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 - 오월 단상(短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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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 오월 단상(短想)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4.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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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범시인
김승범시인

맺는다는 건 단지 열매만 두고 이르는 말일까? 낡은 햇살의 눈물 한 자락도 쥐어짜 제 몸을 실했을까? 한 섬 지기 과즙만을 습작했을까? 결말의 황량해진 들판에 서서 그는 아팠으리라. 태풍의 풍비박산을 맞았음에도 그는 독한 학습을 했으리라. 삶이 휘청이면 자연에 맡겨보라.
총선이 끝났다. 저마다 꿈을 안고 출발하여 목적지에 도달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쉬고 싶어도 끝없는 경쟁을 유발한다. 그래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랬듯이 변화무쌍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니 괜히 몸과 마음이 더 추운 것 같다. 봄볕을 맞으며 텃밭에 탱자나무와 감자를 심었다. 탱자는 물을 너무 많이 줘서인지 산 나무보다 죽어가는 나무가 더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감자가 싹을 틔워 땅 위로 순을 뾰죽이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땅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 간에 땅속에선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시련들이 마치 온 우주의 고민인 양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데 실은 별일도 아니었다.
오늘도 나는 내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출근한다. 목욕재계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하루만 걸러도 산적으로 변하는 수염도 정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복을 챙겨 입는다. “출근한다”라고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문 열면 코앞인 텃밭에 출근한다. 매일 나가는 텃밭이지만 다소 어울리지 않게 엄숙하게 출근하는 것은 자연 앞에 겸손해지기 위해서다. 어쩌면 스스로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행동인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을 대라고 하면 나는 바다를 말한다. 바다는 등고선 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어느 계곡의 돌 틈에서 도롱뇽 한 마리도 마음껏 유영하지 못할 만큼 한 모금으로 시작된 물이 계곡을 이루고 또 강을 이루어 마침내 바다로 흘러간다. 그뿐만인가 계곡의 거센 물결에 깎인 바위도 모래로 바뀌어 끊임없이 중력을 따라 구르고, 무심한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도 흐르다가 녹을지언정 낮은 곳으로의 중력을 거부하지 않는다. 
스스로 낮은 곳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고는 하지만 중력에 의해 바다로 흘러가는 물처럼 완연히 자연스럽지만은 않아서 낮은 텃밭으로의 출근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오월이 더욱 싱그러운 것은 연중에 가장 푸르른 달이어서 그렇다. 겨울을 넘어온 바람이 온 땅을 흔들고 우주를 일깨워 새 생명을 땅 위로 끌어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오월이면 언덕 높은 곳에라도 올라 가슴 열고 큰 숨 들이쉬고 얹힌 기분, 쌓인 한을 훅하고 토해내 볼 일이다. 그리고 봄을 한껏 들이마실 일이다. 그러면 봄은 그대 가슴에 하트를 만들어 줄 것이다. 오늘은 사랑하는 달리와 별이에게도 특별식을 선사해야겠다. 아 참 울타리치고 병아리 몇 마리 들이고 지나가는 봄을 불러 막걸리 한 사발 쭈욱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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