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왼손엔 풀, 오른손엔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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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왼손엔 풀, 오른손엔 낫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8.2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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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아란야 정원에 상사화가 피어나고 있다. 무리지어 개화하고 있어서 아름다움 그 자체다. 시인들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다는 점에 영감을 얻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읊조린다. 난 자기 투사적 생각에 물들지 않고 그저 계절의 변화를 바라볼 뿐이다. 
50여 일의 긴 장마와 찜통더위까지 작별하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서늘한 산바람이 내실로 들어온다. 자연의 이런 변화를 불교에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17년째 전원생활을 하면서 매년 여름 장마철에 겪어야 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이것마저 일어났다 사라진다.   
맹독성 제초제를 살포하지 아니하여 과수 사이의 빈자리엔 무성한 잡초뿐이다. 특히 번식력이 왕성한 환삼덩굴과 칡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 마치 삿갓을 쓴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이 놈들은 빛을 차단해 광합성 작용을 못하도록 하므로 성장에 장애가 되는 덩굴은 때맞게 제거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내 허리만큼 키가 큰 망초 등의 잡초를 예초기로 자르지 않으면 과수나무에 접근할 수 없어서 부득이 잡초 모두를 낫으로 베거나 기계의 힘으로  예초할 수밖에 없다. 
잠자리, 귀뚜라미, 여치, 땅강아지, 쇠똥구리, 매미, 나방 등의 풀벌레들은 잡풀 숲을 자기들의 안식처로 여기는 것 같다. 매년 반복되는 풀베기가 그들의 서식지를 훼손하는 악업을 짓고 있지는 아니한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음력 오뉴월에는 거미가 감귤 나뭇가지 틈새에 건축가의 솜씨보다 세련되게 집을 짓는다. 월동을 하기 위해 실내로 숨어 들어왔던 무당벌레들이 과수에 달라붙은 진딧물을 잡아먹기 위해 여기저기 이동하는 길목에 거미줄을 치고 그물에 걸릴 때까지 주시한다.
그 뒤에서 개구리는 거미를 주시하고, 그 뒤에서 뱀은 개구리를 주시하고, 하늘의 매는 뱀을 주시한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먹이사슬 관계에 있는 미물微物들의 세계에도 먹이 자원을 포획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주시를 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적 측면에서 오로지 지금·여기에 의식을 둘 뿐,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동물들이 먹이사냥을 위해 전념(專念, committed)하는 의식의 작용은 개나 양이나 우마 등의 가축에게도 있으나 생로병사의 실존적 고통을 응시하는 지혜는 인간에게만 특유하다.
내 눈을 내 눈이 주시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원을 응시하는 관자재보살의 눈을 닮고자 한다. 자칫하면 방심하지 않도록 소금 역할을 하는 정념(正念, sati)과 여리작의(如理作意, yoniso manasikāra)가 다함께 거들어야 만 성공할 성싶다.  
마치 농부가 왼손으로 보리 포기를 잡고서 오른손에 든 낫으로 그것을 베듯, 
나의 풀베기는 왼손으로 환삼덩굴(번뇌)을 잡고 오른손에 낫(지혜)을 잡아 그 줄기를 자르고 뿌리까지 절단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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