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업에서 헤어나는 길
상태바
명상 에세이 - 업에서 헤어나는 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2.03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현
유현

올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그리웠는데 어느새 하얀 소의 해, 입춘이다. 집 대문이나 기둥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복을 바라는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란 글귀를 써서 입춘첩立春帖을 붙이는 게 우리네 민속이다.  
입춘의 세시풍속 가운데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도 있다. 한 해 동안의 액厄을 면하기 위해 선행을 하되 드러내지 않고 몰래 꼭 한다는 것이다. 또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 번째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凶豊을 가려보는 점치기도 한다.
 “업(業, kamma)은 나의 모태이자 상속자이다.”라는 붓다의 사자후를 염두에 두고 내 마음의 밭갈이 길흉을 헤아려 본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은 일반적으로 12연기의 상카라(sankhāra, 行)를 뜻하지만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밖의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이를 지켜보는 데서 멈추지 못하고 그 과정에 정신적으로 관여하여 이런저런 입장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등으로 바깥 경계에 휘말려 들 때의 의도(cetanā)라고 하는 마음부수 또는 마음씀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대상을 거머쥐기 위해 애쓰고 휩쓸리거나, 혹은 못마땅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내 의도에 반하는 상대방을 침묵시키기 위해 거친 말을 내뱉기도 한다. 때로는 어중간한 입장에서 마음속으로는 시비를 가리고 누군가의 편을 들 때도 있다. 이것은 몸이나 말로 저지르는 불선不善의 행위이다.
세존께서 “세상은 행위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로 인해서 존재한다. 뭇 삶은 달리는 수레가 축에 연결되어 있듯이 행위에 매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무엇이 착한 업 또는 나쁜 업의 기준인가? 
출가사문의 생활은 무소유의 삶이지만, 재가자의 삶이란 ‘소유’이다.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백조의 빠름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시·지계·수행의 세 가지 공덕 행은 출가사문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소유의 삶을 은퇴하고 졸업할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관여했던 옛일을 돌이켜 회상하면 마치 당근을 좋아하는 말이 당근 밭에 들어가서 원하는 대로 먹는데 흠뻑 빠졌던 것과 같다. 당근이 다 자라난 밭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과 같고, 당근을 좋아하는 말은 길들여지지 않는 마음의 경향과 같다.
아직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며 생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새해엔 당근 밭을 지키는 농부 수행자로 거듭 변신해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진실로 여섯 가지 감각의 대문에서 마음 챙긴다면(sati) 결코 남의 눈에 염치없게 보이거나 어리석게 남의 이목을 끌게 되는 따위의 못된 짓은 하지 않을 터.
마음 챙김을 놓친 채 눈[眼]의 문으로 형색을 보고, 귀[耳]의 문으로 소리를 듣고, 코[鼻]의 문으로 냄새를 맡고, 혀[舌]의 문으로 맛을 보고, 몸[身]의 문으로 감촉에 닿고, 의[意]의 문으로 법을 알고서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면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음이라. 
업을 짓는 속행의 마음(javana)에서,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고,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있고, 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있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도록 마음 챙기고 또 챙기는 수행으로 올해의 길조를 점쳐 본다.
내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가 있지 않으면 여기 이 세상도 없고 저기 저 세상도 없고 이 둘의 가운데도 없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