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13]
상태바
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1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3.04 1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諸佛의 한량없는 法門이 具足되었고, 하나하나의 法門에는 한량없는 妙義가 具足되었으며, 하나하나의 妙義에는 諸佛의 한량없는 妙理가 發揮되어 있으니, 곧 彌勒의 樓閣 中이며, 곧 普賢의 毛孔 中이다.

 

■夫壇經者╷ 言簡ᄒᆞ고 義豊ᄒᆞ면 理明ᄒᆞ고 事備ᄒᆞ야 【諺解】壇經이 말ᄉᆞᄆᆞᆫ 젹고 ᄠᅳ든 豊ᄒᆞ며 理╷ ᄇᆞᆰ고 事╷ ᄀᆞ자 (壇經이 말[言]은 적고(간결하고) 뜻[義]은 풍부하며, 理가 밝고 事가 갖추어져 (있어서))■具足諸佛無量法門ᄒᆞ며 一一法門에 具足無量妙義ᄒᆞ며 一一妙義예 發揮諸佛無量妙理ᄒᆞ니 卽彌勒樓閣中이며 卽普賢毛孔中이라 【諺解】諸佛 無量 法門이 ᄀᆞᄌᆞ며 一一 法門에 無量妙義 一一 妙義예 諸佛 無量 妙理ᄅᆞᆯ 펴니 곧 彌勒 樓閣中이며 곧 普賢 毛孔中이라 (諸佛의 한량없는 法門이 (또한) 구비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법문에 한량없는 妙義가 갖추어져 있으며, 하나하나의 妙義에 제불의 한량없는 妙理를 펴니, 곧 彌勒의 樓閣 중이며, 곧 普賢의 毛孔 중이다.)
■夫壇經者╷ 言簡ᄒᆞ고 義豊ᄒᆞ면 理明ᄒᆞ고 事備ᄒᆞ야 【諺解】壇經이 말ᄉᆞᄆᆞᆫ 젹고 ᄠᅳ든 豊ᄒᆞ며 理╷ ᄇᆞᆰ고 事╷ ᄀᆞ자 (壇經이 말[言]은 적고(간결하고) 뜻[義]은 풍부하며, 理가 밝고 事가 갖추어져 (있어서))■具足諸佛無量法門ᄒᆞ며 一一法門에 具足無量妙義ᄒᆞ며 一一妙義예 發揮諸佛無量妙理ᄒᆞ니 卽彌勒樓閣中이며 卽普賢毛孔中이라 【諺解】諸佛 無量 法門이 ᄀᆞᄌᆞ며 一一 法門에 無量妙義 一一 妙義예 諸佛 無量 妙理ᄅᆞᆯ 펴니 곧 彌勒 樓閣中이며 곧 普賢 毛孔中이라 (諸佛의 한량없는 法門이 (또한) 구비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법문에 한량없는 妙義가 갖추어져 있으며, 하나하나의 妙義에 제불의 한량없는 妙理를 펴니, 곧 彌勒의 樓閣 중이며, 곧 普賢의 毛孔 중이다.)

 

夫壇經者╷ 言簡ᄒᆞ고 義豊ᄒᆞ면 理明ᄒᆞ고 事備ᄒᆞ야 
【諺解】壇經이 말ᄉᆞᄆᆞᆫ 젹고 ᄠᅳ든 豊ᄒᆞ며 理╷ ᄇᆞᆰ고 事╷ ᄀᆞ자 (壇經이 말[言]은 적고(간결하고) 뜻[義]은 풍부하며, 理가 밝고 事가 갖추어져 (있어서))

