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여성불자⑪ 에린 블랙웰(Erin Blackwell) “구원된 사람들의 지대”(The Province of the Sa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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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여성불자⑪ 에린 블랙웰(Erin Blackwell) “구원된 사람들의 지대”(The Province of the Saved)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5.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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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현 _ 스토니부룩대학 불교학 교수

에린 블랙웰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작가이다. 그녀는 Bay Area Reporter에서 예술 비평을 하고 있고, 여성 동성애자 월간지, Dykespeak의 예술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에린은 맨 기둥이 받치고 있는 큰 방에서 숙달된 수련생들과 함께 검은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자신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신비한 마음속으로 끌려들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것은 선방 방석에 앉아서 하는 좌선이 기이한 동양 의식이고 그녀가 서양의 초심자라서 때문이 아니고, 선(禪)이 개념상으로 완전하고, 그녀는 너무도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에린은 다르마(Dharma)가 삶의 모든 각도에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할머니 밑에서 자유스럽게 자랐다.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욕으로 왔을 때, 에린은 노자의 “삶의 道”(The Way of Life)를 집어 들고, 어느 해 뜨는 아침 그랜드 캐니언에서 노자를 크게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모든 지식은 결국 자기인식이라는 것과 의식의 움직임이 물질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주객 분리의 논쟁을 조정한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 헤겔에게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녀의 다음 스승은 프랑스의 브리타니 지방에 사는 중학교 여선생 니콜이었다. 니콜은 여성 동성애자이고, 검은 가죽옷, 욕망, 그리고 물질적 위험을 수반한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무섭게 아름다운 그녀는 내가 프랑스에 갔던 이유였다. 인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은밀한 지식을 모두 에린에게 제공해 주었다. 니콜이 운전하는 모터사이클 뒤에 타고 앉아 비가 쏟아지거나 거센 바람이 불거나 얼어붙는 겨울에도 시속 100마일 속도로 불란서, 이태리, 그리고 스페인을 종횡무진 달렸다. 150마일마다 쉬어서 휘발류를 넣거나 벤딩머신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면서…그것은 기쁨이었다. 비록 귀는 울리고, 관절은 뻣뻣해지고, 발은 감각을 잃고, 다리에 경련이 와도… 그녀는 니콜에게서 세상은 모순으로 작동된다는 것을 배웠고, 에린에게 전에 없었던 것 같은 영혼의 미개발지로 인도하였다. 그것은 강렬한 성적인 그리고 영적인 연결이었고, 놀랍게도, 몸과 영혼은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 
니콜과의 마지막 여행은 프랑스 고딕풍의 성당, 노트르담이었다. 니콜에 대한 지나친 감정적 의존 감에 대안을 찾던 에린은 노트르담이 바로 해답이었다. 13세기의 프랑스 영감을 주는 성모마리아는 여신이고, 어머니, 사랑하는 사람, 간호사자 친구이면서, 에린이 늘 여성에게서 찾고 있던 모든 아름다움, 우아함, 연민의 정수를 갖춘 개요서이었다; 그러나 에린은 자신에게 그것들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최근에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에린은 독일 금발 머리 브릿타에 매혹된다. 브릿타는 금문교를 건너 에린을 선방으로 안내하고, 스즈키가 쓴 “선마음, 초심자의 마음”(Zen Mind, Beginner’s Mind)을 빌려준다. 그 안에 헤겔도 있고, 노자도 있지만 난생처음 마음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지침을 발견한다. 그것도 마흔 한살이나 된 나이에, 에린에게 그와 같은 보물이 나타난 것에 대하여 스스로 놀란다. 
집에서도 두세 시간씩 좌선하고 스즈키 책을 읽고 또 읽는다. 그 후 그린 걸치(Green Gulch)에 있는 초심자를 위한 일일 명상모임에 나가서 비구니 게일린 가드윈(Gaelyn Godwin)을 만난다. 비구니 게일린이 매주 하는 심경 강의에도 참석하고,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라는 구절에 매혹되어, 열심히 그 뜻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해 가을에 그녀는 페이지 거리(Page Street)에 있는 젠 센터에서 3개월간의 수련을 시작하였고, 감상적이 아닌 모임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에린은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견해를 상향 조정하게 된다. 
한편, 에린은 좌선하면서 다리에 오는 불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어릴 적 무엇이나 아픈 것을 돌보아 주시던 그녀의 어머니를 연상한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위로해 주시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던 어머니였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더라도 딸이 아픈 것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다 스스로에 돌리시곤 했다. 
좌선 과정에서 마음을 모아 집중하는 수련(sesshin, 接心) 중에, 나를 낳아서 키워 주시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에린을 세상 모든 중생에게로 나아가게 했다. 그녀에게 고통에 대한 대답은 회피가 아니고 자비였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에게 또 서로에게 모성을 수련하였다. 이 같은 발견에 에린은 기뻐서 눈물을 흘린다. 
좌선의 마지막 단계로, 그녀는 젠 센터의 주지로 있는 칠십 세의 비구니, 블랑쉬 하트만(Blanche Hartman)과의 독참을 요구하고 스승과 함께 앉아 고백한다, “지금 있고 싶은 곳에 있습니다.” 에린은 선 센타의 최초 여승으로서 영적 스승의 위치에 있는 하트만 비구니에게서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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