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작 ② 공덕 쌓은 길로 이끈 인연들 - 이현주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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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작 ② 공덕 쌓은 길로 이끈 인연들 - 이현주 불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7.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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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50중반이다. 새벽에 나가서 오후까지 클린하우스를 청소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사찰에 꼭 들러서 절도 하고 부처님하고 대화하면서 나온다. 젊을 땐 방방곡곡으로 절이 좋아서 사찰 순례도 가고 암자가 너무나 좋아서 혹시 전생에 나도 스님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항상 마음속에 여유가 되면 꼭 절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시주할 생각으로 지금은 월급에서 조금씩 모아서 시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살고 있다. 
지금부터 35년 전 난 갑작스런 사고로 오른쪽 발목이 잘렸다. 발목 봉합 수술을 하고 정신이 들지 않아서 병원에서는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친정엄마를 불렀다고 한다. 난 그때 한 시간 동안 옛 고향 친구들과 가족들, 직장 동료들 이렇게 돌아보고 왔는데 병원에서는 죽은 줄 알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친정엄마가 무당이었는데 그때 기도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서 2003년도에 결혼을 했다. 남편이 지체장애 3급 나 역시 4급 장애를 가진 장애부부로 만났다. 그런데 결혼 5개월이 지나도 임신 소식이 없고 해서 제주도 유명한 사찰은 다 돌아다녔다. 하루는 도남 보현사에 들렀는데 공양주보살님이 “식사하세요.” 하면서 들어오라고 말씀하셨다. 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보살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애기가 없어서 걱정입니다.”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보살님이 “공부 좀 하세요.” 하면서 책을 주셨다. 그리고 “이번에 관음사에서 만불상을 만든다고 하니 소원동참하라”고 하셨다. 그 후 불교대학도 다니고 만불상 불사에 동참하기로 하고 열심히 정진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3개월 뒤 임신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이 드디어 나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 후 한림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면서 살았는데 온 몸이 아프고 정신도 없고 해서 무당집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낫질 않았다. 하루는 한산사라고 적힌 절 현판이 눈에 띄어 들어가서 합장을 하고 스님한테 인사를 드렸다. “스님, 제가 이렇게 온 몸이 힘들어요.” 하니, 스님이 죽비로 등쪽을 내리쳐주셨다. 그 뒤로 거짓말처럼 정신이 들고 아픈 것이 나았다. 

그 뒤 한림을 떠나고 세월이 흘러서 몇 년 뒤 한산사에 불이 났다는 말을 들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는 꼭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고 버스 타고 아침 일찍 사찰에 도착했다. 한산사 절로 가면서 내 마음은 스님과 공양주보살님, 강아지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마당에 들어가니 절이 참 예쁘게 보였다. 
스님께서 너무나 좋아하시는 모습이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모습이었다. 스님과 함께 식사도 하고, 스님은 귀한 차까지 내주셨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최고로 맛나게 먹고 4시간 동안이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너무나 힘들게 보내셨다고 한다. 나도 그동안에 쌓였던 마음의 상처도 이야기했다. 스님과 나는 서로 눈물이 핑 돌았다. 절 마당이 곱게 다져지지 않아 걱정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그럼 제가 저 마당 공사 해드릴게요.” 
스님은 고맙다는 말 대신 함박웃음으로 답해주셨다. “스님, 저도 이번 기회에 업장소멸 좀 하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일하면서 살고 싶어요.”하고 말했다. 
“절 마당을 잘 닦으면 부처님께서 좋은 길로 오실 거예요.”
“스님, 우린 넉넉하진 않지만 괜찮아요.”
몇 년 만에 들른 한산사에서 보시를 하는 기회를 얻게 되어 내 마음은 정말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이런 마음이 절로 들면서 돌아오는 버스길이 정말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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