【解說】⑴ 言簡 義豊 理明 事備: ‘言’과 ‘義’, ‘理’와 ‘事’가 각각 對應한다. 즉 ‘言’은 표현된 글이고, ‘義’는 그 글 속에 표현된 ‘의미’이며, ‘理’는 이치이고, ‘事’는 이 세상에 드러난 경계를 나타낸다고 할 것이다.
佛典을 위시한 많은 思想書에서는 ‘言’과 ‘義’, ‘理’와 ‘事’ 등이 상용되므로,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잘 분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言’과 ‘義’가 의미하는 바를 고찰해 보겠다.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기호란 분리 가능한 두 개의 요소, 즉 시니피앙(signifiant)과 시니피에(signifié)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시니피앙이란 한자로 표현하면 記標(또는 能記)로,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外的 형식을 이르는 말이고, 시니피에란 記意(또는 所記)로, 말에 있어서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를 이르는 말이다.
가령 한국인도 미국인도 중국인도 인간의 ‘머리’를 보고, 그것은 사람의 얼굴 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의 얼굴 위에 있는 그것이 시니피에이다. 그러나 동일한 그것을 한국인은 /məri/(머리)로 발음하고, 미국인은 /hed/(head)라고 발음하며, 중국인은  /tou/(頭)라고 발음한다. 이렇게 각기 다른 발음을 시니피앙이라고 한다. 즉 표현되는 대상의 것은 시니피에, 대상을 표현하는 소리(언어)는 시니피앙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아버지를 생각한다고 할 때, 아버지가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는 인간이며, 남자이며, 결혼하여 아이를 둔 그런 사람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의미들의 합을 시니피에라고 하고, 그러한 의미를 내포한 사람을 부르는 발음 또는 이름인 ‘아버지’가 시니피앙인 것이다. 즉 이곳의 ‘言’은 위 설명의 시니피앙에 해당하는 것이고, ‘義’는 시니피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결국 시니피에에 해당하는 ‘義’는 시니피앙(言)이라 불리는 것이 내포하는 온갖 의미자질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불교에서 法이라고 함은 敎說이나 聖典이라는 의미의 敎法, 최고의 진리, 일체의 현실 존재로 하여금 현재의 상태로 존재케 하고 있는 법칙과 기준, 인간이 실천하여 생활해야 할 도리, 객관적으로 독립된 실체(존재), 법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유·무형, 심·물적인 모든 현상, 즉 의식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일체법 등을 말하므로, 불전을 읽을 때, 法이라는 용어가 출현하면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大乘起信論』에서는 法과 義를 말하고 있는데, 설명에 의하면 法이란 대승의 본체를 말하고, 義란 대승이라 불리는 명칭의 의미라고 한다.
위의 설명들을 참고하여 言(名)과 義, 그리고 法을 나누어 정리해 보면, 이곳에서 말하는 法은 ‘최고의 진리인 본체’, 言(名)은 ‘언어로 표현된 본체의 명칭’, 義는 ‘본체(명칭)가 내포한 의미자질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上記의 “壇經이 말[言]은 적고(간결하고) 뜻[義]은 풍부하며”의 의미는, “壇經이 내포한 의미(義)는 풍부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문체(言)는 간결하다.”라고 할 수 있다.
⑵ 理 *//)     는 『說文解字』에서 “治玉也. 从玉里聲(옥을 가공하다)”라고 하였다. 즉 이것은 ‘무늬(紋)의 결을 따라 돌에서 갈라내는 것’을 나타낸다. 또 그것의 音符인 里는 『說文解字』에서 “居也. 从田从土”라고 하였다. 즉 里는 본래 밭(田)과 땅(土)를 더하여 사람이 모여 사는 땅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고대에는 5家를 1隣이라고 하였고 5隣이 1里를 이루었다고 한다. 따라서 결국 “마을(里)을 형성하려면 비옥한 땅과 밭이 있어야 한다.”는 일정한 이치가 있어야 하듯, “옥을 가공하려면(理) 무늬의 결을 따라 해야 한다.”는 일정한 이치가 있어야 할 것이므로, ‘理’는 ‘이치, 원리’라는 뜻이 되었다고 한다.
위의 번역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飜譯】대체로 壇經은, 말(言)은 간결하고 뜻(義)은 풍부하며, 이치(理)는 명백하고 事는 [두루] 갖추어져 있으며,

 

