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반보反報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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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반보反報가 흔들리고 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6.0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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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오월의 끝자락이다. 가는 세월 붙잡을 수 없지만 섭섭한 마음에서 오월의 꽃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금낭화, 양귀비, 장미, 작약, 샤스타데이지, 아이리스, 낮달맞이, 우단동자, 채송화 등등.   
지난해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내자의 도타운 손놀림 덕분에 집 주변은 물론 길섶에도 오월의 꽃들이 무시로 피어났다. 
시듦과 성장은 찰나적이다. 지난해의 다산으로 수세가 약해지고 동해까지 입어서 감귤나무 455그루 중 상당수 나뭇가지가 죽거나 병들었다. 올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전정하고 거름을 듬뿍 주었더니 이제 생기를 회복한 듯 예전처럼 건강해진 모습이다.    
초록생명들이 천지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 환하게 미소 짓고, 나 역시 그들 과 함께 과원에 머물고 있어서 오뉴월은 참 좋은 시절인 것 같다. 
담벼락 옆에 보라색 수국이 꽃을 피울 기세다. 유월의 초입에 들어선다는 신호다.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능소화도 담벼락에 기대 피어날 것이다. 
유월엔 우리네 가슴에 물안개처럼 피어나는 이름 없는 꽃들이 있다. 육이오 무명용사들의 붉은 꽃들과 87년 6월 항쟁의 민주 꽃들이다. 자연의 꽃이든 가슴의 꽃이든 다 아름답고 고결하기에 사람의 정신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 인간은 자기의 힘만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믿고 있으나 실은 그게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물코 생명이다. 
그런데 요즘 다들 부동산타령, ‘내로남불’ 타령만 하느라고 반보反報의 가르침을 잊고 사는 사회의 지도층이 적지 않아서 걱정이 된다.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정책을 남발하거나 국제 외교의 근본 프레임에 이탈하는 화법을 쓰거나, 끼리끼리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면 인과에 얽혀 있는 자연과 생태계의 지혜를 모르는 게다. 반보란 은혜를 말한다. 눈에 보이는 은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은혜가 수두룩하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정신을 추념하는 의례를 거행하는 것만으로 진정으로 나라와 겨레를 위해 반보를 실천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노인과 청소년문제, 학교폭력의 문제, 노사문제,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 국가유공자 예우문제, 집값 문제 등등으로 문제투성이인 것은 은혜의 참뜻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한다.
세속의 삶이란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인데 주고받음에 균형을 잃으면 조화로운 삶이 될 수 없는 법이다. 
부처님은 『중일아함경』(A2:4:1)에서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것이 참된 사람의 바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은혜라 함은 누구든지 도움을 받은 특정한 사람에게 보은한다는 뜻이 아니라 무주상보시를 뜻한다.
은혜가 자연과 인간의 생존 조건임을 자각하는 유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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