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려관스님 탄신 155주년기념 제6회 신행수기 가작 - 극락세계 꽃구름 타고 계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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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 탄신 155주년기념 제6회 신행수기 가작 - 극락세계 꽃구름 타고 계신 어머니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8.2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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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무사영 조들암시 초망살암시민 살아진다. 울지마랑 웃으멍 살라, 웃어야 허는 거여!
매일 같이 나에게 잔소리를 해대시다 한 마디 말도 못 하고 꽃구름 속으로 날아가 버리신 어머니.
어느 집인들 고생이 없으련만 유난히도 더 많은 고생을 다 겪으시며 불평도 안하시던 어머니를 이해 할 수 없어서 참 많이도 미워했던 어머니.
대바구니에 과일이랑 쌀, 떡을 해서 어린 나에게 절까지 등짐을 지게 하여 아버지 생일 불공이라며 어께에 빨간 자욱이 나도록 실어 나르게 하고, 새벽녘 스님의 목탁소리에 치성기도 드리며 아버지와 식구들을 위해 절하고 절하고 절하던 어머니.
외가댁에서 귀하게 자라셨던 건 기억도 없이 가난한 집에 시집오셔서 2남3녀의 자식들 끼니 걱정 없이 키워주시려고 힘든 일 마다 않고 바지런 떠시던 어머니.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범학교로 진학하려 했는데, 외할아버지의 사대주의에 딸이 무슨 공부냐며 꿈을 포기하게 하셔서 항상 공부에 한이 서려 있기에 우리 5남매에게는 늘 공부해서 하고 싶은 일들 다 하며 살아가라고 공부하라 채찍질하셨던 어머니.
초등학교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시간에 미술대회 상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을 보시고 무척 기뻐하시며 문학전집, 과학전집 책을 통 크게 사주셔서 그 책을 무척 사랑하게 만든 어머니. 덕분에 5남매는 공부들을 잘해서 동생들은 모두 서울로 공부하러 갈 수 있게 만드셨던 어머니.
밥 세끼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서울로 공부하러 보낸다고 주위에선 도움의 손길보다 걱정과 시기의 소리가 컸습니다.
내가 대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다니며 작은 도움을 드려도 티도 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둘째 동생이 대학 수석 입학하여 입학식을 보러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는 많이 우셨었습니다. 도움을 많이 주지 못해도 자식들이 다들 자기 나름의 길들을 잘 찾아서 나아가주는 것이 어머니의 힘이고 전부인 것이었습니다.
건설현장 잡부일부터 골프장 잡초 제거까지 험한 일을 하시면서도 큰소리로 웃으면서 다된다! 다 된다! 걱정하지 말라! 얼굴과 온 몸에 지치고 힘들다 써있어도 자식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다 견뎌 내시던 어머니.
동생들이 대학교 졸업할 때 학교 운동장 밟아 보시는게 삶의 전부였던 어머니. 그게 어머니의 힘이셨습니다.
사업을 하시다 모든 것을 잃고 힘겨워 하시던 아버지를 절에 일을 하도록 하여 돌아가시는 날가지 절 살림을 하시게 하셨던 어머니.
자식들을 위해 소리 없이 꾸준히 기도하시고 기도하셨던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챙기시지 않으시고,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도움의 손길을 마다 않던 어머니.
나 또한 어머니를 원망도 해보고 싫다고도 해보았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다보니 어머니의 삶은 그냥 조용한 울림으로 같은 길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부처님 전에 치성 드리고 기도하고 절하고 절하며 어머니의 삶을 따라가고 있음을 이게 삶인 것인가 가슴 뭉클함을 느끼며 뒤돌아보고 어머니께 원망보다 감사를 고마움을 보냅니다.
이제야 어머니, 어머니하고 아무리 불러보지만 대답 한 번 들을 수 없고 감사함을 드리고 싶어도 부질없음에 죄송하고 더 잘해 드릴 걸 하는 후회뿐입니다.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이제야 어머니가 훌륭한 분이셨음을 마음으로 느낍니다. 어머니의 삶에 감사와 사랑을 드리며..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매일매일 관세음보살님을 연호하며 어머니 극랑왕생하옵소서 발원하며 꽃구름 속에 앉아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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