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의 선봉 방동화 스님의 혼이 서린 곳 - 중문 광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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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의 선봉 방동화 스님의 혼이 서린 곳 - 중문 광명사
  • 안종국 기자
  • 승인 2021.04.07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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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 대웅전
광명사 대웅전

 

서귀포시 중문동 성천봉(星天峰) 기슭에 자리한 한국불교태고종 광명사(光明寺)는 한라산 산세가 힘차게 내려와 커다란 계곡을 이루고 그 끝에 웅장하게 자리한 천제연폭포 인근에 있다. 이 폭포 위에 놓인 선임교에 서서 왼쪽에 들어선 아담한 사찰이 바로 광명사다.
광명사는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 당시 좌대장으로 참여했다가 일제로부터 6년 징역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겪었던 방동화(方東華) 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그래서 사찰의 위세보다 그 지나온 내력이 더욱 소중한 빛을 발하는 도량이다. 
방동화 스님은 1887년 8월 8일 남제주군 중문면 대포2구 371번지에서 태어나 1896년 하원동 한문사숙에서 통사 및 사서를 수학했다. 1909년 관음사 전각이 기공식을 하며 불사가 한창 진행될 때 관음사에서 처사로 지내면서 안봉려관 스님 등과 함께 제주불교 중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광명사 대웅전 내부의 석가여래좌상. 왼쪽에 1926년 방동화 스님이 조성한 건칠불(乾漆佛)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광명사 대웅전 내부의 석가여래좌상. 왼쪽에 1926년 방동화 스님이 조성한 건칠불(乾漆佛)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방동화 스님은 당시 관음사에서 만난 강창규 스님에게 커다란 감명을 받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13년 4월 8일 경주 기림사에서 우전 도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경상북도 문경 대승사에서 사미과 및 수의과를 수료하였다. 
그 후 1918년에는 강창규, 김연일 스님 등과 함께 전국적인 독립운동의 바람을 제주에서 앞장서 일으켜 세우자는 의지를 불태워 1918년 10월 법정사 항일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거사 후 몇 달 뒤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면서 6년간 목포형무소에서 투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 1923년 감옥에서 풀려난 후, 서귀포시 법화사 복원불사에 동참하였으나, 일제의 감시로 여의치 않았다. 이에 1925년에는 부산 범어사로 향하여 승림 박만하 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고 곧바로 금강산 마하연선원에 들어가 참선수행에 매진하였다. 방동화 스님이 제주도로 다시 돌아온 것은 1929년의 일이다. 

전망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한 염불선원
전망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한 염불선원

 

원만사는 방동화 스님이 1923년 목포형무소에서 출옥한 후 하원동 산자락의 반 평 남짓한 자연굴에 의지하여 수행하던 곳에 세워진 사찰이다. 마을 신도들이 초가로 된 법당을 짓고 스님의 수행도량으로 마련한 것이다. 
1945년 해방을 맞은 제주불교계에는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행해졌던 친일에 대한 참회를 통해 해방 이후 제주불교의 활동 방향을 혁신하고자 하는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제주불교계는 1945년 12월 조선불교혁신 제주승려대회를 개최하고 그 활동의 구심점이 될 제주교구 교무원을 조직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방동화 스님은 초대 제주교구 교무위원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며 제주불교의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템플스테이관
템플스테이관

 

그러나 1948년 제주4.3사건이 일어나면서 방동화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원만사는 인근 법화사와 함께 토벌대에 의해 모두 불태워지고 당시 사찰에 기거하던 양홍기 스님이 총살되는 등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양홍기 스님 외에도 방동화 스님과 함께 근대 제주불교를 이끌던 대부분의 스님들이 총살을 당하고 수장되는 파란의 시대를 보내며 방동화 스님도 폐허가 된 원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1949년 4월 8일 신도 30여 명과 함께 중문동 2264번지에 터를 마련하고 새로 절을 창건하니 이것이 곧 광명사다. 

방동화 스님 기념비
방동화 스님 기념비

 

그 뒤 광명사는 1970년 창건주 방동화 스님이 입적하자 신도들이 사찰부지 반환을 요구하여 1972년 중문동 2274-1번지로 이전하였다. 이곳에서 2대주지 이상규 스님이 30평 규모의 대웅전과 18평 규모의 요사를 건립하여 1977년 8월 22일 한국불교태고종으로 종단 등록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1984년 11월 중문관광단지 조성계획에 의해 개발용지로 수용당하고 말았다. 결국 1995년 12월 5일 또다시 중문동 2273번지로 이전하여 서귀포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고 1996년 6월 19일 대웅전, 요사 및 법당 내부의 불상 조성 등 중창불사를 회향하고 낙성 및 점안 대법회를 봉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방동화 스님
방동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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