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 세상의 등뼈 정끝볕 (196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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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 세상의 등뼈 정끝볕 (1964 ~ )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1.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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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 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정끝볕 시인은 전남 나주 출신이다. 1988년『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 되었다. 시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윗 시를 읽을 때 가슴을 치개하는 시구는 마지막 연 ‘사랑하는 말 대신’이다. 왜냐면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없이 그저 툭 던지는 의미 없는 말에 경고장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을 받치고 있는 등뼈처럼 품, 돈, 입술, 어깨를 대주는 누군가의 보살행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 어떤 것도 생명을 제대로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 자신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것을 깨닫게 한다. 대준다는 말은 좀 상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는 말이지만 여기에선 성스럽게 느껴진다. 왜냐면 대준 품과 돈과 입술과 어깨로 등뼈를 세우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밥’이 되어 ‘사랑한다는 말 대신’ 쓰였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나를 받쳐준 모든 것들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보았는가. 그것을 나에게 묻고 있는 시다.   (오영호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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