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기행 -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불탑승원 '탑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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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기행 -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불탑승원 '탑다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6.1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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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여행작가)
멀리 힌두쿠시산맥을 바라보며 2천년간 탑다라스투파는 말없이 우뚝 서있다.
멀리 힌두쿠시산맥을 바라보며 2천년간 탑다라스투파는 말없이 우뚝 서있다.

필자가 아프가니스탄을 처음 여행한 것은 2002년 아프간과 한국이 외교관계를 재개한 이후 2004년경이었다. 바미얀석불이 파괴되고 오랜 내전으로 200만명이 사망하고 전쟁난민이 500만명 이상 발생하였던 시절로 카불시내는 페허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야말로 불교문화의 뿌리를 찾는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몇년 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어 카불에 거주하는 교민의 도움을 받아 카불 근교에 있는 탑다라를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탑다라스투파(Topdara stupa) 승원 유적은 힌두쿠시 산맥을 멀리 바라보며 거대한 탑을 몇 년째 복원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웅장한 자태를 보고 있으니, 2천년 전 이곳에 꽃피웠던 불교문화의 찬란한 영광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 아프카니스탄은 인도 중 북부 지역까지 미치는 광범위한 영역에 제국을 형성하고 대승불교를 확산시켰던 쿠샨 왕조(기원전 2세기∼서기 5세기 중엽)의 영토였다. 수도 카불은 기원전 동서 교통로인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으며, 이런 실크로드를 따라 수많은 구법승이 왕래했다.
현재 아프카니스탄에는 약 3700여 곳에 불교유적지가 남아 있다. 대부분 쿠샨왕조 시기의 것들로 수도 카불에도 수많은 불교 유적이 현존하고 있다. 

쿠샨 왕조는 부처님의 8대 성지를 비롯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많은 탑을 세운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 이후 두 번째로 많은 불적지를 중창하고 탑과 사원을 건축했던 왕조다. 특히 카니시카왕 때는 그 절정기로, 이때 수많은 경전을 결집하고 대승불교가 찬란하게 꽃피웠다.

▲메스아이나크의 광대한 불교유적지와 발굴 유물들
▲메스아이나크의 광대한 불교유적지와 발굴 유물들

인도의 불교는 이곳을 통해 중국의 돈황과 장안에 전래됐고 수많은 인도 전법승들이 이곳을 통해 중국에 갔다. 또 중국, 한국, 일본의 구법승들도 이곳을 지나 인도를 오고 갔으며 신라의 혜초 스님도 인도를 방문하고 돌아갈 때는 이곳을 지나갔다.
그러나 9세기부터 무슬림이 점령하여 불교 유적은 방치되고 파괴되다가 19세기 말 이곳을 점령한 영국과 프랑스인들에 의해 불교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한 대부분의 불교 유물이 이때 도굴되었다. 

기단부 밑으로 단단하게 석축으로 지반을 다졌다.
기단부 밑으로 단단하게 석축으로 지반을 다졌다.

현대에 와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불교유적 보존에 비교적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경제재건이 더 시급한 문제라 바이얀과 같은 매우 중요한 메스아이나크 불교유적을 중국 기업에 채굴권을 내줘 유적이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다. 
메스아이나크는 카불에서 동남쪽 40km 떨어진 로가(Logar)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5세기경 불교문화가 꽃피운 곳으로, 600개 이상의 거대 불상과 불교사원이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2001년 바미얀석불을 파괴한 이슬람 강경세력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어서 자원개발 이외에도 유물 훼손 우려가 높은 지역이다.

지난 2019년 봄에 복원을 마치고 기념촬영한 이 사진은 탑이 아름답고 웅장하게 복원된 것을 확인시키고 있다.
지난 2019년 봄에 복원을 마치고 기념촬영한 이 사진은 탑이 아름답고 웅장하게 복원된 것을 확인시키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7세기 추정 패엽경 사본을 비롯해 소조불·소조탑 등 파편이 나와 현장법사가 거쳐간 브리스타나 유적지일 가능성이 높다. 아프간고고학국은 불탑도 아닌 유적에서 다량의 패엽경이 발굴되는 것은 드문 일로, 경전을 보관하는 도서관 등의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곳서 나온 사본들은 모두 싣담(siddham, 悉曇)체의 산스크리트어로 나무껍질에 쓰여 있고, 초기 대승불전인 <반야경> <미륵하생성불경> 등으로 판명됐다. 초기 대승불전이 다량으로 발굴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탑다라스투파 승원유적은 카불 북쪽 60km지점의 파르완(Parwan)주의 차하리까르(Chaharikar)에 있다. 이 탑은 전쟁 때 마을주민들의 대피소 역할도 했으며, 탈레반이 이 탑을 파괴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무자헤딘(저항군)의 대항으로 이 탑은 살아남았다. 
1883년 이곳을 찾은 영국 탐험가 찰스 마손(Charles Masson)은 돔 모양의 탑다라(Todara) 탑을 보고 “아마도 이 나라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기념물”이라고 묘사했다. 마손의 방문 이후, 탑다라스투파는 2016년 아프간문화유산기구가 보존 및 발굴 작업을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방치되었다. 

기단은 단단하게 석축기법으로 쌓아올렸다.
기단은 단단하게 석축기법으로 쌓아올렸다.

탑다라스투파의 건립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 도시인 카피사(Kapisa) 주변, 현재 주변에 넓은 공군 기지가 들어선 바그람(Bagram)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데, 기원전 200년~서기 400년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탑다라스투파의 주요 구조는 석재로 쌓았고, 상부는 둥근 돔형으로 높이가 23m, 기단부터 재면 30m에 이른다. 돔은 ‘S’자형 곡선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56개의 둥근 아치로 둘러싸여 있고, 아치는 작은 기둥이 받치고 있다. 재질은 작은 편마암으로 형성되어 있고, 각 틈새를 고정하는 쐐기가 있다. 탑의 양쪽에는 불입상이 서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고, 제단은 쿠산 제국의 수도인 카피사(Kapisa) 방향으로 나있다. 
돔은 한 측면이 36m인 정사각형 받침대 위에 서 있으며, 쿠샨시대의 기둥장식과 동쪽과 서쪽에 두 쌍의 계단이 있음을 발견했다. 

좁은 외부 주각은 편암 조각으로 만들어진 교각으로 연결되어 있고, 탑 주변에는 탑돌이를 위한 석재 포장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탑의 꼭대기에는 화려한 파라솔이 있었고, 돔은 석고를 바르고 황토로 붉은 채색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탑다라’라는 지명은 타파(tappa)와 다리(Dari)의 합성어로 수직으로 솟은 스투파 계곡을 의미한다. 
1833년에 이곳을 방문한 마손은 탑 중앙에는 슬레이트 스톤이 붉은 황토로 덮여 있었고, 승방터가 있었다고 기록했다. 또 마손은 아치와 기둥의 아케이드를 관통하는 통로를 발견했으며, 근처에 샘물터도 확인했다. 
계곡을 끼고 언덕 위에 수직으로 솟아있는 탑다라스투파승원은 불교문화가 꽃피던 영광스러운 시절, 진정 명상적이고 평화로운 장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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