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려관스님 탄신 155주년기념 제6회 신행수기 가작 "제주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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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 탄신 155주년기념 제6회 신행수기 가작 "제주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7.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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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세

2008년 6월 23일 아내와 둘이 자동차 앞좌석에 타고 뒷좌석에는 당장 사용할 이불과 옷가지를 담은 트렁크와 박스로 가득 차 뒷유리를 통해 바라 볼 수 가 없었다.
배에서 바라보는 제주항은 어둑어둑 저녁해가 기울어 가로등이 환하게 비춰 휘황찬란했지만, 배에서 내려 동쪽 구좌를 향해 달리는 동안에는 주위를 살필 수 없이 적막하고 낯설음에 두려움과 제2의 직장에 대한 설레임에 가슴이 뛰었다.
23년간 군복을 입고 다니던 직장에서 한참 자녀들 학비와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나이 45세에 계급정년으로 전역을 하게 되었다,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1년 동안 학원과 도서실에서 변비가 생길 정도로 16시간 이상 공부를 하면서, 바라던 새로운 직장에 합격하여 환상의 섬 제주로 발령받아 입도하는 나의 첫 모습이다.
군 생활하면서 잦은 보직이동으로 25번이나 이삿짐을 싸고 풀고 했는데 제주로의 이동은 단촐한 자가용 뒷좌석에 실려있는 짐들이 큰 이삿짐 트럭에 실렸던 짐 보다도 더 무게가 나갔고, 새로운 곳에 대한 어떤 이사보다 설레임이 더 컸다.
그 시기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고 있어 딸들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는 육지와 제주를 오가면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 제주로 입도하면서 가졌던 두려움과 불안함은, 출근 한달도 되지 않고 새 직장과 제주생활은 나에게는 너무나 딱 맞는 곳이 되었다.
출근하는 평일의 시간과 주말은 아주 만족스러웠지만, 결혼 후 난생처음 혼자 생활하게 되니 퇴근 후 생활이 무계획적이고 무절제한 시간으로 나를 나태하고 무료하게 만들었다.
또 일찍 퇴근한 저녁시간은 가족이 더 보고 싶어 캔맥주 하나들고서 함덕바닷가 갯바위에 앉아 북쪽하늘을 바라보며 아내와 딸들을 그리며 통화를 하다 집에 돌아오는 횟수가 잦아지고, 가끔 동료들과 어울려 늦은 시간까지 무의미하게 술로 시간을 보내고, 저녁식사는 찌개에 밥 한공기를 올린 밥상에 거실에 덩그런히 놓인 텔레비전과 친구가 되어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놓은 그 자리에서 쓰려져 졸다가 눈을 뜨면 텔레비전 혼자 환하게 불만 켜져 있는 나날들이 늘어만 갔다.
이러한 생활을 2년을 하다, 나의 생활에 전환점을 갖는 계기는 사회활동과 교육이었다, 그 시기에 사회복지에 대해 방송과 메스컴에서 소개가 되고, 노후에도 이웃과 더불어 활동할 수 있다는 유망직종으로 소개가 되었다.
그에 편승하여 나도 야간 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또 다른 노후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학교를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야간학교에서 어르신들 자원교사로 수업을 주 2회 실시하고, 난생처음 교단에서 학생(국민학교를 다니지 못하신 어르신)을 가르치는 보람에 체계적인 학습법을 위해 평생교육사 자격을 위해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는데, 이것은 나만의 봉사활동과 교육이 아내가 제주에 정착을 하게 될 때 외로움과 고독감을 갖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 엄마의 손길이 덜하게 되어 2013년에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다. 5년간 혼자 생활하면서 하나씩 알아가던 제주의 참맛은 딸들이 학교를 마치고 아내가 제주로 내려온 후에도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생활하다 아내가 옆에 있으면서 오붓함을 느낌과 동시에 나의 생활패턴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퇴근 후 야간학교 수업과 단체활동으로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9시가 넘고, 주말에는 동아리 활동으로 오름과 올레길, 문화답사활동으로 나 혼자서 거의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내는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집 정원을 가꾸고 꾸미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외로움을 혼자서 달래고 있었다.
그 외로움과 고독함을 나는 모르고 생활하는데 아내가 육지 애들한테 올라가는 횟수가 많아지고 서울집에서 지내다 내려오는 기간도 일주일에서 열흘로 또 2주로 늘어가고 있었다.
2015년도 저물어 가는 날에 아내와 보내는 한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새해 계획을 설계하는 자리에서 아내의 고민과 외로움을 이야기를 해 내 정신을 번쩍들게 만들었다.
