며 원효의 평가도 점차 높아졌다. 그 결과, 원효는 한국을 대표하는 승려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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