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수필 - 언젠가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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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수필 - 언젠가 당신은…
  • 김희정 시인
  • 승인 2021.03.17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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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칭찬을 하는 일도 칭찬을 받는 일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없는 칭찬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으니 접대용 멘트도 잘 못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인간관계 폭이 좁을 수밖에요. 
얼마 전 휴일에 뜻밖에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한 동안 불교신문을 안 보다 그날 신문을 펼쳤는데 내 글이 실려 있어 너무 반가웠다는군요. 몇 년간 필진으로 불교신문 한 페이지를 채우다가 얼마간 쉬었습니다. 다시 2020년 송년 시로 인사를 올리고 한 꼭지를 맡았는데 그 보살님이 그걸 꼼꼼히 읽어 준 것입니다. 비록 수화기 너머이지만 찬탄을 하는 보살님의 환한 얼굴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 보살님의 격려가 힘이 되어 저는 또 이렇게 자판을 두드립니다. 
 잠깐 사천포로 빠져보겠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평생 酒님과 사랑에 빠진 아버지는 경제 능력이 없었습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내게 준 것은 가난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 어느 날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내 영혼을 키운 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술주정은 저를 찬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칭찬을 그렇게 잘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저에게는 특히 그랬습니다.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면 하춘화보다 더 잘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러냐고요? 아들에게 늘 박자 못 맞춘다는 소리를 듣는 수준이니 미루어 짐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너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라는 소리는 아예 귀에 못이 박혔습니다. 사실일까요? 이쯤에서 살짝 공개하자면 저는 인기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양의 아이큐와 같습니다, 궁금하시면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내가 못하는 일은 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잘 못하는데도 큰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럼 그 모든 아버지의 찬탄을 제가 귀담아 들었을까요? 무시하고 무시했습니다. 술주정뱅이 말일 뿐인걸요. 그런데도 플라시보 효과인지 저는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가난밖에 없었는데도 기죽은 적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허풍에 가까운 찬탄 주문에 단단히 걸린 셈이지요.
찬탄하면 빠지지 않는 20년 지기 친구가 있습니다. 누구를 보든 무엇을 보든 찬탄합니다.  그 친구 눈에 아름답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까 싶습니다. 분명히 말이 안 되는데도 찬탄을 합니다. 법화경의 상불경 보살이 따로 있나요? 바로 제 친구 보살입니다.
좀 지쳐 보이는 사람을 만나도 “얼굴 좋아졌수다, 예! 막 젊어졌수다!” 이럽니다. 심지어 순 못된 짓만 골라하는 사람을 만나도 “잘 햄수다!” 합니다.  
한때는 ‘오, 저런 가식!’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그 친구의 찬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아부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20년 지기인 제가 모르면 누가 알겠습니까? 스스로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 그 친구의 말 머리에 “언젠가 당신은…”을 넣고 듣습니다. 그러면 딱 맞습니다. 친구의 말대로 언젠가 당신은 밝고 빛나는 존재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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