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라석굴사원-대승불교의 개방화와 힌두교 전이과정 생생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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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라석굴사원-대승불교의 개방화와 힌두교 전이과정 생생한 보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2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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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여행작가)
▲동굴10; 차이탸(예배당)구조이며 일명 목수들의 굴로 불릴만큼 천정형태가 목조건축의 도리와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다.
▲동굴10; 차이탸(예배당)구조이며 일명 목수들의 굴로 불릴만큼 천정형태가 목조건축의 도리와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다.

엘로라석굴(Ellora Caves)은 데칸고원의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의 요충지인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서북쪽 약 30km거리에 있다. 이 엘로라 지역은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가 공통으로 참배하는 중심지였다. 8세기 중반 찰루키아의 가신이었던 라슈트라쿠타(Rastrakuta)가문이 찰루키아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라슈트라쿠타 왕조시대(753-973)를 열었다. 라슈트라쿠타 가문의 초대왕인 단티두루가는 엘로라를 수도로 정했다. 그를 이어 숙부 크리슈나1세(756-775 재위)는 시바신에게 바친 카일나사나타 사원을 건축하였다. 
엘로라석굴사원은 초승달 모양의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곳에 34개의 석굴이 6세기~10세기 전후하여 조성된 것이다. 이곳에는 원래 100개가 넘는 석굴이 있지만 이중에서 34개만 공개되고 있다. 이중에서 불교적 석굴이 가장 먼저 개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1굴부터 12굴까지가 불교사원이기 때문이다. 
엘로라의 처음 개착기인 6세기 무렵은 불교가 예전과 같은 확고한 신념이나 불법 전파의 의지가 강한 때가 아니어서 이곳의 불교 조각은 보살과 여신 같은 다양한 이미지가 불교에 도입되는 말기의 대승불교적 양상을 보여준다. 
불교 동굴인 1굴부터 12굴은 6~8세기경에 개착되었는데, 점차 위세가 강해진 힌두교의 영향과도 결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중 10굴은 620~650년 사이에 조성된 차이탸(예배당)형식의 굴로서 굽타의 사르나트 불상의 성향이 강한 불전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외 11개의 굴은 모두 비하라(초기 승방) 형식이다. 이즈음의 비하라 굴들은 불전과 승방이 서로 혼용되어 나타난다. 11굴과 12굴은 불전과 승방이 혼용된 형태이며, 특히 12굴은 3층 형태로 되어 있다.

▲동굴10 입구
▲동굴10 입구

 

1층은 수행자들의 침실이고, 2층은 큰 홀로 되어 있으며, 3층에 14위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일곱 불상은 명상에 든 모습이고, 다른 일곱 불상은 중생을 계도하는 모습이다. 이 불전들은 굽타시대의 이상적 심미주의에서 탈피해 화려함과 복잡한 형식을 보여준다. 그 이유로는 힌두교의 영향이 습합된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여신이나 만다라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신앙적 요소들이 혼용되어 등장하는데, 이는 이 시대의 불교가 이전처럼 독단적인 종교 형태에서 벗어나 개방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동굴12 내부
▲동굴12 내부

 

불전 형식의 10굴은 매우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데, 현무암을 목조조각처럼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 당시 인도 전역에서 약 2천여 개의 석굴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의 석굴 조성과정에서 얻어진 숙련된 솜씨가 최고조로 달한 세련미가 이곳에서도 발현되는 것이다. 이 10굴은 일명 비슈바카르마(Vishvakarma)굴로 일컬어진다. 이 말은 ‘목수들의 굴’이라는 뜻으로 천정 형태가 아치형으로 목조건축의 도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동굴12의 채색부조
▲동굴12의 채색부조

 

이 10굴은 사리탑을 모신 불전이 있는 차이탸석굴로 석굴의 내부는 굽타양식으로 천정의 너비가 약 13.1m, 깊이가 26.2m의 원통형이다. 그래서 천장은 마치 폭이 좁은 긴 굴의 천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치형 천장의 안쪽 끝부분에는 불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그 뒤로 원형의 스투파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이 스투파의 구연부(口緣部)가 마치 고려 청자 꽃병과 유사하고, 목조 건물의 도리와 같은 궁륭(穹窿) 천장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나 충량(衝樑) 역할을 하는 기다란 직사각형의 대들보에는 아름다운 부조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으며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여러 개의 원형 기둥들이 서있는 형태이다. 그 정중앙에 자리한 본존불과 좌우에 협시보살이 입상으로 새겨져 있다. 산처럼 보이는 광배는 외곽에 비천상이 새겨져 있고, 본존불은 옷을 벗은 듯한 모습으로 매우 얇게 표현되어 있다. 또 석굴의 위층 중앙 대형 창에는 삼엽형(三葉形)의 문양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긴 부조
▲바위에 새긴 부조

 

제12굴의 경우 앙련(仰蓮)의 대좌위에 선정인 자세로 앉아있는 왼손 손목은 훼손된 상태이고, 붓다의 코 위로도 완전히 훼손된 상태이다. 두상도 마모가 심한데, 상체를 모두 벗고 있는 모습이다. 붓다상 옆의 보살입상들은 벽면에 부조가 되어 있는데, 채색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동굴11 전면부
▲동굴11 전면부

 

다른 불교석굴의 붓다상도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주로 하고 있고, 결가부좌나 삼존 형식의 입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 곳곳에 붓다상이 연속적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동굴3 내부
▲동굴3 내부

 

기타 힌두교사원들은 13-29굴까지로 이중 14굴과 15굴, 16굴, 21굴, 29굴은 거대한 바위덩어리를 정교하게 새겨서 독립된 힌두사원을 조성한 것으로 매우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힌두사원들은 불교의 비하라 석굴 양식을 혼용한 형태도 있어 힌두교가 사방의 다양한 종교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제16굴인 카일나사나타(Kailasanatha) 사원은 거대한 화산암 덩어리를 개착한 것으로 건축적, 예술조형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이 사원은 무려 폭이 46m, 안쪽 깊이가 85m에 이르는 공간을 깎아서 조성한 것이다. 이 사원은 데칸식 모델의 대표적인 것으로 남인도의 팔라바(Pallava) 사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동굴16; 건축에 100년의 기간이 걸린 카일나사나타는 석굴사원의 백미로 꼽힌다.
▲동굴16; 건축에 100년의 기간이 걸린 카일나사나타는 석굴사원의 백미로 꼽힌다.

 

이 사원은 크리슈나1세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개착되었고, 100여년의 시간에 걸쳐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완성되었다. 카일나사란 시바신의 은둔지를 말한다. 힌두교의 다신적인 면은 당시의 왕권강화를 위해 도움이 되었는데, 불교가 오직 석가모니만을 본존으로 조성하는 것에 비해 보다 인간적이고 민중적인 흡입력으로 힌두교는 점차 인도인들의 중심적인 종교로 자리잡게 된다.  
엘로라 동굴사원은 수도원으로서 순례자들을 위한 휴식처 역할을 했지만 데칸지역은 고대 남아시아의 무역로에 위치해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기 때문에 5세기동안 번성을 누렸다. 지금도 엘로라 동굴은 인근 아잔타 동굴과 함께 마하라슈트라의 마라스와다 지역의 주요 관광 명소이자 인도 고고학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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