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신행수기 공모 대상 수상작 ⑧ - 모든 인연, 제불보살의 화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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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신행수기 공모 대상 수상작 ⑧ - 모든 인연, 제불보살의 화현일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0.0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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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련화 김정자 불자

나름 참불자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양물을 머리에 이시고 시골마을 산고개를 넘나들며 단양 황정산 영인봉 아래에 있는 원통암에서 수행하시던 노스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엄마 손에 이끌려 사찰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나는 모태신앙의 불자이다. 
나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이십대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만나 나름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시동생만 다섯인 집의 큰 며느리로 들어가 없는 살림을 윤택하게 꾸려가려고 부지런히 쓸고 닦고 하면서 시아버지 포함 다섯 남정네들과 두 어린 시누이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려고 애썼다. 
그러던 나의 삶에 시련이 찾아온 건 믿고 의지하던 남편이 외도를 하게 되면서 갑자기 집을 나가면서부터였다. 게다가 시아버님은 치매가 심해지면서부터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면 당신이 공양을 드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저년이 사람 굶겨 죽일 작정이다”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억울함이 밀려왔다. 내 청춘과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어 가정에 정성을 쏟아왔는데… 그때 나에게 남은 것은 만년설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듯 삐죽삐죽 나온 새치 머리를 질끈 뒤로 묶은 아줌마의 모습이 전부였다. 
가정에 파묻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나는 집에 작은 법당을 모셔 놓고 아침 저녁으로 향 공양, 차 공양을 올리면서 부처님께 정성을 들였다. 하지만 남편의 가출은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굳게 믿어왔던 내 신념을 산산조각이 나도록 으스러지게 만들었다. 분통한 마음으로 나는 법당에 모신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을 원망했다. “왜 제 정성과 기도는 땅바닥으로 떨어뜨리셨습니까? 왜 저에게는 이렇게 가혹하십니까?”
실성한 사람처럼 종일 멍 때리고 있는 도반이 안쓰러웠는지 어느 날 젊은 시절 함께 법명을 받았던 무량심 보살이 찾아왔다. 도반은 단양에 위치한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이 계시는 토굴로 무작정 나의 손을 이끌고 왔다. “이 깊은 산 속까지 왔으니 스님이 끓여주는 된장찌개나 드시고 가시게” 스님께서는 10년 묵은 된장을 한 주걱 풀어 넣으시고 산속에서 딴 귀한 능이버섯을 넣고 구수한 찌개를 끓여 올려 오셨다. 따뜻한 찌개에 담긴 스님의 정성을 마시며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법당에서 철야정진 삼천배를 하시오. ­­­삼천배를 하면서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참회를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산하시게.”
억장이 무너지는 얘기였다. 한풀이를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가슴에 피멍만 들게 한 남편과 시댁을 위한 기도와 참회를 하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원통하겠지, 하지만 스님이 그리 하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일세”먹거리가 귀한 첩첩 산중에서 수행하시는 스님께 밥까지 얻어먹었고 또 무엇이든 다 품어줄 것만 같은 굳은 심지를 지니신 스님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법당으로 향했고 밤새 삼천배를 했다. 어떤 단어로도 형용하기 힘든 벅찬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슬픔도 억울함도 아닌 마음의 빗장이 사르르 열리면서 흘렀던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삼천 배 수행을 계속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 뒤로 나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월 초하루마다 스님의 토굴을 찾아 절수행을 했다. 삼천 배 수행을 통해 진참회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만 희생하면서 억울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완벽주의 성격 탓에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못하는 며느리 눈에 안 띌려고 몰래 괄약근이 풀려 실수를 했던 속옷을 감춰두셨던 시아버지 빨래를 기어이 들춰내 세탁기에 넣었던 며느리를 보면서 아버님은 얼마나 가시방석이셨을까! 무엇이든 확실하게 끊고 맺고를 못한다고 매일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던 남편은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남편과 시동생들은 나 혼자만 노력하고 희생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피해의식에 눌려 늘 도망가고 싶었을 심정이었을 것이다. 가족들의 아픔이 온전히 느껴졌다. 진참회를 하고 나니 미움도 원망도 눈 녹 듯이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삼천 배 수행을 통해 아상을 꺾고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다시 가족들을 보듬었다. 
