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수필 - 용왕님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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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수필 - 용왕님은 누굴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1.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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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 시인 . 도서출판 뷰티풀마인드 대표

만해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는 김명수 시인이 어린이를 위해 쓴 동시집에 이런 시가 실려 있습니다.  

용왕님은 누구니?

아이가 바다에게 물었습니다.
“바다야, 바다 속에 용궁이 있니?”
바다가 아이에게 대답했습니다.
“바다 속에, 바다 속에 용궁이 있지.
깊은 바다 속에 용궁이 있지!”
“용궁에 용왕님도 살고 있니?”
“용궁에 용왕님도 살고 있지!”

아이가 바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용왕님은 누구니? 용왕님은 누구지?
힘세고 큰 고기가 용왕님이니?”
“아니야, 아니야.
힘세고 큰 고기만 용왕님이 아니야.
크고 작은 고기들이 모두 다 용왕님이야.
조개들도 해초들도 모두 다 용왕님이야!”

《상어에게 말했어요》라는 동시집에 첫 번째로 등장한 이 시를 읽고 저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얼마든지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엄마나 아빠에게, 선생님에게 묻지 않고 바다에게 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른이지만 대부분 어른들은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단단하게 굳어져 열린 대답을 해 줄 수 없습니다. 어른들 가운데 누군가 제게 비슷한 걸 물어서 요렇게 비슷하게 대답해주면 어리둥절해 하거든요. 그저 제가 말장난을 하는 줄 알고 넘어가고 맙니다. 진지하게 따져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아이였을 때로 돌아가 보죠. 아이였을 때는 우리도 충분히 유연했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가도 어른이 “괜찮아 무서운 거 아니야!”하면 안심을 할 수 있었지요. 물론 나쁜 어른들에게 가끔 속기도 하지만요.
 설사 용왕님이 따로 있고, 나와 다른 큰 힘을 지니고 있는 대단한 신이라고 믿고 있었더라도 김명수 시인처럼 말해주면 아이들은 바로 마음을 엽니다. 더 자유로워지는 거죠. 용왕이라는 하나의 신에 갇히지 않고 크고 넓고 따뜻한 세계로 바로 헤엄쳐 갑니다.
“그럼, 새우도? 멸치도? 파래도? 플랑크톤도? …… 다 용왕님이에요?” 말 잇기를 끝없이 하면서 신나게 용왕의 세계를 확장해 나갈 겁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도 한번 물어보죠. 사람에게 물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있어서 자기식대로 대답할 테니까요. 그러니 허공에게 물어보자고요.
 
“허공아, 부처님이 있니?”
“그럼, 있지!”
“어디에 있니?”
“어디나 다 있지?”
“누가 부처님인데? 누구야, 누구야? 누가 부처님이지?”
“사장님도, 청소부도, 남편도, 아내도, 아들도, 딸도, 보성이도, 승선이도, 연심이도, 은희도, 소도, 말도, 벌레도 나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어떠냐고요? 
다 큰 어른인데 아직도 개가 무섭습니다. 다섯 살 때 개한테 물린 기억 때문이겠죠. 덜렁대서 실수도 많이 합니다. 겁이 많아 누가 싸우자고 눈만 부릅떠도 간이 쪼그라듭니다. 백전백패의 전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저도 부처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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