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12) - 연기緣起의 가르침 3
상태바
위빠사나 길라잡이 (12) - 연기緣起의 가르침 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8.24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띠행자 유현
사띠행자 유현

연기는 생사윤회의 바퀴를 지탱하여 금생에서 내생으로 돌아가게 하는 조건들을 드러내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는 12연기의 유전문流轉門의 정형구입니다.
전생에서 지혜 없음이 ①무명이고, 애씀이 ②업 형성들[行]들이고, 즐김이 ⑧갈애[愛]이고, 움켜줌이 ⑨취착[取]이고, 업과 업의 결과로서 다시 태어나는 역할을 하는 것이 ⑩존재[有]입니다. 이 다섯 가지 법[①-②-⑧-⑨-⑩]이 금생의 재생연결의 조건이요, 괴로움의 원인[集]인 것입니다. 
마음에서 무명이 모두 제거되지 않고 남아있으면 갈애와 취착은 무명에 뿌리를 두고 함께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나아가 ②행과 ⑩존재는 다 같은 것, 즉 의도(cetanā)를 의미하며 이는 업(業, kamma)의 다른 표현입니다. 
초기경전의 주석서에서 ①무명과 ⑧갈애, 이 둘은 12연기에 있어 두 가지의 뿌리가 되는 원인이 되어 무명은 과거에서 현재로, 갈애는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다리를 놓는다고 말합니다.
전생의 원인과 금생의 결과[②행↔③식] 사이의 연결은 「존재 경」(A3:76)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알음알이는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묶여서 저열한 욕계에서…중간의 색계에서…수승한 무색계에서, 알음알이를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再有]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이 경의 가르침과 같이, 금생의 재생연결이 ③알음알이[識]이고, 모태에 들어감이 ④정신·물질[名色]이고, 긴 윤회의 고통을 펼친다 해서 ⑤여섯 감각장소[六入]이고, 여섯 감관이 여섯 감각대상과 부딪힌다고 해서 ⑥감각접촉[觸]이고, 대상의 맛을 받아들인다 해서 ⑦느낌[受]이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법[③∼⑦]이 금생의 과보요, 괴로움[苦]인 것입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눈·귀·코·혀·몸·마노[意]으로 매순간 형상·소리·냄새·맛·감촉·법과 접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여섯 감관에서 정보를 받아들일 때 알음알이[六識]가 일어나는데 이때 반드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는 세 가지) 느낌도 함께 일어납니다. 
범부 중생들에게 느낌이 일어날 때 느낌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뒤따라 갈애가 일어나 12연기가 회전합니다.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갈애는 일어나서 자리 잡습니다. 
그래서 무명에 뿌리를 둔 갈애를 일으키고 집착하여 업을 형성합니다. 그러면 ⑪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⑫늙음과 죽음[老死]이 뒤따라 옵니다. 이 둘[⑪, ⑫]을 미래라 하고, 현재의 다섯 원인[⑧갈애→⑨취착→⑩유→①무명→②행]이 내생 연결의 조건이 됩니다.
이처럼 삼세에 걸쳐서 원인과 결과가 인→과→인→과로 두 번 반복된다고 해서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12연기는 생사윤회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라 말할 수 있습니다.
태어남과 늙음·죽음, 이 둘은 정신·물질[名色]의 특징들이고 구경법에 속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 대신 다섯 가지 법[③∼⑦]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⑧갈애와 ②의도적 행위는 12연기 가운데 원인의 고리인데, 여기에다 ①무명과 ⑨취, ⑩유의 세 가지 고리를 덧붙여 [원인의 다섯 고리]라 하고, 그 중에서  <무명·행>의 둘은 전생에 두드러진 원인, <애·취·유>의 셋은 금생에 더 두드러진 원인이라 말합니다. 12연기 가운데 나머지 ③∼⑦과 ⑪, ⑫ 일곱은 [과보의 회전]이라고 설명합니다.
불교에서는 ‘나’라는 개념적 존재를 오온(五蘊=色·受·想·行·識)이라는 법으로 해체해서 봅니다. 이 다섯 가지의 법이 서로 엉켜 붙도록 윤회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무명과 갈애이고, 그로 인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선업 또는 불선 업을 짓게 되어 그 과보의 회전에 따라 삼계 중의 어느 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 연기의 가르침입니다. 
연기는 단지 조건을 얻은 정신·물질[名色]이 매 찰나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다음 생으로 상속될 뿐, 여기에 중생이나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기는 통찰지의 토양입니다.
초기경전의 주석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필자는 윤회(saṁsāra)를 “5온(蘊)·12처(處)·18계(界)가 연속하고 끊임없이 전개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조건 짓는 법들과 조건 따라 생긴 법들을 ➀ 정신[名, nāma], ➁ 물질[色, rūpa], ➂ 정신·물질[名色]의 복합체로 분류하여 이 법들이 현재의 나[五蘊]에게 조건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죽은 후에 재생연결에서 어떠한 업보를 가져올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화두 참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르기 전까지 불변하는 아뜨만(자아)이 있어서 몸만을 바꿔서 금생에서 내생으로 간다는 ‘자아의 윤회(=힌두교의 윤회)’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조건을 얻은 이 법들이 다음 생으로 갈 뿐이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윤회해온 것도 아니고 원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는 『청정도론』의 가르침을 오롯이 새기며 ‘무아의 윤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의 가르침은, 윤회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참나[眞我]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조건적인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험적인 자아가 존재할 뿐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아라한과를 얻지 못하는 한 중생들은 12연기의 길을 따라 윤회의 괴로움[苦]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열두 개의 고리를 끊기 위한 연기의 역관逆觀은 어떻게 수행하여야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①무명의 고리와 ⑧갈애의 고리가 가장 부수기 쉽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치 자전거 체인이 고리 한 개만 빠지면 그 역할을 못하듯이 무명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지혜의 빛을 밝혀야 하고, 또 갈애의 고리를 끊기 위해 ‘무아의 윤회’를 통찰함으로써 세상사에 대한 애착을 조금씩 줄여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일곱 생生 안에 말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