具足諸佛無量法門ᄒᆞ며 一一法門에 具足無量妙義ᄒᆞ며 一一妙義예 發揮諸佛無量妙理ᄒᆞ니 卽彌勒樓閣中이며 卽普賢毛孔中이라 
【諺解】諸佛 無量 法門이 ᄀᆞᄌᆞ며 一一 法門에 無量妙義 一一 妙義예 諸佛 無量 妙理ᄅᆞᆯ 펴니 곧 彌勒 樓閣中이며 곧 普賢 毛孔中이라 (諸佛의 한량없는 法門이 (또한) 구비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법문에 한량없는 妙義가 갖추어져 있으며, 하나하나의 妙義에 제불의 한량없는 妙理를 펴니, 곧 彌勒의 樓閣 중이며, 곧 普賢의 毛孔 중이다.)

【解說】⑴ 본 문장의 文義를 살펴보면, ‘具足無量妙義’과 ‘發揮諸佛無量妙理’의 앞에 각각 ‘一一法門’과 ‘一一妙義’가 있듯이, ‘具足諸佛無量法門’ 앞에는 ‘壇經’이 생략되어 있으며, 또한 ‘一一法門’, ‘一一妙義’, ‘壇經’ 등은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副詞語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具足諸佛無量法門 … 具足無量妙義 … 發揮諸佛無量妙理’ 등은 모두 피동표지가 없는 피동문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에 근거하면 언해가 “‘具足諸佛無量法門 … 具足無量妙義”은 피동의 의미로 해석하고, “發揮諸佛無量妙理”은 능동의 의미로 해석하였으므로 잘못이며, 모두 피동의 의미가 드러나게 고쳐서 통일해야 한다.  
⑵ 漢語에서는 量詞를 중첩하면 ‘하나하나 모든 그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예컨대 ‘個個人’에서 ‘個’는 量詞이며, 그것의 의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量詞는 본래 名詞가 변하여 된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명사가 중첩되어도 같은 뜻으로 쓰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念念’이란 ‘한 생각 한 생각의 모든 생각’(사실 ’念‘은 1초의 1/16 또는 1/17에 해당하는 짧은 순간이기 때문에, 필자는 한 순간 한 순간의 모든 순간이라고 생각한다.)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一一’은 수사이지만 여기에서는 이것 역시 ‘하나하나 빠짐없이 모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⑶ 본 문장은, 단경에는 뭇 부처님이 말로 설하신 온갖 법문(위의 言)이 구비되어 있고, 그 법문에는 온갖 미묘한 義가 구비되어 있으며, 그 義에는 뭇 부처님의 온갖 미묘한 이치(의미자질)가 드러나 있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⑷ 彌勒樓閣: 華嚴會上에서 善財童子가 110城으로 53 善知識에 참예하고 끝으로 미륵누각에 이르러, 樓閣의 문을 열어 주기를 청하니 미륵이 손가락을 퉁겨 문을 열었다. 선재동자가 들어가자 문이 닫혔는데, 이에 선재동자는 미륵의 누각이 한량없이 넓어서 허공과 같음을 보게 된 것이다.
⑸ 普賢毛孔: 善財童子가 文殊師利의 處所에서 三昧를 얻은 뒤, 53번째로 普賢菩薩을 親見하기 위해 一心으로 精進한 결과, 獅子座에 앉아 있는 普賢菩薩의 털구멍에서 광명의 구름이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善財童子가 그 구름을 보고 크게 기뻐하므로 普賢菩薩이 그 이마를 만져 法을 說하니 善財童子는 한량없는 三昧를 얻게 되었다.
위의 번역을 아래와 같이 수정한다.

【飜譯】[단경에는] 諸佛의 한량없는 法門이 具足되었고, 하나하나의 法門에는 한량없는 妙義가 具足되었으며, 하나하나의 妙義에는 諸佛의 한량없는 妙理가 發揮되어 있으니, 곧 彌勒의 樓閣 中이며, 곧 普賢의 毛孔 中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