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바이러스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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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바이러스인류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4.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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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훈(보건안전공단 제주본부장)

 

모르페우스(Morpheus)는 그리스어로 ‘형태’ 또는 ‘모양’을 뜻하는 ‘모르파이(morphai)’에서 파생한 말로 ‘모양을 빚는 자’라는 뜻이다. 잠의 신 휴프노스와 카리스의 하나인 파시테아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신 닉스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오비디우스의《변신이야기》에 따르면, 모르페우스는 특정인의 걸음걸이와 표정은 물론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흉내내어 인간의 꿈속에 나타난다고 한다.
오늘날 영어에서 형태를 의미하는 모프(-morph-)라는 단어는 모르페우스와 같은 어근을 지니며, 수면 및 진정 등의 효과를 발휘하는 강력한 진통제 모르핀(morphine)이나 매트릭스의 모피어스는 모르페우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프로그램 요원 스미스가 인간 모피어스를 심문하면서 시온의 소재지를 묻는다. 여기서 시온은 고향에서 쫓겨난 유태인들이 바빌론 강가에 모여 눈물을 흘리며 기억하던 곳이자, 영화에서는 인간성의 본연쯤이다. 이를 지키려는 모피어스에게 스미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야.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은 아니야. 한 지역에서 번식하면서 모든 자원을 소모해버리지. 그러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거야. 지구에 똑 같은 방식으로 번식하는 유기체가 하나 더 있어. 바로 바이러스야.” 
인간의 속성이 바이러스이며, 인간 자체가 질병이며, 지구의 암적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조화가 아니라 파괴를, 상생이 아니라 공멸을 향해 달리는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간의 끊임없는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우려에도 멈추지 않는 탄소배출을 보면 “인간이 바이러스”란 진단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야생동물과 접촉하면서 번식과 진화의 기회를 맞았다고 한다. 바이러스가 바이러스적인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는 역설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보면,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멕시코의 아스텍 문명을 초토화시킨 건 총과 칼이 아니라 ‘천연두’ 바이러스 덕분이었다. 쿠바에서 천연두에 감염된 단 한 명의 노예가 1520년 멕시코에 상륙하면서 2000만 명에 달했던 인구가 100년이 채 안 돼 1618년 160만 명으로 급감한다. 피사로가 단 168명으로 잉카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1531년에 페루에 상륙했을 때도 그랬다. 이미 천연두가 스페인의 총과 칼에 앞서 잉카인을 몰살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아메리카 인디언은 겨우 한두 세기 만에 95%가 사라졌다. 히스파니올라 섬의 인디언 인구는 1492년 약 800만 명이었지만,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1535년에는 단 한명도 남지 않고 전멸했다. 역사와 문화의 변곡점을 바이러스가 만든 셈이다. 이런 바이러스도 진화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또 매독이야말로 가장 잘 진화한 바이러스라고 지적한다. 처음엔 성기만 아니라 머리에서 무릎까지 농양과 포진이 퍼졌고, 환자는 몇달 내에 사망했다. 
그러나 숙주가 죽으면 기생 방식으로 살아가는 매독 바이러스 역시 증식할 수 없다. 그래서 성기가 허는 정도로만, 바이러스 입장에서 말하면 “탐욕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타협할 줄 아는 ‘이기적 유전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같은 바이러스도 적당한 선에서 인류와 타협을 하고 공생공존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바이러스인류가 창출시킨 코로나 바이러스와 친구로 살아가야 한다면, 적당한 거리두기로 시스템이 재편되어야 하는 전혀 색다른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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