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② - 새 우는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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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② - 새 우는 골짜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2.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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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립 _ 시인, 수필가
곽경립 _ 시인, 수필가

왕유王維(701-761)는 모친이 독실한 불교신자인 탓에 대체로 어린 시절부터 불교의 영향을 받아 불가에 깊이 심취하였으나, 일정한 문중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북종北宗이 성행하자 자연스럽게 북종의 선승들과 왕래했고, 그 후 남종南宗이 흥기하자 남종의 선승들과 교류 했을 뿐, 남․북종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북종의 정각淨覺의 비문〈대당대안국사고대덕정각선사비명;大唐大安國寺故大德淨覺禪師碑銘〉을 썼으며, 신회神會의 부탁으로 남종의 시조始祖인 혜능慧能의〈능선사비;能禪師碑〉를 쓰기도 했습니다. 
불가에서는 사람들이 실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즉, 모든 현상과 사물(諸法)의 존재는 스스로 생겨나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들이 얽히고설킨 인과因果관계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한 실체 없는 존재(諸法無我)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담겨있는 왕유의 시 한편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鳥鳴磵(조명간)     새 우는 골짜기

人閒桂花落(인한계화락)    사람 한적한데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밤이 고요하니 봄 산이 적막하다.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달 떠오르자 산새들이 놀랬는지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간간이 봄 개울가에 새 소리 들린다.

왕유가 만년에 자연에 심취하여 정신적 자유를 추구했던 사상은 대승불교의 선사상禪思想이었습니다.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인 반야경전般若經典의 교의敎義는 ‘공空의 사상’입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실체가 아닌 허상이라는 것이지요(一切皆空). 그리고 인연에 의해서 생기는 모든 것은 변화하며 흘러간다고 하여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생겨나(自我) 변화하지 않는(無常)본질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의한 실존일 뿐 실체가 없다.’ 이것이 ‘공空의 사상’이며 ‘연기緣起의 원리原理’인 것입니다. 
자, 이제 시인의 얘기를 풀어볼까요. 늦은 밤 인적이 끊어진 고요한 산속에는 불어오는 바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인생무상을 말하듯 꽃잎이 나풀나풀 떨어집니다. 순간 시인은 삶이 무엇인지 깊은 명상에 잠기게 됩니다. 그때 밝은 달이 떠올라 산속의 적막을 깨웁니다. 갑자기 숲속이 훤해지자 새들이 놀라 수런거리듯 간간이 울어댑니다. 실체가 아닌 허구에 놀라고 있는 것이지요. 왕유는 참선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관조하여 다시 자신의 내면세계로 반조返照함으로써 자아응시를 통한 선의 이치(禪理)를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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