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족쇄를 풀어줄 창밖의 108要談”⑬ - 나라는 존재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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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족쇄를 풀어줄 창밖의 108要談”⑬ - 나라는 존재의 실상
  • 황경환
  • 승인 2020.10.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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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환21세기불교포럼 공동대표, 전 울산불교방송 사장
황경환21세기불교포럼 공동대표, 전 울산불교방송 사장

  노자(老子)가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큰 환란이 있는 까닭은 오직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몸이 없는 데에 이를 수 있다면, 나에게 무슨 걱정과 근심이 있으랴.”

무상의 흐름 속에 있더라도 무상의 그 본분을 알면
슬프고 기쁜 일에 연연하지 않으리.

-자애심을 품어라. 연민의 마음을 가져라.
계행을 따라 잘 절제하라. 활기차고
목표(불교는 궁극적 인간 행복이 목표)에 열중하며
언제나 용감하게 밀고 나가라.
위험은 게으름[放逸] 속에 도사리고 있고
부지런함[不放逸]은 불사(不死)에 이르는 지름길.
이것을 너희가 안다면 닦아라,  8정도를. 그러면 접하게 되리니 깨달음을, 저 열반의 길을!

『테라가타』(17장 1품 979, 980)


삼법인(三法印)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지구라는 사바세계는 참으로 무상(無常)이며, 불안정[苦]하고, 비어[無我]있다. 그렇다면 이 부질없는 사바세계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무상·고·무아의 이 부질없는 사바의 삼특상(三特相)이라는 재료를 통해서 해탈의 관문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기막힌 현상인가! 그래서 이 사바세계를 일러 옛 선사들은 대도량(大道場)이라 하였으니...
청정도론에 의하면 해탈에는 3가지 관문이 있다. 그것은 무상·고·무아이다. 무상을 꿰뚫어 알아서 체득한 해탈을 표상 없는 무상(無常)해탈이라 하고, 고를 꿰뚫어 알아서 증득한 해탈을 원함 없는 무원(無願)해탈이라 하고, 무아(無我)를 꿰뚫어 알아서 요달한 해탈을 공(空)한 해탈이라 한다.

-스위스에는 세계적인 불교학자 자크 메 교수라는 분이 있다. 그는 불교와의 첫 인연이 열 살 때였다고 하는데, 부모님 서재에서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의 책에서 ‘반야바라밀’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프랑스 여성인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은 티베트 입국이 금지되어 있던 당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수도 라사를 서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방문할 정도로 열성적인 수행자였으며 학자였다. 
102살까지 생존한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이 임종하기 2년전인 1968년, 자크 메 교수는 그녀를 직접 찾아갔다. 일본에서 돌아와 로잔대학의 교수로 부임할 당시였다. 100세의 나이에도 의식만은 생생하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불교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단 세 가지만 분명하게 알면 됩니다. 바로 무상·고·무아 이지요. 이 셋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합니다. 인간은 자아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되고, 자아 때문에 늘 무엇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아를 약화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아집을 버리고 무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무상과 고를 골수에 박히도록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상과 고에 사무쳐야 한다고 해서 불교가 허무주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자크 메 교수가 힘주어 말했다고 한다. 절대적 허무주의는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으며 부당하다. 불교의 대철학자 용수(龍樹)가 말하는 공(空)은 절대적 허무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불교는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고 말할 뿐 ‘모든 것이 허무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고타마 붓다께서는 나는 세상을 이해하지만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장휘옥, 김사업 지음)와『101년 동안의 여행: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의 일대기』에서 인용

불교의 근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이를 만날 때마다 뛸 듯이 기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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