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11) 연기緣起의 가르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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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11) 연기緣起의 가르침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8.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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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행자-유현
사띠행자-유현

불교에서는 사물들이 하나의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며, 원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12연기법이나 「아비담마」의 칠론 가운데 가장 난해하다는 「빳타나」(發趣論, Patthāna)에 나오는 24가지 조건 짓는 양태樣態는 사물이나 현상들이 어떻게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의 복합적 원인에 의해 생기는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빳타나」는 미얀마 「아비담마」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논장으로서 24가지 조건(緣, paccaya)을 적용시켜 제법의 인과 관계와 상호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제법의 상호관계나 상호의존을 연기라고 하지 않고 조건이라고 말하고, 특히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상호의존관계(patthāna)이라고 부르고 있어서, 연기(=조건 발생)와 연(緣=조건=상호의존)을 구별합니다.
세존께서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경」(M28)에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연기를 보는 자‘란 조건[緣]을 보는 자라는 뜻이고, ‘법을 본다.’는 것은 조건을 따라 생긴 법들을 본다는 뜻입니다. 
“무명을 조건으로 업 형성들[行, saňkhāra]]이 있다.”라는 12연기의 첫 번째 정형 구句에서 무명은 ‘조건 짓는 법’이고, 행行은 ‘조건 따라 생긴 법’이라 합니다. 이 둘이 조건 따라 일어나는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연기입니다.
그렇다면 상호의존관계(patthāna, 빳타나)는 이 둘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 조건 짓는 법들이 가지고 있는, 결과를 발생하게 하고 성취시키는 고유한 힘이라고 논장의 주석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기본공식은 “A는 B에게 C로서 조건이 된다.”입니다. 여기서 A는 조건 짓는 법이고 B는 조건 따라 생긴 법이며 C는 조건의 힘입니다. 
이와 같이 조건 짓는 힘은 조건 짓는 법들에 고유한 성질이므로 이 법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조건 짓는 법은 그들의 독특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 힘이 그들로 하여금 조건 따라 생긴 법들을 일어나게 합니다. 마치 고추의 매운 맛은 고추의 고유한 성질이므로 고추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연기가 단지 조건 짓는 법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상호의존관계는 그보다는 조건의 특별한 힘을 설명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요컨대 옛 스승들께서 24가지 상호의존관계를 12연기의 각 요소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특별히 취급하고 강조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인데, 이를 압축한 것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체계적으로 밝히는 12연기의 유전문과 괴로움의 소멸구조를 드러내는 12연기의 환멸문과 한 치의 오차 없이 배대가 됩니다. 
연기의 가르침이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체계적으로 드러내는 경장의 교학 체계라 한다면 상호의존관계(patthāna)는 주로 82법으로 정리되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의 상호관계를 24가지 조건의 체계를 통해서 밝히는 논장, 즉 아비담마의 가르침입니다.
흙과 씨앗, 온도와 물이라는 여러 원인으로부터 형상, 색깔, 냄새, 맛 등을 가진 새싹이라 불리는 여러 결과의 생김을 과학적 증명을 통해 우리는 확인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부처님께서는 12연기의 가르침 가운데, “무명을 조건으로 업 형성들[行]이 일어난다.”라는 첫 번째 정형 구에서는 오직 무명 하나의 원인과 그 결과를 설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청정도론』에서는 세존께서는 설법하시는데 능숙함을 얻으셨고 또 교화 받을 사람의 근기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①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② 분명하기 때문에, ③ 특별하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과 결과만을 설하신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감각접촉으로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觸緣受]”라는 여섯 번째 정형 구에서는 감각접촉은 느낌의 중요한 원인으로, 감각접촉에 따라 느낌이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만을 설하셨다고 합니다.
“가래로 생긴 병”이라고 한 데서는 분명하기 때문에, 그리고 “해로운 법들은 모두 지혜롭지 못하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뿌리로 한다.”라는 구절에서는 특별하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만을 설하셨다고 합니다.
세존께서 12연기의 정형 구에서 하나의 원인과 결과만을 설했다하더라도 
상호의존관계(patthāna)를 공부하는 유학의 입장에서는 무명은 그것의 결과로는 반드시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고 고유성질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공덕이 되는 행위들에게 존재, 고유성질, 역할로 어긋나거나 혹은 어긋나지 않게 혹은 비슷하거나 혹은 비슷하지 않게 조건이 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조건이 된다는 것은 꼭 결과를 낸다는 뜻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법들이 조건을 가질 때 ➀위치(경우), ➁ 고유성질, ➂역할 등의 측면에서 어긋나게 또는 어긋나지 않게 세간에서 성취된다고 말합니다. 
먼저 일어난 마음은 뒤에 일어난 마음에게 ➀위치(경우)가 어긋나는 조건이 되고, 업은 물질에게 ➁고유성질에게 어긋나는 조건이 되고, 눈의 알음알이는 알아차리는 역할을 하지만 그 매개인 빛(물질)은 알아차리는 ➂역할이 없어 어긋나는 조건이 됩니다.
그 반면에 눈과 형상 등은 눈의 알음알이 등에게 ➀위치(경우)가 어긋나지 않는 조건이 되고, 아름답거나 해로운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는 오문五門의 인식과정에서 앞의 속행 등은 뒤의 속행 등에게 고유성질이 어긋나지 않고 또 역할도 어긋나지 않는 조건이 됩니다. 
필자도 24가지 조건(緣, paccaya) 가운데 다수의 조건 짓는 힘이 무명의 조건에서 태어남의 조건에 이르기까지 11개의 고리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분석, 검토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24가지 조건 공부는 참으로 난해하나, 믿음과 정진력으로 이를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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