세월의 파도는 마치도 수행 증과를 검증이라도 하려는 듯 삽시간에 덮쳐올 때가 있다. 한숨 돌리고 평화가 깃들었던 내 삶에 폐암 4기 판정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는 법문을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3개월이 남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생명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천년을 살던 만년을 살던 인생무상이여. 모든 것이 인연법이오. 암세포는 과연 유정일까 무정일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지 태생, 습생, 난생, 화생 사생의 몸을 받고 태어난 모든 중생들이 다 소중한 법이요. 암세포가 보련화 보살에게 들려주는 설법에 귀기울여 보시게!” 다시 한번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 산 속을 찾았을 때 스님께서 들려주신 법문에 또 한번 마음의 울림을 받았다.
그래! 삭발염비를 하지 않은 재가불자지만 이 생명 다 하는 날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며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이들을 품어주자! 이렇게 찾아온 것도 인연인데 과연 암세포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법문이 있을 거야! 그렇게 굳은 결심을 하며 나는 다시 한번 부처님의 제자다운 제자로 거듭나려고 결심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마음 밭에 감로의 단비가 되어 스며들었다. 마음이라고 할 것도 없는 마음 한 자락 바꾼 것뿐인데 하루 사이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승화한 기분이었다. 오래 전에 읽었던 경전을 다시 꺼내 읽으며 육안이 아닌 마음으로 부처님 법을 헤아리려고 했다. 그동안 수없이 읽어왔던 경전 내용이 다르게 느껴졌다. 능가경에 나오는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평등하게 보시기를 마치 외아들 같이 하신다”는 가르침에서 나는 오열을 하고 말았다. 아! 이거구나!
암세포와의 인연! 암세포는 엄연히 내 몸의 정상세포로 태어나 내 몸의 활동을 돕던 고마운 존재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세포라는 딱지가 붙은 슬픈 존재였다. 암세포는 사람에 비유하면 부모가 잘못 교육하여 강도나 조폭이 된 자식들과 같이 느껴졌다. 자식이 비뚠 길에 들어섰다면 내쫓는 것 보다는 잘못 가르친 부모의 책임을 반성하고 사랑으로 안아주는 자세가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독한 항암제나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에 목을 매는 것 보다는 암세포에게 정상세포로 돌아올 기회를 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나는 원을 세웠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암세포들과 함께 수행정진하며 그들에게 법문을 해주자! 한달에 한번씩 받게 되는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지고 호흡하기조차 곤란할 때에도 나는 알아차림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너희들도 힘들지? 미안해! 내가 이 육신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해서 너희들을 아프게 하는구나. 하지만 우리 함께 수행정진하는 도반으로 거듭나자. 영원히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는 소중한 한 물건, 우리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자! 내 영혼이 소중한 만큼 너희들 영혼도 소중한거야!”
기적이 일어났다. 3개월 시한부 인생에서 나는 지금까지 4년 넘게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다. 주변에서 나를 만나는 이들은 내가 기나긴 터널을 지나왔던 암환자였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양대 병원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4기 판정을 받은 암환자가 수술을 해 종양을 제거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된 경우는 20년 의사인생에 처음 겪는 일이라며 감탄하셨다. 그동안 나는 그렇게 나의 제일 소중한 도반과 함께 수행정진해왔고 암세포가 들려주는 “평등심” 설법을 경청해왔다. 
지난해 12월 나는 원만히 종양제거 수술을 마쳤다. 4년 동안 함께 해준 나의 가장 소중한 벗을 떠나보내며 진심으로 그들이 해탈을 얻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천도제를 지내 주었다. 
그동안 겪어왔던 풍랑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부처님의 가피였음을 몸소 느끼면서 오늘 새벽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법당문을 열고 촛불을 켰다. 수술 후유증도 가라앉고 몸이 쾌적해지자 나는 새로운 원을 세우고 인생2막을 시작하고 있다. 나머지 인생 부처님 도량에서 일하며 부처님 가피에 보답하는 불자가 되리라! 그냥 청소가 아닌 내 마음의 찌꺼기를 마저 정화한다는 생각으로 도량 곳곳을 살피리라! 말동무가 필요해 찾아오시는 마을 어르신들께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마음으로 따뜻한 공양 지어 드리고 주변과 세상을 위한 기도를 하고 회향하는 삶을 살리라! 
처처에 부처 아닌 곳이 없거늘,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들이 나의 수행정진을 도와주기 위한 제불보살의 화현이었음을!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이라고 했건만 나의 40, 50대를 돌이켜보면 불혹은커녕 늘 흔들려왔고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육십이인순(六十而耳順)이라고 환갑이 넘은 나이에 이르러서야 유정, 무정 설법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암세포가 매일 전해주는 설법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리고 번뇌를 보리로 승화시킬 수 있는 마음의 귀가 열리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이 값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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