새해에는 일주일에 하루는 아내와 둘이서 함께하는 날로 만드는데 어떤 것을 할지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게 되었다. 같이하는 취미활동으로 스포츠 댄스, 운동, 악기배우기, 사회동아리 가입 봉사활동등 여러 가지 안건이 나왔는데 그중에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아내는 천주교 교리나 불교 교리를 배우고 싶다는 의견이 나와 마침 내가 다니는 문화답사회 회원 중 제주사찰 유물을 안내했던 불교에 조예가 깊은 회원이 생각나 늦은 시간 불교교리를 배울 수 있는곳을 질문했는데 불교대학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서귀포 불교대학에서 사찰예절과 유적에 대한 강의도 했다고 하는데, 그가 있는 서귀포까지 다니기는 어려워, 제주시 불교대학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제주에 여러 개의 불교대학이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 일정과 거리를 고려해 제주불교문화대학을 정하게 되었다.  
2016년 새봄에 태어나 처음으로 법당에 들어서게 되었다. 법당에 대한 첫 느낌은 두려움과 서늘함이 있었고, 가슴 한편으로 두근거림과 설레임으로 무언가 기대감이 교차하며 믿음에 대한 희망도 밀려왔다.
그때까지 나는 절이라는 것은 역사책에서 배운 불국사, 해인사 등 유명 역사속의 고찰들만 알고 있었고, 고향에서 가까운 동학사, 갑사도 등산을 하면서 경내만 들어가 보고, 법당 안을 들여다 보기만 했지 직접 들어가 보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아내와 함께 보현사 법당 강의실 옆자리에 앉아 예절교육과 불교기초 교리를 배우면서 많은 법우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도 우리와 같이 불교에 대한 기본교리와 덕목을 배우는 다른 제주사회의 여러 사람들을 사귀게 되어 아내의 허전한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여러 학과 중 불교음악시간에 합창단의 불교의식 찬불가를 배우는 2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처음 듣고 불러보는 삼귀의, 사홍서원, 산회가는 내 머릿속에서 가사와 멜로디가 계속 맴돌아, 집으로 오는 도중 아내에게 합창단 활동을 같이 하자고 건의를 하니 합창단 활동은 하지 못하는데 하고 싶으면 혼자 활동하라고 해 합창단에 바로 가입해 매주 화요일 하루를 더 나의 시간을 만들었다.
매주 화요일 합창단 활동시간과 목요일 저녁 시간은 개인적인 약속을 계획하지 않고 오로지 불교문화대학 수업만 시간계획에 넣어 한번도 지각, 결석을 하지 않아 졸업시 개근상을 받았다. 우리는 불교문화대학을 다니며 무엇보다 우리의 생활에 함께 생각하고 함께 손을 잡고 같이 걷는 시간과 같은 목적으로 배우고 있는 법우들이 곁에 있어, 일주일의 답답함을 커피한잔과 대화로 활기를 되찾게 되었고, 제주의 생활에도 적응하게 되어 지금은 제주생활이 하루하루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졸업 후 28기 동기회 결성과 지장반 모임을 만들어 여러 가지 활동과 모임으로 친목을 다져 나가고 있으며, 사찰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는 시간을 할애하여 참석하여 작은 힘을 보태고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지금의 나의 생활에는 새로운 불교를 알게 되어 지금은 행복한 복을 짓는 합창단 활동이 우선으로 정해졌다. 처음 합창단 활동으로 49제 음성공양에서「고운님 잘 가소서」란 영가를 부르며,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 목이 메인 일도 있었다.
“정든우리 고운님 멀리 떠납니다만, 마음이야 어찌 보내오리까. 잘 가소서 부디 편히 가소서, 보내는 이 자리 섭섭한 마음 감추고서 웃으며 보내오니 우리 잊지 마소서, 고운모습 어디 가 계셔도 그립게 한마음 하나로 있습니다. 연꽃같이 밝으소서 우리고운님”... 
그 후 양가 부모님 공양을 위해 위패를 사찰에 모시게 되었고, 백중에는 부모님의 평안을 기원하며 꼭 참석해 기도를 드리게 되었고, 각종 행사에 아내와 함께 참석해 경내를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의 우리는 처음 제주에 와 활동하던 시간보다 나의 봉사활동과 사회활동 시간이 많아졌지만 아내도 제주의 생활에 적응해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모든 것은 부처님의 품안에서 이웃을 알게 되고 그들로 인해 서로 외로움을 보듬어 주고, 무거운 짐을 같이 나눠서 더불어 함께하는 시간들이 웃음으로 행복을 찾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2015년 아내가 제주로 들어올 때부터 중산간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다, 
아내는 우리가 살고있는 마을 부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마을일에 앞장서 일하고 있으며, 육지에 출도해도 일주일을 있지 못하고 제주로 돌아온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서울에 갔다 제주공항에 발을 디디면 공기부터 다르다고 난리다. 육지에 있는 친구들한테는 제주의 소식통이 되고 홍보대사가 되었다.
이 행복한 시간은 서로의 대화속에서 찾은 2015년 마지막 날 저녁시간과 그 문제점 해결을 위해 의논하고, 방향을 알려준 회원과 새로움에 과감히 받아들인 것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아래 하루하루 제주생활을 즐겁고 행복하게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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