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10) - 연기緣起의 가르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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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10) - 연기緣起의 가르침 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7.2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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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그분 부처님 공양 올려 마땅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사띠행자 - 유 현
사띠행자 - 유 현

연기는 붓다의 가르침Buddha-Dhamma의 근본 골격의 하나입니다. 거기에 담긴 교의는 하늘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고 오묘하여 필자의 작은 법 그릇 안에 모두 담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오로지 초기경전과 「아비담마」에 근거하여 연기법의 개요를 말하고 수많은 선지식들의 저술에서 밝힌 세부적인 내용은 접어두고자 합니다. 
먼저, 「인연 경」(S12:60)에 실려 있는 세존과 시자인 아난다 존자 사이의 문답을 되새겨보겠습니다.
[아난다] “세존이시여. 이 연기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제 제게는 분명하고 또 분명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세존] “아난다여, 그와 같이 말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지 말라. 이 연기는 참으로 심오하다. 그리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난다.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키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 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연기緣起로 한역하는 그 어원은 빠띳짜(paticca)-사뭅빠다(samuppāda)입니다. 「빠띳짜」는 ‘무엇을 의지하여’라는 뜻이고, 「사뭅빠다」는 ‘함께 위로 간다.’는 뜻인데, 문자적 의미는 일어남, 발생, 근원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영어는 dependent originnation으로 영역하고 있고, 우리말에서는 ‘조건적 발생’으로 표현합니다.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사뭅빠다[起]이고, 조건의 화합을 조건해서[緣] 일어난다고 하여 연기라 말합니다. 
『우다나 니까야(自說經)』의 「깨달음 경」(Ud1:1∼3)에 쓰여 있듯이 세존께서 처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나서 두 번째 칠일에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의 언덕에 있는 보리수 아래 머무실 때 삼매의 출정하셔서 초저녁에 줄곧 사물이 생겨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숙고하였습니다. 이 얼개가 12연기의 유전문流轉門의 정형구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 즉 무명을 조건으로 업 형성들[行]이, 업 형성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識]이,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名色]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老死]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憂悲苦惱]가 발생한다. 이와 같이 이러한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고 나서 세존께서 밤의 한 밤중에 사물이 어떻게 멸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숙고하였습니다. 이 얼개가 12연기의 환멸문還滅門의 정형구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 즉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업 형성들이 소멸하고, 업 형성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이러한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세존께서 밤의 이른 새벽에 사물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관해 숙고한 결과 연기법[順逆觀]을 이루고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45년간 전법 활동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연기의 철학적·교리적 중요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성제의 틀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겨나는 순서로서의 연기[順觀]는 고(苦, dukkha)의 진리와 고의 일어남의 진리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멸하는 순서로서의 연기[逆觀]는 고의 멸滅과 고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진리를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기법은 결코 절대자이나 유일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고, 또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거나 간에 진리 그 자체의 드러남입니다. 
세존께서 조건[緣]에 대한 가르침을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해주신 짧게 해주신 적이 있는데, 이 가르침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12연기를 추상화한 정형구입니다. 「사꿀루다이 짧은 경」(M79)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제1명제]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제2명제]”
제1명제는 괴로움[苦]의 발생구조를, 제2명제는 괴로움의 소멸구조를 나타냅니다. 이 조건 지어짐은 그 어떤 종류의 외적 작용이나 힘에 의한 방해도 제어도 받지 않으면서 무시무종無始無終 계속된다는 것을 6여 년의 고행 끝에 부처님께서 발견해내시고는 이를 12지 연기로 정리함으로써 생사의 수수께끼도 풀어내고, 존재의 신비까지 벗겨 내셨습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과 오온五蘊이 조건 지어져 있다는 연기의 가르침에서 모든 형성된 것[諸行]은 어느 것이나 예외 없이 주어진 조건들과 주어진 원인들에 의지하여 생겨나서 현존하다가 사라진다는 진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네 삶은 변함없는 동일성의 지속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심리적·생리적 변화들의 흐름과 과정이며, 불교에서는 이를 어떤 조건 속에서 생멸을 거듭하는 명색(名色, nāma-rǔpa)의 융합된 흐름이라고 말합니다.    
조건 지어진 법들은 조건의 화합을 의지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빠띳짜[緣]라는 단어는 영원하다거나 원인 없이 생긴다거나 신이나 조물주 등의 거짓 원인으로부터 생긴다는 학설[常見]을 논파하고, 또 조건이 화합할 때 법들이 일어나기[사뭅빠다] 때문에 단멸이라거나 허무하다거나 지음이 없다(도덕적 행위의 과보)는 학설[斷見]까지 논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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