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작 ③ - 오늘도 저는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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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작 ③ - 오늘도 저는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뽑습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7.2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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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이 불자

오늘도 저는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뽑습니다. 
언제부턴가 아침마다 뽑아대는 흰머리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이제 저는 50입니다. 
늘어나는 흰머리 수만큼 얼굴의 주름살도 늘었고 피부는 탄력을 잃고 색 또한 칙칙해져서 외출할 때는 뭔가를 잔뜩 바르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가 됐습니다.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노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오십견이 왔고 허리에 지속적인 통증이 있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밤에는 불면증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심각하게 느껴지는 건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는 겁니다. 
이러다간 순식간에 60이 되고 70이 될 것 같아 두려워졌습니다. 
 저에게는 대학 3학년인 큰딸과 작년에 재수하고 올해 대학에 입학한 작은딸이 있고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는 남편 그리고 나만 바라보는 열 살 난 강아지가 있습니다. 
큰 애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저는 애들 공부를 뒷바라지를 위해 남편과 하던 일을 접고 애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4년을 저는 애들에게 집중해서 최선을 다했고 다행히 큰애는 원하는 대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했고 작은 애도 부산의 한 국립대에 진학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애들이 학교 때문에 집을 떠나면서 저에게는 많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내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날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막상 그 시점에 와보니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겁ㄴ니다.
이것저것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신나게 놀아보고 책을 읽어보고 영어공부도 해보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이유 때문인지 뭔가를 해도 집중을 못하고 잡념에 가득 차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폭풍처럼 나이 50이 찾아왔습니다. 노화라는 달갑지 않은 선물을 저의 온몸에 뿌려대면서 말입니다.
 몇 년 전 저는 기립성 저혈압과 빈혈로 인해 가벼운 충격에도 몇 차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매번 바로 의식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때 깨어나지 못하면 죽는 것이구나, 죽음이 쉬울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 1학년 때 당시 1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막내 남동생과 6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영향으로 ‘죽음은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라는 죽음에 대한 인식 때문에 이후 저와 동생은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늙어가는 일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도 몰랐습니다. 물론 서서히 진행되어오다가 급기야 온몸이 자각하는 지점까지 오게 됐을 겁니다. 
 저는 불자가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2년 전 한 불교 신행 단체에 근무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 불교와의 첫 만남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접했던 불교 행사에서 반야심경을 독경하는 도중에 어느 한 구절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음의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울 것이 없어서”입니다. 이 시점부터 머릿속에 헛된 생각들로 가득 찼나 봅니다. 한동안 열심히 반야심경을 독경하거나, 책이 짧아 선택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최소한의 나만의 규칙을 만들고 실천했던 일, 다라니경을 독송하면 가피를 받는다고 해서 무작정 외웠던 게 제 불교 활동의 전부였습니다. 분명 더 많은 기회가 있었고 제가 마음만 열었더라면 불교에 더 일찍 입문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다 어쩌면 나의 고민과 문제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 관음사 불교문화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불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불교 대학은 첫 강의부터 너무 신선했고 재미있었습니다. 첫날 스님께서 “나의 몸의 누구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내 몸은 내 것이죠”라고 당당하게 맘속으로 외쳤는데 내 것이 아니란 겁니다. 그러면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이때 충격은 너무도 신선해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질문하고 설명해주곤 했습니다. 
 강의 진도에 맞춰 책을 읽고 스님께서 권해주시는 수행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서 실천해봤습니다. 저는 사경을 했고 매번 알아차림을 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이나 내 상태를 알아차리는 겁니다. 또는 함께 있는 상대에 집중하는 겁니다. 현 상태를 자각한다는 뜻에서 자각 수행이라 이름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설거지하는 일을 부처님 씻기는 일처럼 소중하게. 그러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으며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게 된다고 합니다. 아침마다 저는 우리 동네 별도봉으로 매일 운동 겸 산책을 합니다. 자각수행을 하기로 한 첫날 별도봉을 오르면서 잡념을 지우고 오롯이 산책에 집중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때 처음 새소리가 들리고 주변의 꽃이 보여서 저도 너무 신기하고 놀랐습니다. 
 현재 저는 제가 고민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해결하려는 의지나 용기가 없었을 겁니다. 아니면 저 자신을 못 믿었던 것 같습니다. 늙어간다는 건 어쩌면 축복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은 그럴 수 없으니. 가끔 우리 엄마가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하는데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보단 살아계셨으면 행복하셨을 텐데 라는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하게 늙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성불할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 가르침 안에서 행복해지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진심으로 알 정도로 지혜로워지고, 마음이 걸림이 없이 당당해지는 그런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내일부터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흰머리를 뽑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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