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밖의 세상 ⑭ - 부처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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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밖의 세상 ⑭ - 부처를 만나면……
  • 박인수 (자유기고가)
  • 승인 2020.12.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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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디지털 뉴스리포트 2020」에서 한국이 조사 대상 40개국 중 언론 신뢰도 21%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2016~2020년 뉴스를 얻는 출처 조사에서는 86~83%가 온라인(그 가운데 소셜미디어는 32~44%)이라고 응답한 반면, 전통적인 뉴스 매체인 텔레비전과 인쇄 매체는 각각 71~63%와 28~18%로 대폭 낮아지는 추세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 개인이 작가와 기자가 되어 각자 SNS에 글을 쓰다 보니, 때론 진위를 의심할 만한 글들이 마구 살포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 송건호 선생은「신문과 진실」에서 윤봉길 의사가 1931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시라카와 대장 등을 폭사(爆死)시킨 사건을 두고 ‘객관적으로 정확히’(!) 보도한다면 윤봉길 의사는 ‘테러리스트’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은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기자 올솝 형제의 말을 인용한다. “훌륭하고 정확한 보도는 본래 가장 주관적인 것이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글이라서 그런가. 이 말을 너무 맹신하고 있는 듯하다.  올솝 형제가 한 이 말은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쓰라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역사적이고 인류 보편적 가치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취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양 알리면, 앞의 경우는 사건을 왜곡하게 되고 뒤의 경우는 허구에 그칠 뿐이다. 이건 보도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가짜뉴스’밖에 되지 않는다.
가짜뉴스라는 표현은 1920년대 나치당이 자신들과 이념적으로 맞지 않는 언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던 ‘Lügenpresse’(‘거짓말하는 언론’이란 뜻)를 원조로 보고 있는데, 100년이 지난 2020년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는 형편이다. 과거엔 주로 반공주의 세력들에게서 표출되던 것이 이제는 자칭 진보라고 하는 자유주의 세력에게서도 나오고 있다. 곧 가짜뉴스가 진영 논리란 이름으로 뒤바뀌어 양산되는 지경인데, 김규항 선생은 이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현재 한국에서 진영 논리란 자기 진영에 불리한 팩트는 감추려 들고 자기 진영에서 만들어진 가짜뉴스는 열심히 퍼트리는 ‘시민 기레기’ 운동을 뜻한다.”
그런데 지난해 조국 사태 때만 해도 진영 논리에 포섭돼 주말마다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윤석열 퇴진’을 외치던 이들이 이번 ‘추-윤 갈등’ 국면에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곧 정권이 검찰 개혁을 부르짖으며 검찰총장 윤석열을 찍어내려는 까닭은 조국을 비롯한 현 정권 실세들의 부패 혐의를 수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젠 알아차렸지 싶다. 
전문가들은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사람들이 그걸 믿거나 믿으려고 하는 까닭은 그만큼 현 체제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정권 초기 80%를 넘나들던 지지도는 고작 이전 대통령과는 다른 분위기 탓이었다. 인민을 위한 정책을 편 결과가 아닌 단지 보여주기(일명 ‘쇼’) 탓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을뿐더러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되레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선 대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산 속에서는 산 전체의 모양이 안 보이지만 산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다음엔 제대로 보이듯이. 
마르크스는 “모든 시대에서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라고 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기 위해서 검·경찰과 군대의 물리적인 폭력, 교육과 언론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총동원한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추미애(로 대표되는 정권)와 윤석열(로 대표되는 검찰) 갈등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인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폭력일 수 있다. 막강한 파워의 공수처 신설이든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승리든.
임제 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殺佛殺祖)고 했다.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부처라는 상을 깨뜨리고 사상, 전통, 관습 등 속박과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또한 부처라는 상에 집착하고 매몰되면 정작 자신이 수행해서 부처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부처만을 섬기는 종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자, 당신은 부처를 죽일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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