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만파식적’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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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만파식적’은 어디에 있는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2.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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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불자들은 동짓날 절에 가서 지난해의 액厄을 소멸하고 새해의 길운을 기원하는 동지불공을 올린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왕실의 주관 하에 동지를 전후하여 중동팔관회仲冬八關會를 열었고,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또 새로운 기분으로 일가친척이나 이웃 사이에 서로 화합하면서 어려운 일들을 다 함께 해결하고자 했다.
옛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지를 재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겼다. 우리는 12월 21일 동지를 기점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누그러질 것으로 학수고대하였으나 오히려 220개국에서 8,000 여만 명을 감염시키고도 무섭게 확산하는 중이다.
뉴질랜드는 코로나 발병 초기부터 입국자 격리, 외국인 입국 금지, 전국 봉쇄 등 강력한 조치로 세계 최초로 그 종식을 선언하였으나 허울뿐인 K-방역은 백신 확보까지 늦어지면서 그 액화厄禍의 마침표가 언제인지 가늠할 수 없다.
문득 신라 31대 신문왕 때 전설의 피리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생각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가 심할 때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가라앉고 물결도 잔잔해졌다고 한다. 이 피리는 경주 감은사 앞 동해의 외딴 섬 꼭대기에 생겨난 것으로서 낮엔 둘이 되었다가 밤엔 하나로 합치는 한 줄기 대나무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동해의 용왕이 된 문무대왕과 도리천의 천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각각 신묘한 대나무로 화현하여 그 재료로 피리를 만들도록 동해의 용에게 계시를 내리자 용이 왕에게 그 뜻을 아뢰어서 전쟁과 자연재해로부터 민생을 화평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오묘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화평하게 하며 모든 근심의 파도를 쉬게 하는 피리는 과연 대한민국에 있는 것일까. 있다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파도와 폭풍을 잠잠케 하는 피리소리를 듣기는 영 글렀다. 한 손으로 소리를 낼 수 없고, 두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정치를 하거나 권력을 쥔 자들이 싸움질만 하고 있어서 그렇다. 
관념과 신념, 믿음이라는 자신의 안경에 집착하여 오로지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제가齊家는커녕 수신修身도 못하는 위정자들이 국민들은 안중에 없고 여우처럼 교활하기만 해 ‘만파식적’ 운운은 어림없는 소리다. 오죽 꼴불견 했으면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말을 했을까.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굽는 것처럼 자주 뒤집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주 뒤집으면 작은 고기의 살점이 부서져서 쓸모가 없게 되듯이 개혁과 적폐청산의 회오리바람에 울창한 숲이 사막화 돼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2020년 한 해는 진짜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든 시기였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지금 병에 걸려있다고 말해주듯이 불교는 우리가 여태껏 무시해왔던 만인 공유의 병증을 일깨워 주고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유방법을 제시한다. 
북과 막대기를 반연하고, 또 연민(悲, karuņā)의 갑옷을 입은 연주자의 인욕바라밀을 반연해서 감미롭고 매혹적이고 황홀하게 하고 매료되게 하는 소리가 나온다. 유교의 덕치德治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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