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기자의 영주칼럼 - 제주 신공항과 변증법(辨證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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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기자의 영주칼럼 - 제주 신공항과 변증법(辨證法)
  • 이진영 기자
  • 승인 2020.05.1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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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청사에 걸린 제주 제2공항 환영 현수막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귀포시청사에 걸린 제주 제2공항 환영 현수막 [연합뉴스 자료사진]

변증(辨證)이란 얼마나 명쾌한가. 고대 희랍의 철학자 제논의 제안으로부터 출발한 이 개념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진리의 타당성을 회의하고 검토하는 대화술로 자라났다. 이 대화술이 가진 공능(功能)은 그의 제자 플라톤의 쓴《국가론》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올바름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에서 드러나는 이 기막힌 대화술은 당시 소피스트들을 궁지로 몰아붙이고, 끝내 그들의 무지를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곤 했다. 이것이 ‘산파술(産婆術)’이다. 
한동안 잊혔던 이 변증이라는 개념을 오래된 서고에서 찾아내 케케묵은 먼지를 털어내었던 이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였고, 이 개념이 가진 진정한 잠재력을 발견한 이 역시 근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었다. 그는 변증이 단순히 진실을 가려내는 논리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유용한 틀[frame]로서의 가치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흔히 우리가 정(正), 반(反), 합(合)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정(正)의 상태는 모호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추상성과 모호함을 탈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부정하는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반(反)을 만들어 내고, 이 반(反)에서 분리된 두 사태는 서로 지양(止揚)하면서 새로운 합(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합(合)이 다시 정(正)으로 이 정(正)이 다시 반(反)으로 가면서 다시 합(合)이 생겨나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며 합(合)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이동해해 나간다. 이 유동이 세상의 변동이며 변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때 간과하기 쉬운 점은 이 합(合)이 결코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합(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면서 사회가 발전해나간다는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전통에 치명상을 입힌, 종은 끊임없이 변화해나간다는 다윈의 진화론도,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 역시 변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얼핏 음양이 서로 부딪히며 변화하며 조화를 이뤄나간다는 동양의 음양(陰陽)과도 닮아 보이는 이 개념은 우리가 바라보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바라볼 때, 아주 유용한 틀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변증이라는 개념을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이 개념이 제2의 신공항건설이라는 작금 제주의 현안에 대해 시사해주는 바가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얼마 전인 4월 29일, 제주 제2공항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에서는 기존 조사의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새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포함되지 않은 천연동굴 칠낭궤 1곳과 숨골 75곳이 새롭게 발견했다는 것이다. 1차 조사에 이어 2차 조사까지 합치면,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누락된 숨골은 모두 136곳, 천연동굴 1곳인 셈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역시 다음날 즉각적인 해명과 함께 추가 현지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제주 신공항에 반대하는 반대대책위원회가 성산읍사무소 앞에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출처: 오마이뉴스 박진우)
제주 신공항에 반대하는 반대대책위원회가 성산읍사무소 앞에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출처: 오마이뉴스 박진우)

서양전통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이며 이기적인 존재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란 상식적이며 이성적이라는 말보다는 사실상 이기적인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이런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계약을 통해 개인의 안전을 보장받고자 한다. 사회계약론이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해된다. 요컨대, 개인이나 사회 심지어 국가까지 기본적으로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까지 더 나은 삶 혹은 풍요를 구현하기 위해 가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제주에서 신공항이든 여타의 인프라든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런 현안에 대해 제주지역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하는가라는 점이다.
변증이라는 틀로 제2신공항 건설이라는 이슈를 바라보면, 정(正)이라는 상태는 ‘추상성과 모호함을 탈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부정하는 운동’, 다시 말하면 제주공항의 포화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생겨나는 상태이다. 이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반(反), 즉 개발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이끌어낸다. 이 국면에서 분리된 두 사태[개발이냐 보존이냐]는 서로 지양(止揚) 혹은 갈등대립하면서 새로운 합(合;합의)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 하나의 사안이 단 하나의 합(合)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대게 합(合)이 다시 정(正)으로 가고 다시 반(反)으로 전환되어 또 다른 합(合)이 생겨나는 부단한 반복이 이어지며, 그러면서 조금씩이나마 사회는 어떤 현안에 대해 나름 합리적인 궁극적 합[결론 혹은 사회적 합의]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제주 지역사회는 이미 강정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격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마을공동체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갈갈이 찢기는 것을 지켜봐야만했으며, 도민들과 온 나라가 이 문제로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했었다. 게다가 이런 문제가 비단 과거형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 역시 우려스럽다. 앞으로도 송악산 개발문제 등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현안들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정풍력단지 건설에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었던 동일리의 서산사의 문제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생명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불교계도 이런 현안에 더 이상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도외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작금의 갈등국면의 일차적인 책임은 이 현안의 명확한 주체인 국토부와 도정(道政)에 있음은 물론이다. 덧붙여 이런 갈등에 중재자로서 공론화의 일차적인 담당자인 언론의 역할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신공항 건설에 관한 담론의 전개과정에는 이런 변증적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양측의 팽팽한 의견대립이나 갈등의 고조되는 결정적이고 극적인 장면들만을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현안을 다루곤 한다. 갈등만이 부각되면, 사람들은 그 팽팽한 긴장에 염증을 내기 쉽고, 이내 그 현안을 외면해버리기 쉽다. 언론은 부단히 정반(正反)의 갈등과 대립을 통한 합(合)의 도출과 합(合)의 변화와 과정에 주목해야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궁극의 사회적 합의의 지향점을 모색하고 제안할 수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이 변증적 과정으로 도출되는 합의 부단한 변천이 결국 우리 제주의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제주가 여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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