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17) - 느낌 경(It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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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뽑은『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17) - 느낌 경(It3:4)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5.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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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주석서』에서 전해지는 쿳줏따라(Khujjuttara)는 선천성 꼽추이자‘꼬삼비’나라의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였다. 이런 비천한 신분임에도 전생에 벽지불을 시봉한 공덕이 있어 부처님께서‘꼬삼비’도시에서 설법하신 112개의 경을 듣고, 수지하여 예류과를 증득하였음은 물론, 그 경들을 왕비와 시녀 500명에게 전달하여 그 여인들까지 예류과에 확립하게 함으로써 보살도를 실천하셨기에 부처님의 재세 시에‘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라는 칭찬을 받으신 님. 법의 창고지기인 아난다 존자를 포함한 500명의 아라한들이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쿳다까 니까야』의 네 번째 경전으로 결집하여 26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승된 이 경전의 정수를‘각묵’스님께서 정리하여 격 주간으로 30여 회 법문한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로 지난 30여년간 초기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널리 알리는 초기불전들을 한글로 옮기는 번역불사를 꾸준히 전개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통한 불교교리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1957년 밀양 출생으로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대 수학교육과 3학년 재학 중 출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1989년부터 10년간 인도로 유학(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를 수학)하여,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대림 스님과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을 번역하였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실상사 화림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로 지난 30여년간 초기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널리 알리는 초기불전들을 한글로 옮기는 번역불사를 꾸준히 전개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통한 불교교리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1957년 밀양 출생으로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대 수학교육과 3학년 재학 중 출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1989년부터 10년간 인도로 유학(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를 수학)하여,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대림 스님과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을 번역하였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실상사 화림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경전】

1.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2. “비구들이여, 즐거운 느낌들을 괴로움으로 보아야 하며, 괴로운 느낌들을 쇠살로 보아야 하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을 무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즐거운 느낌들을 괴로움으로 보고 괴로운 느낌들을 쇠살로 보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을 무상한 것으로 볼 때 그를 일러 ‘비구는 성자요, 바르게 보는 사람이라 한다. 그는 갈애를 잘라버렸고 족쇄를 풀어버렸고 바르게 자만을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뜻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2. 이 경에서 이것을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에서 괴로움을 읽어내고
 괴로움을 쇠살처럼 여기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저 고요한 느낌
 그것을 무상으로 인식하는
 그 비구야말로 바르게 보는 자이니
 거기서 잘 해탈하기 때문이로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 목적을 이루었고
 고요한 그가 바로 속박을 뛰어넘은 
 성자로다.”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해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두 번째 설법은 느낌[vedanā, 受]이다. 느낌은 젊은이들이 ‘필이 꽂혔다’라고 열광하는 feeling을 뜻한다. 느낌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느낌은 감정적·정서적·예술적 심리현상의 단초가 된다. 왜 느낌이라 부르는가? 느낀다고 해서 느낌이라 한다. 그러면 무엇을 느끼는가? 즐거움도 느끼고 괴로움도 느끼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도 느낀다. 
 <둘째> 초기경전에 따르면 느낌은 즐거운 느낌[樂受], 괴로운 느낌[苦受],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세 가지 느낌 가운데 즐거운 느낌은 탐욕의 잠재성향과 관계가 있고, 괴로운 느낌은 적의敵意의 잠재성향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명의 잠재적 성향과 관계가 있다.
<셋째> 인식이 이념이나 사상을 더 중시하는 사회주의와 관계가 깊은 것이라고 한다면 감정이나 정서, 예술과 편리함의 추구와 관계있는 느낌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광고는 인간의 느낌을 무한대로 자극한다.
<넷째> 느낌은 반드시 일어난다. 피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법은 느낌으로 모인다.”라고 말씀하셨다. 남방 아비담마와 북방 아비달마, 유식에 의하면 느낌은 마음과 항상 함께 일어나는 심리현상, 즉 반드시들[遍行心所]에 속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아 숨 쉬는 동안 상수멸想受滅, 즉 멸진정滅盡定에 들지 않는 한 느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다섯째> 느낌의 법들은 마음이 일어나는 바로 그 현장에서 함께 일어난다. 
「뿌리 경」(A8:83)에서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반들이여, 모든 법은 열의[慾, chanda]를 뿌리로 하며, 모든 법은 마음에 잡도리함[作意, manasikāra]을 근원으로 하며, 모든 법은 감각접촉[觸, phassa]으로부터 일어나며, 모든 법은 느낌으로 모인다. …”
<여섯째> 그러면 피할 수 없는 괴로운 느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간병실 경」(S36:7)에서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그대들에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이렇게 숙고해야 한다. 이것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바로 이 몸에 의해 조건 지어졌다. 그런데 이 몸은 참으로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듯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몸에 조건 지어진 이 괴로운 느낌이 어찌 항상할 수 있을 것인가? 수행승이 몸과 괴로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그라짐을 관찰하고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무른다. 그러면 몸과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즐거운 느낌과 평온한 느낌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말씀하셨다.   
<일곱째> 느낌에 대한 부처님의 결론은 “느낌들이란 참으로 거품과 같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석서는 “마치 거품이 조그마한 물에서 생겼다가 사라지고 오래 가지 않듯이 느낌도 그와 같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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