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통의 사경(寫經)이야말로 최고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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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통의 사경(寫經)이야말로 최고의 수행”
  • 인터뷰 이진영 기자
  • 승인 2020.04.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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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가 만난 사람〈16〉제주불교문화대학 사경반 지도교수 관우스님

사경에 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질 것 같다. 이달 초, 문화재청에서는 사경장(寫經匠)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하고, 한국사경연구회장 김경호(57)씨를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기 때문이다. 국가차원에서 불경을 베껴 쓰는 사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보유자로 인정 예고한 김경호씨는 현재 제주불교문화대학 사경반을 지도하는 관우스님의 스승이기도 해서, 스님을 찾아뵀다.  / 인터뷰 이진영 기자  

제주불교문화대학 사경반을 맡고 계시는 관우스님.
제주불교문화대학 사경반을 맡고 계시는 관우스님.

 

-반갑습니다. 얼마 전에 부학장님을 찾아뵙고 사경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경이란 것이 베껴 쓴다는 행위 그 이상의 의미나 공능(功能)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시는 사경(寫經)이란 무엇입니까?
-복장(腹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상을 만들 때, 그 가슴에 금.은.칠보와 같은 보화와 함께 서책 따위를 넣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전통사경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법사리(法舍利)라 부를 수 있습니다. 사경이란 경전의 부처님의 말씀을 베껴 쓰는 것이어서, 결국 부처님의 진수를 배우는 공부이자 최고의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경의 공능이라면 무엇보다도 사경이 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수행이어서 현대 수행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사경과 전통사경을 구분해서 말씀하시는데, 이참에 우리나라 사경의 전통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사경과 전통사경의 구분은 쉽게 말하자면, 도구의 차이입니다. 사경이란 볼펜 등으로 하는 것이고, 전통사경이란 먹과 붓, 그리고 화선지 등 전통적인 재로들로 사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사경의 전통은 유구합니다. 역사기록들을 통해, 삼국시대에 공식적인 불교수용과 더불어 사경이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것도 있으니까요. 고려시대의 사경은 실용성보다는 신앙적인 면이 강조되고, 국가차원의 지원을 통해 화려하게 꽃 피우며 정점을 찍습니다. 몽고침입을 불력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 주조사업에 착수하게 된 일이 그렇습니다. 충렬왕 이후에 원나라에서 사경승(寫經僧)과 경지(經紙)에 대하여 요구한 것을 여러 문헌과 비문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고려청자나 고려불화 못지않았던 고려사경의 우수성을 말해줍니다. 원나라로 최고 수준의 문화컨텐츠를 역수출했던, 일종의 한류였던 셈이죠. 조선 초기에도 고려사경의 이와 같은 전통을 이어 훌륭한 사경들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그 이후 긴 침체기에 빠져 있다가 1988년 이후에 다시 발흥하기 시작합니다.
-스님, 잠깐만요. 방금 1988년이라고 시기를 특정하셨는데, 혹시 그 이유를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그건 이번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사경장(寫經匠), 한국사경연구회장 김경호(57)선생님 때문입니다. 물론 이 무렵에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생긴 경제적 여유가 배경이 돼 주었을 것이고, 덧붙여 종단 차원의 관심과 지원 역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여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때 발흥을 시작했다고 보고요, 그 후 2000년대 들어서 대대적인 사경 붐이 일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경 전통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듣다보니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이 사경전통은 불교, 더 나아가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특징입니까?
-(웃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슬람국가에서도 사경이 있고, 서양에도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 수도원의 사경하는 방만은 특별히 난방을 해주었다 합니다. 추우면 손이 떨려 제대로 사경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우 사경 전통으로 보자면, 원조격이 되겠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한국에서 전래되었지만 지금까지 비교적 보존의 잘 되어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의외로 사경의 전통을 이어가는 가장 모범적인 나라는 대만입니다. 사찰마다 사경원(寫經院)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니까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조선 이후 오랜 침체기를 거쳐 1980년대 말 무렵부터 다시 발흥을 시작했다고 말씀드렸고요.
- 질문을 좀 바꿔서, 오랫동안 사경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사경의 공능이 스님이나 수강생들에 미쳐서 생긴 일이나 특별히 기억나는 수강생이 있는지요? 
-사경의 공능 중 하나인데요, 사경은 자신을 변화시킬 뿐 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두 분이 기억납니다. 한 분은 자신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염하고 입관할 때 자신이 사경했던 작품을 관에 함께 넣었다고 합니다. 종교가 없으시던 시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고마워하며 49제까지 봉행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한 분은 80 평생을 바느질로 살아온 할머니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고 89살에 사경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눈과 손이 건강해서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서 결국 전시회까지 치렀는데, 아들이나 사위가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사경반 강좌가 일 년 과정이라고 들었는데, 간략하게나마 교육내용과 일정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불교대학원에서는 전통사경의 가장 기초가 관세음보살 42수를 그리는 건데, 일 년 과정입니다. 중급반은 가장 짧은 경전인 반야심경을 시작해서 천수경까지 가는데, 12월 수업이 종료되면 졸업전시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저가 주재하는 사찰[조천읍 고관사]에서도 부처님오신 날을 기점으로 한 달 동안 사경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사경반 지도 광경
사경반 지도 광경

 

-수강은 일반인도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수강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신도가 아닌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급반인 경우 너무 늦게 오시면 아무래도 진도를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주 정도는 괜찮지만, 그 이후로는 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이번 6월 달 특강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사경장(寫經匠), 한국사경연구회장 김경호선생님을 모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경에 관심 있으신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호응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스님에게 있어서 사경이란 무엇인지, 혹은 사경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사경이란, 결국 마음수행이 아닐까 싶어요. 내 내면의 고요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행방법이라고 생각하구요. 우리는 살면서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타인의 소리를 듣고 항상 밖으로 향해있거든요. 그런데 이 사경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게 해 내 고요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줍니다. 내가 고요해지면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말들이 더 깊게 있게 와 닿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고요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정말 내 내면이 고요해지면 나도 고요해지고,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것이 어쩌면 사경의 본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꼭 한 번 접해보거나 익혀 볼만한 교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우스님은 1999년 운문사 승가대학을 거쳐 동국대에서 불교학과 중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10년간 선방에서 정진, 후에 다시 동국대에 입학했다. 지금은 사경을 통한 포교에 정진하고 있으며, 현재 조천읍 소재 고관사에 주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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