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상(無住相) 보시의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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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상(無住相) 보시의 공덕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5.1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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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제주시 아라동에는 옛 마을의 이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인다, 아란, 오등 촌락들이 있다. 도심에서 떨어져 호젓한 시골풍경을 아직도 보전하고 있어서 주말엔 아내와 함께 가끔 마실 길을 따라 걷는다.
5월의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가볍게 1∼2시간 산책하기 좋다. 300여 년의 설촌 역사를 말해주듯 마을 어귀엔 이끼 낀 비석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서있다. 옛적에 이 마을에 덕을 많이 베푼 이들의 공을 기려서 세운 공덕비들인데, 정조 19년 제주도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들을 구휼한 김만덕의 공을 기려 순조 12년에 마을 사람들이 세운 묘비가 그 모델이다.
적선積善 공덕은 오랜 미풍양속이다. 우리 민족은 남몰래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거나 험한 길을 다져 놓거나, 걸인들을 위해 음식을 짓거나 행려병자에게 약을 주는 방법으로 공덕 쌓기를 서로 질세라 행하였다. 최근에도 애쓰게 모은 거금을 대학이나 병원에 아낌없이 기증하는 거룩한 분들이 적지 않다.
불교에서는 공덕을 많이 닦고 쌓을 것을 강조해 왔다. 공덕(punna,功德)은 보시·지계·수행을 통해서 쌓는다.『법화경』의「법사공덕품」에는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가지고 읽거나 외우며 해설하고 옮겨 쓰면 천이백 가지 뜻의 공덕을 얻으리라.’라고 쓰여 있다.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 날(4월 30일)을 맞아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 주요 소임을 맡고 있는 5000여 명 스님들이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을 회향하겠다고 밝혔다. 출가사문으로서 위의威儀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참된 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내가 남을 위하여 베풀었다.’는 생각이 있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 볼 수 없다.
인정仁政을 최고의 정치로 여겼던 조선사회에서 천재지변을 만났을 때 ‘환과고독鰥寡孤獨’, 즉 홀아비[鰥]와 과부[寡]와 고아[孤]와 자식이 없는 노인[獨]에 대한 구휼救恤은 왕의 책무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경제 난국에 처하여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지급하겠다는 재난지원금은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 보시’에 속하지 않는다. 보시를 행할 때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그리고 베푸는 것도 모두가 본질적으로 공한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보시를 하더라도 이를 행하는 자의 마음이 복덕을 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덕을 구하는 것인지에 따라 복덕이 될 수도 있고 공덕이 될 수도 있다. 복덕은 일시적이고 생사에 구속되나 공덕은 생사를 초월하여 성불로 인도한다. 
오월의 꽃향기는 바람이 있어야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만, 공덕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려 온 누리로 펴진다. 이것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회향이다. 
오월은 뭇 생명들의 평화와 행복을 이야기하고 실천한다는 뜻에서 사랑의  계절이다. 어버이들은 어린 자식들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자식들은 부모를 섬기고, 베움 터의 학생들은 스승의 은혜를 예경하고, 인천의 스승이신 부처님 오신 날이 있어 더욱 환희로운 달이다. 
사랑의 알아차림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고 잘 회전할 때 친절한 의도, 공감, 연민을 내 삶 속에서 세상으로 실려 나를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내가 느끼고 어떻게 도울까 상상하고 실행에 옮기는 마음씨가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이다. 
베풀려는데 돈이 없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무재칠시無財七施 가운데 하나, 둘인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을 지니는 화안시和顔施, 칭찬과 격려 등 부드러운 말로 이야기하는 언사시言辭施만으로도 우리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강력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오월 한 달만이라도 성 안내는 얼굴, 부드러운 말이 유튜브(YouTube)나 인터넷에 번졌으면 좋겠다. 꽃보다 아름답고 봄바람보다 더 부드러운 오월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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