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정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희생자 74위 추모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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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정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희생자 74위 추모제 봉행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1.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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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정사에서 일본 일승사 스님이 독경을 하고 있다.
선운정사에서 일본 일승사 스님이 독경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선운정사(주지 현오 스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김용덕) 주관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희생자 74위 추모제를 봉행했다. 
선운정사에는 지난 2019년 3월 일본 통곡사에 안치되어 있던 일제강제동원 74위를 이운 해와 미륵전에 임시로 봉안 안치되어 있다. 이는     <조선의 혼, 아리랑의 귀환>사업에 의해 지난 2018년 7월 타국에 있는 일제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유해 1차 귀환사업의 결실로, 일본 오사카 통국사 조선인 유해 74위가 선운정사에 모셔진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땅굴을 파는 군인들.
오키나와에서 땅굴을 파는 군인들.

 

일본 통국사와 제주 선운정사의 인연은 2014년에 입적한 후지키 쇼겐 스님과의 인연에서 시작한다. 후지키 쇼겐 스님은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에서 740여명 조선인 징병군을 지휘하던 일본군 학도병이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과 인연이 되어 전우애를 쌓게 된 후지키 스님은 여러 일본 사찰에 흩어진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한국으로 보내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오사카 통국사 최무애 주지 스님을 만나게 되었고, 함께 조선인 희생자 유해 조사 및 송환운동을 추진했다. 그러다 2014년 92세의 나이로 입적하면서 유언으로 조선인 전우들과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해 제주 선운정사에 유해가 모셔진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9년 <조선의 혼, 아리랑의 귀환>운동과 결합하면서, 조선인 유해 74위가 제주 선운정사에 모셔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선운정사 주지 현오 스님이 74위 유해송환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운정사 주지 현오 스님이 74위 유해송환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황동헌 사무국장은 ‘추도사’에서, “불행한 역사 속에서 고향에서 수만리 떨어진 이역에서 무모하게 희생된 넋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아직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해가 돌아오길 한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희생자 발굴과 수습, 봉안사업을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연대하여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어서 일본 북해도 일승사(주지 도노히라)의 스쌍 스님의 독경 속에서 참석자들의 헌향순서가 이어졌다. 

후지카 쇼겐 스님
후지카 쇼겐 스님

제주도지역유해봉환위원회의 이규봉 간사는 유해희생자를 소개하면서, “후지키 쇼겐 스님은 일본군 장교였으나, 조선인 희생자를 수습하기 위해 승려가 되었고, 희생자들의 유해를 제주에 모셔오기 위해 노력하신 일본의 양심이셨다.”고 소개하면서, “스님은 일본 패망 직전 오키나와에 어린 일본 장교로 부임해, 조선에서 갑자기 강제 징집된 어린 학생 학도의용군 740명의 지휘책임을 맡았던 일본군 장교였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을 보니 너무 딱해 보였다.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끌려오면서 부모님께 인사도 못하고 눈도 가려진채 끌려와서, 밤에는 손을 잡고 누워서 고향을 생각하며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에 눈시울을 적시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같이 따라 불렀던 분이다.“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또 ”너희들을 지켜주고 싶지만 일본은 미국에 패망한다. 이제 보급도 없어 먹을 것도 없지만 풀이라도 뜯어먹고 생존해서 살아 돌아가라“라고 했지만, 미군의 폭격으로 쇼겐은 부상을 입고 본토로 소환되었고, 남아있던 이들은 결국 미군 폭격으로 인해 한 장소에서 모두 폭사하고 말았다. 

오키나와의 한국인위령추모탑
오키나와의 한국인위령추모탑

 

“그 뒤 그 장교는 이들이 눈에 밟혀 그들의 유해라도 수습해 고향에 보내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미군통제지역으로 오키나와를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단지 허가받은 성직자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해서 바로 스님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수습하러 갔으나, 이미 시체들이 합동으로 매장된 상태라 유골이라도 고국에 돌려보내기 위해 많은 노력으로 평생을 바치셨다”고 소개했다. 
후지키 쇼겐 스님은 2014년 입적해서 생전의 소원에 따라 조선인 전우들의 유해를 모신 선운정사에 유해가 모셔지게 되었다. 
<조선의 혼, 아리랑의 귀환>운동은 남북공동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였으나, 남북화해와 통일 조성이 되기 전까지는 일단 제주도에 모시고 남북의 평화가 도래하면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모시기로 했다. 

오키나와 점령 미군이 찍은 조선인 징용자들
오키나와 점령 미군이 찍은 조선인 징용자들

 

다음은 현오 스님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앞으로 유해송환사업 진행은 어떻게 되나요?
▲코로나19로 진척이 어렵다. 이 사업은 북한과 일본과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 상황이 조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후지키 쇼겐스님의 유해를 선운정사에 모시고 있는데, 스님과는 어떤 인연이신지요?
▲쇼겐 스님이 임종 직전에 양아들이 되었다. 처음에는 오키나와의 위령탑 조성 사업 때문에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은 오키나와의 마지막 생존자로, 유언에서 “내 유해가 한국에 있으면, 나로 인해 한일관계가 아름답게 발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지금도 그 제자들이 자주 찾아와 한일교류의 좋은 디딤돌이 되고 있다. 
△오키나와의 조선인 유해는 어떻게 발굴되나요?
▲미군의 땅굴포격으로 유골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오키나와에 있던 여러나라 국적의 30만명이 죽었다. 그 당시 7월이라 엄청 더워서 하룻만에 시신이 썩어나갔다. 그래서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면서 포크레인으로 시신을 구덩이에 밀어넣고 불로 태워버렸다. 단지 일부의 사람들만 이름과 식별할 수 있는 물건을 건졌을 뿐이다. 
△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오키나와 한인 위령탑 건립이 하나의 결실이다. 평화주의자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에서도 그 영향력이 있어, 아들 김홍걸 의원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다. 앞으로 억울하게 일본에 끌려간 학도병들을 기억해주고 진정성 있게 가슴으로 기억하고 위로해주면 좋겠다.

74위의 유해가 모셔진 선운정사 미륵전 앞에서 추모식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74위의 유해가 모셔진 선운정사 미륵전 앞에서 추모식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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